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작. 런닝타임은 1시간 47분입니다. 스포일러는 없을 거에요. 그런 게 있는 영화도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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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슨 또 과하게 깨끗한 포스터... ㅋㅋㅋ 기본 바탕 이미지만 따 놓은 버전인가 보네요.)



 - 우리의 주인공은 20대 후반의 살인 청부업자 '마틴'입니다. 능력 있고 성실해서 업계에서 잘 나갔지만 요즘 좀 별로에요. 동종 업계 종사자들과의 경쟁도 버겁고 또 마침 번아웃으로 슬럼프도 왔거든요. 정신과 상담도 받아 보지만 의사 양반이 마틴의 직업을 알게 된 후로 공포에 질려 버려서 도무지 보탬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실의에 빠져 있으니 비서 아가씨가 '니 고향 동네에서 너 나온 고등학교 졸업 10주년 모임 한다는데. 거기나 가서 재충전 하고 오렴' 하고 등을 떠미네요. 정말 가기 싫었지만, 어쩌다보니 새로 들어온 의뢰가 또 그 동네라 이것도 팔자인가... 하며 길을 떠납니다. 아마 몇 년째 주 5일로 꿈에 출현한다는 첫사랑 처자도 만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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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드라이버 정말 오랜만!! 20년전에 이름 갖고 친구들이랑 드립 치고 놀아서 미안해요!!!)



 - 살인 청부업자, 프로페셔널 킬러, 히트맨, 뭐라 부르든 영화 속에서 이만큼 인기 있는 직업이 또 있겠나 싶습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만 합니다. 이게 참 만능 소재에요. 어두컴컴 드라마에도 어울리고 화끈한 액션에도 좋고 살짝 설정 장난 쳐서 코미디로 만들어도 찰떡이죠. 보통 영화 속 '살인 청부업자'라고 하면 현실에서 그 일 하는 분들과 다르게 대부분 초절정 은둔 고수에 고독한 프로페셔널! 뭐 이런 식이니 사실상 유치한 코스츔 없는 현실적 수퍼 히어로 비슷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제 기억엔 특히 대략 세기말 즈음부터 이 직업을 갖고 개그를 치는 영화들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한국에도 '킬러들의 수다' 같은 영화가 있었고 미국이야 뭐 이 영화 말고도 수두룩 했죠. '나인 야드' 같은 것도 있었고 뭐뭐... 물론 요즘도 많습니다만. 대놓고 제목부터 노골적인 '킬러의 보디가드' 같은 영화도 있고 따지고 보면 '존윅'도 이 영역 안의 영화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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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벌 킬러 배우의 얼굴만 봐도 장르가 규정되는 느낌적인 느낌.)



 - 아무튼 그래서 이 영화의 컨셉은 '킬러가 동창회에 참석한다' 입니다. 좀 더 실제에 가깝게 말하자면 '삶이 공허해진 킬러가 귀향해 옛 친구들을 만난다' 정도 되겠죠. 그러니까 "도시로 나가서 성공하고 돈 잘 벌고 바쁘게 살지만 뭔가 현재의 삶에 부족함을 느낀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가 옛 사람들을 만나고 정을 나누다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라는 고전적인 이야기 공식에다가 주인공 직업만 킬러로 설정해 놓은 거에요. 심플하지요. 이거 하나로 한 시간 오십분 가까운 시간을 웃기려는 게 과연 제대로 구현이 되려나... 싶습니다만. 다행히도 그게 썩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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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앤 쿠삭이 동생의 비서 역할로 나오시구요.)



 - 일단 캐릭터들이 좋습니다. 뭔가 살짝 물량으로 승부하는 느낌인데 그렇게 우다다 쏟아져 나오는 캐릭터들이 대부분 귀엽고 재밌어요. 투덜투덜 말 많고 오지랖 넓은 비서(작은 누나 쿠삭!)나 겁에 질려 도망치는 정신과 의사(무려 앨런 아킨이구요) 같은 조역들은 물론이거니와 동창회에서 만나 짧게 스쳐가는 캐릭터들도 다들 뭔가 캐릭터가 확실하고 현실 옛 동창들처럼 디테일이 있으면서 또 한 번씩은 웃겨줘요. (그 중엔 큰 누나 쿠삭도 있습니다. ㅋㅋ) 


 또 대사가 좋아요. 일단 기본적으로 수다쟁이 주인공의 쉴 틈 없는 드립들도 오버 없이 적당히 위트 있게 웃겨주고요. 자꾸만 살인 청부업자라는 직업의 윤리성(...)에 대해 한 마디씩 툭툭 던져대는데 뭐, 당연히 어떤 깊이를 의도한 대사들은 아니지만 또 나름 정곡을 찌르는 풍자들이 담겨 있어서 참 별 거 아닌 상황에서 의외의 웃음을 던져 주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허황된 이야기를 뭔가 알멩이 있는 이야기처럼 치장해주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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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누나는 막내 동생의 동창 역으로... ㅋㅋㅋ 근데 이 분 보니 또 '베터 콜 사울' 생각나네요. ㅠㅜ)



 - 근데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존 쿠삭이 연기하는 주인공입니다. 아니, 주인공을 연기하는 존 쿠삭이라고 해야겠네요. ㅋㅋ 연기도 아주 좋을 뿐더러 애초에 이 영화와, 이 주인공과 너무 잘 어울려요. 원래 이 분이 좀 편안한 인상에 연기도 과장 없고, 자의식 폭발이나 겉멋 같은 게 없는 편이잖아요. 그래서 시종일관 힘 빼고 편하게 전개되는 이 영화의 톤과 참 잘 맞습니다. imdb에 배우 검색을 하면 보이는 대표작 리스트에 이 영화가 첫 번째로 올라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구나 싶었네요.

