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보면서 문학 청년을 위한 드라마 같다 생각했는데 과연 원작이 있습니다. 원작하고는 전개가 다르고요.

부유한 유부녀 화가인 희주에게는 외도 경험이 있습니다. 화가로서의 커리어도 잘 나가고 있고, 약간 골칫덩이지만 남매를 물질적인 부족함 없이 기르고 있고, 남편은 드라마에서 본 적 없을 정도로 가정적인데다 아직 애인처럼 아내를 사랑합니다.
이런 주인공 앞에 예전 외도 상대의 애인(해원)이 나타나 주변을 맴돌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상대 남자보다 그 애인을 먼저 알았고 두 여자는 서로 못 가진 것을 동경하면서 가까워졌던 과거가 있어요. 그러던 중 해원의 애인인 남자가 나타나서 주인공 희주와 엮이는 거죠.

드라마는 좀 갑갑하게 진행됩니다. 16부작인데 뭔가 터드릴 것 같던 해원은 옆에서 음울한 기운만 뿜어낼 뿐 뭘 하진 않아요. 존재만으로도 주인공은 숨이 막힐 법하지만 주인공이 서서히 숨막혀서 죽어가는 걸 16부에 걸쳐 보기는 괴롭죠.

피부가 희고 좋기로 유명한 고현정이 중반까지 몸 어딘가에 빨간색을 지니고 등장합니다. 전신을 빨간 옷으로 감쌀 때도 있고, 매니큐어일 때도 있고, 입술만 붉을 때도 있는데 말간 피부와 그 빨강 조화가 참 예뻐요. 후반으로 갈수록 빨강은 사라집니다.
대척점에 있는 해원은 ' 낡은' 초록색 코트를 내내 입고 나오면서 대놓고 희주 고현정과 대조된 모습을 보이고요. 이 초록도 후반으로 갈수록 밋밋한 베이지 갈색으로 바뀝니다.

외도남은 의도적으로 외모 말고는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캐릭터로 만든 것 같고요. 제 취향 외모가 아니긴 한데 이 남자 외모 찬양 글은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초미남이라 치고. 스타일링도 대놓고 고독한 천재 예술가 스타일이고요.
나이 좀 먹은 사람이 보기에는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캐릭터지만 저도 어릴 때라면 꽤나 좋아했을 것 같긴 합니다. ㅋㅋㅋㅋ
일부러 외적 매력 외에는 없이 만든, 대놓고 빌런인 점이 재미있어요.

성적인 매력은 넘치지만 가정이라는 사회를 같이 구성하기엔 능력치가 떨어지는 사람이 있죠. 아니면 그 반대로 돈도 많고 다정한데 너무 못생겼다든가.
동물은 아름다운 외모가 건강, 즉 번식에 적합함이라는 증거겠습니다만 인간세상은 외모를 윤기나는 긴 털로만 판단하는 건 아니니까요. 번식과 양육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요.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어쩌면 여기서 시작되는 것도 같아요. 춥고 배고파서 돈 많고 못생긴 배우자를 선택했는데 배부르고 등 따시니까 배우자 외모가 너무 거슬리는 거죠.
이 비극에 대한 대처로 법과 도덕과 윤리라는 도구가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은 이 망을 쉽게 찢어버립니다.
주인공은 외도남의 외적인 매력에 끌리지만 같이 사회생활하기 좋은 동료는 아니었어요. 극중에서는 대책없다는 말로 표현되죠. 그래서 가정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주인공의 남편은 좋은 동료이자 외모마저 번듯해요. 물론 주인공의 취향이 아닐 순 있고 극중에서 외모 언급은 없습니다만, 중년 남자 배우 중에서도 꽤 번듯한 외모의 최원영이 남편 역을 맡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냥 심심하고 지루해서 -극중에선 극도로 외로워서- 인생을 한번 불살라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주인공은.

느슨하고 지루하고 답답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주변인물은 꽤 촘촘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비중이 엄청나진 않지만 주인공의 시누이 부부도 적당히 현실적으로 얽혀 있어요. 이 부부의 개별적인 갈등은 갈등대로 진행되는데 주인공과는 작위적이지 않을 정도로만, 그런데 전개에 꼭 필요하게 얽힙니다.
개천용 변호사 사위가 병원과 학원을 가진 처갓집 일 보는 게 드문 일은 아니겠죠.

주인공 고현정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군요.
데뷔작인 '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부터 죽 봐왔습니다. 미스코리아 선이 나온다길래 발연기 감상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라, 어색한 대사를 너무 자연스러운 말투로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이 분을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생각해 왔죠.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새삼스럽게 느꼈어요.
남한테 악다구니 써본 적 없는 사람이 악에 받쳤지만 여전히 뭔가 어설프게 때리는 복잡한 장면을 현실에서 실존인물 보는 것처럼 보게 되더군요.

기본적으로 전개도 주제도 답답한 드라마라서 딱히 권하진 않습니다. 나 사는 것도 괴로운데 왜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일부러 봐야 하냐 하는 분(접니다 ㅋㅋㅋ) 은 보시면 안 되고요.사는 데 괴로움이 없-다기 보다 극중 인간의 괴로움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분, 스스로 문학청년과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보셔도 좋을 거예요. 주인공보다도 외도남 애인인 해원을 보는 것이 괴롭습니다.

결말은 대략 합당하게 죄가를 받는 것 같네요. 물론 억울한 피해자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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