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니아

2022.12.13 11:54

Sonny 조회 수:281

고대 그리스에는 손님을 무조건 환대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외부인이 오든 일단 먹을 것과 잠자리를 내어주고 극진히 대접하라는 문화인데 현대인의 기준에서는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죠. 이런 문화가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그리스인들이 유난히 인성짱짱, 이런 게 아니고 이들이 가장 크게 의존하는 것이 무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팔러 오든 사러 오든 배를 정박하는 곳이 위험해서야 장사를 할 수가 없을테니까요. 지금처럼 자본주의가 도래해서 먹을 것과 다른 재료들이 넘쳐나는 상황도 아니었을텐데 이렇게까지 투자를 한 걸 보면 좀 대단해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저 크세니아를 경험했던 외부인들은 그리스에 대해 남다른 기억을 가지고 계속해서 여행이나 무역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 그리스가 문화적으로 유난히 융성할 수 있던 것도 그 곳을 지나쳐가며 흩뿌려진 수많은 다양성의 씨앗들 덕은 아닐련지요.  


현대 사회에는 의외로 남을 환대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함께한다는 건 그만큼의 문화적, 시간적 경험이 공유가 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런 사이는 "친구"를 만들 시기가 지나면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집니다. 어딘가에서, 특정한 공동목표를 공유한다는, 이해타산적인 관계들로 주로 이뤄지는데 이 사람들을 포함해서 환대를 주고 받을 일은 결혼식 아니면 장례식밖에 없을 겁니다. 심지어 그 행사들조차도 관계가 목적이 아니라 의례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참석자들이 진정으로 환대를 즐기기가 어렵죠.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 신의 분노를 두려워해서라도 환대를 실천했겠지만 이익과 합리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은 과연 환대를 경험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요. '엔빵'과 '뿐빠이'의 정신으로 깔끔한 것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정성의 개념은 이제 좀 고루한 것이 되고 만 것은 아닌지.


최근 어떤 자리에서 '환대'의 개념을 몸소 경험할 일이 있었습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색다른 경험을 위해 음식을 이리저리 싸온 분의 수고로움에 탄복하게 되더군요. 뭘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모인 사실 자체가 어느 정도의 환대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자리였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환대를 받는만큼 우리 모두가 잊고 있던 우리 자신의 귀함을 상기해보게 되기도 하구요. 배달음식도 그 자체로 함께 있는 사람들이 즐기기에는 모자라지 않았겠지만, 맛있는 음식 덕분에 다소 평이하게 흘러갈뻔한 하루가 훨씬 더 값진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리스인들도 이런 걸 분명히 알았겠죠. 이 때 받은 감동을 어떻게 하면 또 재현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귀갓길에 별의별 상상을 다 해보았습니다. 아예 에어프라이어를 갖다놓고 삼겹살과 다른 튀김 음식들을 구워먹어볼까? 버너를 갖고 와서 샤브샤브를 다 해먹으면 어떨까? 제 개인적으로는 치킨과 피자 외에 다른 창의적 메뉴를 다들 맛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저도 조금 사삭스러울지언정 이런 환대를 몸소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분명한 건, 한 사람의 환대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유대감을 더 높은 수준으로 갱신했다는 것이죠. 그 분에게 샤라웃!!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50225/6978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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