- 1983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87분. 장르는 뭐 걍 '옛날 크로넨버그 영화'라고 해두죠. 스포일러는 없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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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록 티비의 추억이 떠오르는 포스터입니다. 물론 당시엔 최신식이었겠습니다만. ㅋㅋㅋ)



 - 아직 파릇한 30대라 피부도 말끔한 제임스 우즈가 맡은 '맥스'라는 양반이 주인공입니다. 지역 소규모 케이블 티비를 운영하는데 뭐가 됐든 자극적인 걸 틀어대서 돈을 버는 게 최우선 과제인 양반이네요. 시작부터 시사하는 영상은 사무라이 뭐시기란 제목의 일제 소프트코어 포르노구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네 회사 엔지니어가 '이리 와봐요 맥스, 여기 흥미로운 게 있어요' 라면서 정체불명의 스너프 영상 같은 걸 보여줍니다. 조악한 화질에 짧은 토막이라 진짠지 가짠지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맥스는 이게 당연히 연출일 거라 생각하고 자기네 방송국에 딱 맞는 자극 쩌는 컨텐츠라 생각해서 그 영상을 추적해보라고 시켜요. 그런데 그 때부터 조금씩 맥스의 일상은 현실과 환각이 뒤섞여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나름 정보통을 동원해 찾아낸 그 영상의 관련자는 영 괴상하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걸 믿거나 말거나 맥스에겐 점점 더 해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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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맥스라고 하면 당연히 헤드룸...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 이 영화를 대충 언제 봤던가... 를 생각해 보는 의미 없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단 분명히 집에서 VHS 비디오로 봤으니 최소 1997년 이후입니다. 그 전까진 집에 VHS 플레이어가 없었어요 ㅋㅋ 전에도 했던 얘기지만 아버지께서 대우 전자에 다니던 나아쁜 친구의 영업에 넘어가서 베타맥스 비디오 플레이어를 구입해버리는 바람에, 그리고 그게 정말 고장도 안 나고 잘 버텨버리는 바람에 말이죠. 어학 연수 다녀온 누나가 미쿡에서 구입한 플레이어를 들고 온 후에야 비디오 대여점이라는 걸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누나는 그 기기를 또 본인 방의 14인치(!) 티비에 연결해서 썼기 때문에 전 이 영화를 14인치 볼록 티비로 봤을 겁니다. 그것도 대략 20여년 전에요. 게다가 이 영화는 한국에 5분여를 뭉탱이로 삭제당하고 들어왔다니 이 쯤 되면 다시 본 게 다시 본 게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대단히 신선한 기분으로 봤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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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님 자체 블러 처리된 저 총. 참으로 크로넨버그스럽게 기분 나쁘고 찝찝하죠. ㅋㅋ)



 - 다들 아시다시피 꽤 오랫동안 크로넨버그를 대표하던 영화였습니다. 크로넨버그가 한동안 만들어냈던 '첨단 기술 갖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사람 몸이랑 기계가 참으로 보기 싫게 한 덩이가 되고 뭐 이런 이야기'의 시작 격이니까요. 이 경우엔 영상물, 특히 티비와 비디오 테이프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한참 앞서간 선견지명'이라는 평가가 자동으로 뒤따라옵니다만. 흠. 글쎄요 전 크로넨버그 이야기를 할 때 그런 쪽으론 그렇게... 크게 공감하지는 않는 쪽입니다. 


 뭐랄까, 제게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은 최신 테크놀로지에 꽂힌 영특한 문과생이 만드는 영화들 같아요. 기술 그 자체에 대해 잘 이해하는 이야기라기 보단 그 기술에 매우 문과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바탕으로 거의 브레인 스토밍하듯 아주 격렬하고도 과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그걸 싹 다 영상으로 옮겨 버린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다보니 종종 '엑시스텐즈' 처럼 본인이 다루는 소재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게 다 티가 나는 영화가 튀어나오기도 하구요. 요 '비디오드롬'은 그래도 뭔가 적절하고 또 잘 들어맞는 구석들이 많은 편입니다만. 그래도 역시 대단히 문과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ㅋㅋ 솔직히 얻어 걸린 거 아닙니까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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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얻어 걸려. VR 머신까지 예견했건만!!!!)



