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영국 수사물이 반갑네요. 애플 tv+가 얼마전에 6개월 무료 이벤트를 했는데 가입해 놓고서도 딱히 확 끌리는게 없던 중 이것을 발견했어요.


게리 올드만이 주인공 일행의 대장으로 나옵니다. 게리올드만은 영국 정보부 말단 부서의 부서장으로 이 부서는 본청에 속해 있지도 않고 본청에서 약간 떨어진 민간 건물에서 딱히 중요할 것 없는 업무를 처리하는 한직 부서입니다. 구멍난 양말 신고 사무실에서 방귀나 뀌는 배불뚝이 할아버지인 게리 올드만은 당연하게도 언뜻언뜻 왕년에는 무시무시한 요원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이구요. 직원들은 한직 부서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떼워나가고 있는 중인 듯하고, 게리 올드만 할아버지는 이 직원들을 대놓고 무시합니다. 그리고 전형적인 영국 남자처럼 생긴 요원이 훈련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고 이 한직 부서로 배치돼요. 이 젊은이는 정보부 고위 간부 출신 할아버지를 둔 금수저로 성취욕이 대단해서 어떻게든 한 건 올려 이 한직에서 벗어나려는데 반쯤은 필연적으로 동료들과 스멀스멀 위험한 사건에 엮여들어가게 됩니다.


한국 드라마였으면 무시당한 설움을 제대로 풀어 사이다를 먹여줄 것만 같은 설정이지만 이건 그런 거 없습니다. 사건 해결을 주인공들이 하기는 하는데 그냥 자기들 살자고 하는 일이고 해결하고나서도 피로감만 쌓일 뿐이구요. 음모를 꾸민쪽도 사람들이 괴로워 하는 걸 감상하면서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또라이라기보다는 당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무뚝뚝한 얼굴로 자기 욕심 채워나가는 걸로 묘사가 되어요. 이런 게 영국 감성인 거겠죠.


영국 수사물에서 나오는 그런 분위기가 잘 살려져 있는 드라마입니다. 좁고 축축한 런던 건물들이랑 멋대가리 없는 인물들이 나오고 제일 나쁜 놈은 옷잘입고 나이든 여자이구요. 연출면에서도 미국식, 한국식으로 익숙한 멋부리는 거 없이 차분하고 건조하기만 해요. 요원들이 ‘일’하는 장면도 별다른 긴장감이 없고 그냥 생활 공간 같은 곳에서 벌어지다보니 나름 더 살벌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합니다. 이게 영국식 멋부림이라고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마음에 들었던 건 역시 화면은 칙칙해도 감정적으로 지치게 만들지 않고 리듬이 가볍다는 점이었어요. 일단 전개가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한 시즌이 하룻밤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다 임의의 상황이 계속 터지고 음모는 촘촘하구요. 등장인물들이 급박한 상황속에 당황하는 표정 없이 썰렁 개그들을 던져대요. 이런 방식 때문에 나름 정교하게 짜여진 음모와 잔인한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무겁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시즌 마지막화 끝에 다음 시즌 예고가 나오는 걸 보면 이미 왠만큼 촬영이 된 것 같으니 다음 시즌 나오면 챙겨보게 될 것 같습니다. 무료 이용기간 내에 나오면요… 


다른 영국 수사물과 다른 점이라면 미묘하게 화각이 넓습니다. 그래서 좁고 빽빽한 느낌이 다른 영국 수사물보다는 좀 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애플TV 덕인지 화질이 굉장히 깨끗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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