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백종원

2022.12.02 21:12

Sonny 조회 수:838

음식을 만들다보면 알게 되죠. 나름대로 먹을만한 음식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는걸요. 파, 양파, 당근 세 종류의 야채와 고기를 설탕을 뿌린 간장 베이스 혹은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에 버무려 단짠맵을 만들면 음식은 술술 넘어갑니다. 이른바 호프집 술안주 스타일의 음식이 완성되는데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하면 실패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운 걸 많이 못먹어서 항상 고춧가루와 고추장은 조금, 그리고 간장을 조금 더 하는 식으로 간을 맞춰요. 물론 한국인답게 마늘은 필수입니다. 


문제는 설탕의 맛입니다. 제가 볼 땐 이건 요리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미각을 도취시키는 마약의 영역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한 때 어떤 요리를 해도 저 단짠맵 맛이 나서 살짝 고민이 되더라구요. 그냥 여러가지 자극을 미뢰에 주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설탕의 단 맛으로 거부감을 없애고 음식을 식도로 옮기게 하는 느낌? 음식의 맛이라는 게 단순히 조미료의 맛이라 원재료의 맛이라든가 숙성된 맛이라든가 여러가지 야채와 고기가 서로 어울리는 화학작용의 맛이라거나 여러가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한 요리는 매번 짠맵이라 무슨 설탕공정을 마친 대량식품 같은 맛이 나는 것 같은 회의를 살짝 느끼는 거죠.


과거에 용산역 아이파크몰의 어떤 식당을 갔는데 거기서 제육볶음을 먹었습니다. 제육볶음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맛들이 있으실 거에요. 저도 대충 단짠맵 안전빵으로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웬걸, 설탕맛이 거의 안나더군요. 그러면서 고기에서 되게 깊은 매콤함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이를테면 시래기 국의 좀 구수한 맛이 제육볶음에서 났는데 되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게 더 높은 레벨의 요리구나... 이런 깊은 맛을 내는 비법이 뭔지 고민을 했습니다. 된장에 재워두는건지, 특별히 배합된 향신료를 쓰는 건지. 그 때 그 제육볶음 이후로 고추장 베이스의 돼지고기를 요리하는 게 좀 꺼려지더군요. 그 깊은 맛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 단짠맵만 만들 수 있을테니까요.


그와 반대로, 얼마전에는 배달요리에서 데리야끼 소스 삼겹살 덮밥을 시켰는데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데리야끼 소스가 들척지근하다못해 꿀에 간장을 몇방울 떨어트린 느낌이더군요. 그 지독한 단맛이 맛의 모든 균형을 깨트리는 것이 좀 괴로웠습니다. 차라리 소스 없이 삼겹살만 소금에 찍어먹는 게 낫겠다 싶더군요. 예전에 칠리소스 새우구이도 어딘가에서 먹었는데 그 유치한 단맛 때문에 즐거운 식사시간이 산통 다 깨졌습니다. 탐구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맛에 무성의함마저 느꼈어요.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달다는 자극을 맛있다는 걸로 속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런 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변화일수도 있겠지만요.


설탕의 화신인 백종원을 어떻게 제 요리에서 걷어낼 것인가. 이것이 요새 저의 고민입니다. 그런데 저는 또 기본적으로는 일식 가정요리 스타일을 좋아해서... 뭔가 좀 산뜻하게 짭쪼름한 느낌의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여전히 다시다 없이는 국을 끓일 수 없고 달다구리 없이는 요리가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뭔가를 우려내는, 진한 맛을 낼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들어 이 느낌에 가장 가까웠던 건 제일제면소의 음식들이었어요 ㅋ 미식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은 그것도 결국 단짠맵 기성식당이라고 하시겠지만 전 제일제면소 정도면 그 우악스런 단짠맵에서 상당히 벗어난, 깔끔한 맛을 낸다고 느낍니다. 덜 맵고 짜고 달게. 그러면서 맛있게.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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