 - 솔직히 지금 와서 보니 초반부의 전개는 살짝 좀 산만한 느낌입니다. 일단 좀 느려요. 그리고 그 와중에 여러가지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은 장면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매끄럽게 잘 연결되어 있는 느낌은 아니구요. 여기에 추가로 딜을 넣는 게 왓챠의 자막이었습니다. 뭔가 좀 번역이 매끄럽지가 않아요. 좀 어색한 문장이 자꾸 튀어나오는데 이게 이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선문답스런 대사들과 섞여 버리니 오역인지 아닌지 고민하느라 영화 내용에 집중을 못하게 되던. ㅋㅋㅋ 영상은 크라이테리언 판본이라 그런지 깔끔하고 좋았는데 자막은 좀 불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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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에 타서 오그라든 거 아니구요. 참으로 귀여븐 비디오 테이프죠. 꼬물꼬물!)



 - 근데 뭐 메시지고 이야기 전개고 간에 다 됐구요.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맛이 가기 시작한 후 부터는 그냥 지금 봐도 쩐다는 느낌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아주 거칠게 현실과 환상을 오가면서 충격을 주는 연출도 좋구요. 그러다 결국엔 그 둘이 그냥 하나가 되어 버리면서 생기는 기괴한 분위기도 사람을 훅 잡아 끌어요. 특히 막판엔 거의 현실이 아닌 꿈의 논리로 이야기가 전개 되는데 이 때는 장면과 장면의 배치와 이어 붙이기도 굉장히 절묘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워드 쇼어의 음악도 크게 한 몫 하구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게 크로넨버그의 전매 특허였던 기괴하게 불쾌한 아이디어들과 그걸 살려낸 특수 효과죠. 전설의 그 권총 고정(?) 장면이나 누군가가 폭사하게 되는 장면. 뭣보다 맥스의 배에 생기는 그것(...) 같은 건 참으로 쓸 데 없이 참신할 뿐더러 이후 숱한 영화나 (일본) 만화들에 영향을 줬구나 싶었구요. 대체로 그 시절다운 아날로그 수제 특수 효과들이 깔끔하게 구현되는 가운데 몇몇 장면들은 지금 볼 때 '저 시절에 저걸 어떻게 만들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하더라구요. 좋은 아이디어와 (당시 기준) 훌륭한 기술이 결합돼서 만들어진 훌륭한 볼거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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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옛적 잘 사시던 큰외삼촌댁 티비랑 닮아서 반가웠습니다.)



 - 그래서 대충 마무리하자면요.

 흠결 없이 완벽한 걸작!!! 이냐면 그건 좀 아닌 것 같구요. 하지만 워낙 강렬한 장점들,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 한 방들이 있어서 매력적인 영화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저예산의 한계로 전체적인 때깔은 좀 그 시절 평범한 영화 같은 느낌이다가도 힘 준 장면들이 나오면 감탄스러운 비주얼이 튀어나오는 것도 재밌었구요.

 그 때나 지금이나 오락물로 즐겁게 볼 성격의 영환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재미 없는 영화도 아니구요. 초반만 살짝 넘기면 끝까지 몰입해서 보게 되는 작품이니까요.

 암튼 '그 크로넨버그의 그 작품' 얘길 하면서 뭘 정리해보겠답시고 길게 늘어 놓는 것도 웃기네요. ㅋㅋ 재밌게 봤습니다. 끝.

 

 


 + 근데 생각해보니 이거... '링'의 그 전설적인 장면의 원조 같지 않습니까. ㅋㅋ 되게 비슷한 장면이 두 번 정도 나오죠. 그 장면 특수 효과도 참 신기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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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니 '폴터가이스트'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든가요.)



 ++ 예전에 볼 땐 여기 주인공 여자 친구 역으로 나오는 배우님의 정체를 몰랐죠. 팬이 아니었거든요.




 +++ 사실 제가 가장 다시 보고 싶은 크로넨버그 영화는 '스캐너스'인데요. 이게 예전에 분명 iptv에 있었는데 이젠 없네요. 끄응...; 이것도 옛날에 비디오판으로 보고 못 봤거든요. 이것 역시 이후 일본 망가, 애니메이션쪽으로 미친 영향이 상당한 영화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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