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전 다녀왔습니다

2023.01.03 15:46

Sonny 조회 수: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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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ㅋ


이번 전시회는 다른 의미로 제게 좀 독특했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봤던 [광부화가들]이라는 연극의 주장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연극은 예술이 꼭 귀족스럽거나 노동과의 결별을 통해서만 이뤄지진 않는다고 주장했었죠. 연극의 결말에서 인용하는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아마 불행하게 살았던 화가를 꼽으라면 그는 거의 첫손가락에 꼽힐 화가일 것입니다. 연극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비록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의 눈은 절대 노동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예술적 시선은 일상을 초탈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서 천하고 비루하게 보이는 것들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주장을 했습니다. 예술과 노동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가 될 수 있고 또 그럴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죠. 그 주장을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 합스부르크 전시회를 보니 의외로 그 주장이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예술적 감흥은 조금 덜했습니다.


합스부르크 전시회의 구성이 제게는 좀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화가의 일생에 따라 그 작품들을 열거하는 것이라면 평이한 전시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합스부르크 전시회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정자들을 중심으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1부는 루돌프 2세, 2부는 페르디난트 2세, 3부는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이런 식으로 가장 영향력있던 수집가들의 연대순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관람객의 입장에서 감상을 하는 것은 결국 그 시대 유럽의 최고 권력자 가문의 취향입니다. 글쎄요... 세계 거장의 작품들은 거의 절대적으로 후원자들의 씀씀이와 취향이 작용합니다만 역시나 강조되어야하는 것은 창조자의 성취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이건희 컬렉션이 또 진행 중인데 제가 궁금한 건 이건희의 수집 아래 모여있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지, 이건희의 취향 그 자체는 아니거든요. 합스부르크 가문의 권력자들이 예술품을 막 수집하고 또 후원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전시회의 목적이 되고 그 그림들은 그걸 증명하는 수단 같아서 보는데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 물론 어떤 기준에 따라서든 그 시대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그 자체로 감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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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물의 초상화들을 보는데도 좀 기분이 꽁기꽁기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나중에 이건희 일족의 초상화, 이런 식으로 이건희, 이재용, 이부진... 이런 식의 초상화들이 늘어져있으면 보는 저는 계급적으로 영 상쾌하진 않을 것 같으니까요. 그림을 보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 그림이 담고 있는 소재와 그 그림이 발휘하는 정치적 힘을 생각해볼 때 개념적으로 지나치게 전통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디 초상화라는 게 사진이 없던 시절 자기 자신을 최대한 미화시켜서 표현하고 그걸 또 유지하는 권력적인 수단이었으니까요. 역으로 초상화가 그려질 일이 거의 없는 농민과 평민들의 그림들이 더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합스부르크 전시회를 차지하는 브뤼헐의 그림들이 더 많았으면 그래도 한편으로는 대조가 되면서 더 즐겁지 않았을지... 물론 이번 전시회의 컨셉은 귀족들의 수집품 전시방에 들어온 것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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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찍은 사진 아닙니다...)


[제철소와 도둑이 있는 산 풍경]이라는 작품입니다. 이런 그림들이 오히려 보는 재미가 더 있었어요. 저는 처음에 도둑이 어디 있나 했습니다. 그림의 맨 왼쪽 아래 구석을 보면 좁은 길로 쫓기는 어떤 짐꾼과 칼을 들고 그 뒤를 쫓는 험악한 강도들이 보입니다. 그림의 구석에서는 디테일하게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조금만 오른쪽으로 가면 한없이 평화로운 원거리의 거대한 산들과 작아보이는 사람들만 보입니다. 옹졸한 인간사를 숨겨놓은 채 저 멀리서는 웅장한 자연과 소박한 일상만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은 이 구도가 속세의 잔인한 일들을 자연으로 숨기는 듯 해서 좀 재미있었달까요. 어쩌면 이조차도 우리 인간들은 저 멀리 산과 들과 구름만을 보고 있다네! 옆에서는 이웃이 돈 다 털리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며 풍자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예술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제 안의 기준점이 나름 선 것 같아서 흥미로웠습니다. 저라고 당연히 부티나고 화려한 그림들이 싫을리 없죠. 다만 어떤 전시회들은 그 구성에 따라 보는 사람들을 어떤 세계로 초대하는지, 그림으로 인도하는 그 길들이 다 나눠지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제가 본 연극이 재능이 없되 후원에 진심인 갑부와 재능은 있지만 예술을 하찮게 여기는 작가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었다면 이런 후원자들의 은덕(...)을 보다 영광되게 여기며 전시회를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야 연극의 입김이 다 빠지지 않아서 조금은 심드렁하게 보았지만 그래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현재 상영중인 [코르사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초상화를 볼 수 있던 것도 나름의 수확이었어요.


@ 방탄소년단 RM이 끗발이 떨어지기 전에 RM 추천 전시회 같은 거 한번 하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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