 또 댄 애크로이드나 미니 드라이버 같은 좋은 배우들이 존 쿠삭을 받쳐주는데. 두 캐릭터의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다들 자기식으로 잘 해 줍니다. 특히 미니 드라이버는 저어엉말로 오랜만에 봐서 되게 반가웠네요. 근데 검색을 해 보니 역시나 저만 몰랐지 바쁘게 잘 살고 계셨...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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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사람 좋아 보여서 까불까불거려도 얄밉지 않던 그 시절의 쿠삭찡. 여기서도 참 잘 해 줍니다.)



 - 뭐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라든가, 당신이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뭐뭐라든가 그런 것과는 당연히 거리가 먼 소소한 코미디 영화입니다. 1997년이라는 연도에 어울리는 옛날 영화 특유의 나이브한 느낌도 간간히 있구요. 

 하지만 성실한 각본과 좋은 배우들 덕에 영화의 목표 만큼은 충분히 웃겨요. 그리고 뭣보다 그 시절에도 이미 '오버하지 않게, 무덤덤한 척' 컨셉으로 만들어진 덕에 촌스럽거나 부담스럽단 느낌이 거의 없네요. 기대보다도 훨씬 깔끔하게 잘 만들었네! 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봤습니다.

 이렇게 살짝 옛날 헐리웃 영화스럽게 나이브한, 하지만 또 시절 대비 깔끔하고 가볍게 재밌는 코미디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 보셔도 좋겠습니다... 만. 물론 문제는 플랫폼이겠죠. ㅋㅋㅋ 왓챠나 넷플릭스에는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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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 나오신 '코민스키 메소드'는 넷플릭스에 있죠. 평은 참 좋아서 언젠간 봐야지... 가 벌써 몇 년 째인지. ㅠㅜ)




 + 25년 전 영화에서 29세를 연기했다니 대체 지금 존 쿠삭 나이가!??? 하고 당황해서 찾아봤습니다. 66년생이니 한국식으로 57세네요. 하이고야... 이 분도 환갑이 다가오는 중. ㅠㅜ

 근데 존 쿠삭의 필모는 "왜죠?" 라는 느낌으로 폭삭... 망했군요. 2009년작 '2012'가 거의 마지막 흥행작이었던 것 같고. 제가 본 마지막 영화는 그보다 2년 전에 나온 '1408'이구요. 음. 정말로 왜죠? 그 연기력이 갑자기 어디로 가버린 것도 아닐 텐데. 애초에 그렇게 막 블럭버스터에 나오는 대스타와 어울리는 배우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너무 망했...



 ++ 97년이 배경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10주년 동창회'라는 설정을 핑계로 80년대 팝음악들이 줄줄이 흘러 나옵니다. 특히 동창회 부분은 거의 80년대 컨셉 컨필레이션 앨범 듣는 기분이에요. 어엄청 유명한 곡들만 나오거든요. ㅋㅋ 근데 그래서 존 쿠삭의 또 다른 대표작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생각이 나더군요. 검색해보니 디즈니 플러스에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다시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도 제가 본지 20년쯤 됐으니 처음 보는 기분으로 볼 수 있어요. ㅋㅋ



 +++ 그래서 결국 나이순으로 앤, 조앤, 존 쿠삭이 나온 셈입니다만. 사실 한 명 더 있습니다. 이 집안의 큰 형은 이름이 '빌'인가 보네요. ㅋㅋ 웨이터 역으로 살짝 얼굴 비쳤다는데 역할이 없는 역할(?)이라 다시 찾아 볼 의욕은 안 생기구요. 어쨌든 그래서 무려 4 쿠삭의 출연을 달성한 쿠삭의 영화 되겠습니다.



 ++++ 이 영화 제목을 볼 때마다 '정확하게 뭔 뜻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세히 찾아 볼 생각을 안 하다가 드디어 밀린 숙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목이 'Grosse Pointe Blank'잖아요. Gross Point blank일 줄 알았는데 뭔가 철자가 이상하다 했더니 그냥 실제로 있는 도시 이름이 '그로스 포인트'이고 영화의 배경이 거깁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이 마틴 '블랭크'에요. ㅋㅋㅋ 

 물론 말장난이죠. '포인트 블랭크'가 근거리 사격이란 뜻이니 주인공 직업과도 연결되고 또 같은 제목의 옛날 영화도 있구요. 거기에다가 주인공이 영화 시작 부분에서 삶이 '공허'하다고 징징거리는 걸 생각하면 '블랭크'라는 이름 자체도 말 장난이고. 결국 이중 삼중의 말장난 제목이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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