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3 17:46
모처럼의 영국 수사물이 반갑네요. 애플 tv+가 얼마전에 6개월 무료 이벤트를 했는데 가입해 놓고서도 딱히 확 끌리는게 없던 중 이것을 발견했어요.
게리 올드만이 주인공 일행의 대장으로 나옵니다. 게리올드만은 영국 정보부 말단 부서의 부서장으로 이 부서는 본청에 속해 있지도 않고 본청에서 약간 떨어진 민간 건물에서 딱히 중요할 것 없는 업무를 처리하는 한직 부서입니다. 구멍난 양말 신고 사무실에서 방귀나 뀌는 배불뚝이 할아버지인 게리 올드만은 당연하게도 언뜻언뜻 왕년에는 무시무시한 요원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이구요. 직원들은 한직 부서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떼워나가고 있는 중인 듯하고, 게리 올드만 할아버지는 이 직원들을 대놓고 무시합니다. 그리고 전형적인 영국 남자처럼 생긴 요원이 훈련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고 이 한직 부서로 배치돼요. 이 젊은이는 정보부 고위 간부 출신 할아버지를 둔 금수저로 성취욕이 대단해서 어떻게든 한 건 올려 이 한직에서 벗어나려는데 반쯤은 필연적으로 동료들과 스멀스멀 위험한 사건에 엮여들어가게 됩니다.
한국 드라마였으면 무시당한 설움을 제대로 풀어 사이다를 먹여줄 것만 같은 설정이지만 이건 그런 거 없습니다. 사건 해결을 주인공들이 하기는 하는데 그냥 자기들 살자고 하는 일이고 해결하고나서도 피로감만 쌓일 뿐이구요. 음모를 꾸민쪽도 사람들이 괴로워 하는 걸 감상하면서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또라이라기보다는 당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무뚝뚝한 얼굴로 자기 욕심 채워나가는 걸로 묘사가 되어요. 이런 게 영국 감성인 거겠죠.
영국 수사물에서 나오는 그런 분위기가 잘 살려져 있는 드라마입니다. 좁고 축축한 런던 건물들이랑 멋대가리 없는 인물들이 나오고 제일 나쁜 놈은 옷잘입고 나이든 여자이구요. 연출면에서도 미국식, 한국식으로 익숙한 멋부리는 거 없이 차분하고 건조하기만 해요. 요원들이 ‘일’하는 장면도 별다른 긴장감이 없고 그냥 생활 공간 같은 곳에서 벌어지다보니 나름 더 살벌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합니다. 이게 영국식 멋부림이라고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마음에 들었던 건 역시 화면은 칙칙해도 감정적으로 지치게 만들지 않고 리듬이 가볍다는 점이었어요. 일단 전개가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한 시즌이 하룻밤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다 임의의 상황이 계속 터지고 음모는 촘촘하구요. 등장인물들이 급박한 상황속에 당황하는 표정 없이 썰렁 개그들을 던져대요. 이런 방식 때문에 나름 정교하게 짜여진 음모와 잔인한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무겁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시즌 마지막화 끝에 다음 시즌 예고가 나오는 걸 보면 이미 왠만큼 촬영이 된 것 같으니 다음 시즌 나오면 챙겨보게 될 것 같습니다. 무료 이용기간 내에 나오면요…
다른 영국 수사물과 다른 점이라면 미묘하게 화각이 넓습니다. 그래서 좁고 빽빽한 느낌이 다른 영국 수사물보다는 좀 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애플TV 덕인지 화질이 굉장히 깨끗하더라고요.
2022.10.03 18:16
2022.10.04 13:45
원래 전부 한시즌 분량인데 찍은 걸 보니 완성도가 너무 좋아서 두시즌으로 나눴다고 합니다.
2022.10.04 18:36
2022.10.03 18:47
이거 아주 괜찮죠. 초반 트릭이 좀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저는 살짝 기대가 저하된 상태로 출발했는데요. 전체적으로 연출도 깔끔하고 이야기도 앞뒤가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배우들 연기도 참 좋았고요. 올리비아 쿡이랑 개리 올드먼에 낚여서 시작했다가 아주 만족스럽게 본 시리즈입니다. 르카레 분위기 같으면서도 나름 따뜻한 느낌이 많아요. 언더독들 이야기라 더 그렇게 느껴졌던것 같아요. 스푹스같은 쇼에 비하면 아주 푸근한 첩보물이었습니다 ㅎㅎ 일단 캐릭터만 자리 잡아도 성공인 것이 1시즌인데 소기의 목적은 아주 초과달성했으니 다음 시즌부터는 훨씬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을 것 같아요. 개리 올드먼은 이 시리즈를 끝으로 은퇴를 할 것처럼 이야기했지요. 4시즌까지 확정이니 앞으로 이 양반의 느릿느릿한 달음박질을 몇 년은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은퇴작으로 이정도면 썩 괜찮은 것 같아요. ㅎㅎ
+여담입니다만 미국분들은 6부작 만드는 법을 영드에서 좀 배워야 할 것 같아요. 확실히 영국드라마는 6부작의 리듬을 아주 잘알고 있습니다. 디즈니 플러스의 기대작들이 죄다 영화를 늘여만든 6부작 같아서 엉망진창인 것과는 아주 다르지요.
2022.10.03 19:00
2022.10.03 19:13
평이 되게 좋아서 기억은 하고 있지만 애플tv 진출은 제겐 아직 너무나 무리인 것... 지금 구독 중인 서비스들만 해도 감당이 안 되네요. ㅋㅋ
그러니 호평 애플tv 오리지널들 더 더 많이 쌓일 때까지 한 1, 2년 더 버텨보겠습니다. 하지만 소감 글은 언제나 열심히 찾아 읽는다는 거!!
그리고 올리비아 쿡이 나왔으니 꼭 볼 거라는 거!!! ㅋㅋ 요즘 하우스 오브 드래곤도 나오고 올리비아 쿡 갑자기 다시 잘 나가네요.
2022.10.03 19:33
2022.10.05 09:33
2022.10.05 12:55
2편도 사실 좀 아슬아슬합니다. ㅎ 뭣보다 용어나 이름들이 영 안붙더라구요. 그래도 본 궤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꽤 쾌적한 편이에요. 1편이 취향에 크게 안맞으셨다면 그냥 취향에 안맞으시는 걸수도 있겠고요.
2022.10.06 10:06
게리 올드만이 나온다니, 그리고 작품 분위기도, 너무 보고 싶은데 애플이네요. 애플은 가입할 때 CVC를 물어보더군요. 걍 포기했어요.
"슬로 호시스"가 다른 곳에 풀릴 때를 기다려봅니다.
2022.10.06 15:39
꼭 가입하시라는 건 아니지만 간편결제도 될 거에요. 글에 쓴 6개월 무료가 카카오페아 결재 이벤트였거든요.
2022.10.06 15:53
네, 그런데 전 카카오페이 안쓰니까요. 여기 가입하려다가 카드 비번에 갑자기 오류까지 나서
엄청 힘들어져서 애플이라면 좀 절레절레하게 되네요.
검색해 보니 시즌2도 올 해 공개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