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봤어요. 몰입도가 아주 좋았습니다. 운동 경기 연출에 있어서 이전에 없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어요. 애니메이션보다는 영화에 가까웠고, 영화 안에서는 어찌보면 다큐멘터리스러운 경기 연출을 보여주었습니다. 연출 스타일은 아주 건조한데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굉장히 뜨겁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혹은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슬로우모션이나 인서트 컷, 효과음 같은 게 굉장히 억제되어 있고 사용법도 다릅니다. 만화에 나오는 경기 장면들을 충실히 재현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로 있었던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원작 슬램덩크의 탁월한 장점이 현장감을 극대화한 면이긴 했지만 애니메이션은 또다른 느낌의 현장감이 있었어요. 


3D로 구현된 경기장면은 만화에 이어 애니메이션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운동 경기 연출의 문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마 이후의 스포츠 애니메이션들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을 것 같네요. 영화에도 이런 방식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운동경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었어요. 농구라는 스포츠의 한 경기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디테일을 전지적 시점이 아닌 수평적 시점에서 보여줍니다. 잘 짜여진 농구 시합에서 벌어지는 경기 양상이나 캐릭터들의 감정 등의 모든 드라마를 작가가 개입하지 않고 땀방울이 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치밀하게 쫓으며 관찰하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나중에 드라마 파트를 빼고 경기 장면만 이어붙인 영상물이 반드시 나오지 않을까, 혹은 팬들의 편집 버전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역시 이런 묘사는 농구에 대한 애정이 무척 크고, 또 잘 알고 있고 그러면서 만화 연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던 연출의 대가 이노우에 작가님이라서 가능했지 싶네요. 


작화는 물론 연출 방식에 필연적인 선택이었겠구요. 그런데 3D로 만들어진 작화가 오히려 훨씬 좋더라구요. 약간 어색한 부분도 좀 있었지만 그보다는 마치 펜화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어서 작화 자체를 보는 게 아주 즐거웠습니다. 중간중간 2D로 만들어진 부분도 있었는데 오히려 더 어색해 보였어요. 3D 애니메이션 작법에 있어서도 굉장히 뛰어난 성취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되네요. 


이야기는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해서 원작의 사건을 보여주는 거였고요. 사실 송태섭의 드라마 파트가 없었더라도 그냥 완성이 되는 애니메이션이긴 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원작에 이야기를 추가한 확장판 개념으로 다가왔어요. 스타워즈 사가 마냥 이런 방식으로 다른 시합들도 수없이 만들어 낼 수 있겠다 싶었네요. 나올 때마다 재밌게 볼 것 같고요. 


고등학생들이 너무 멋지더군요. 송태섭의 시선 때문이었는지 강백호 캐릭터가 유난히 또라이더라구요. 실은 만화에서도 그랬긴했는데 영상으로보니 그런 미친 면 마저 훨씬 사실적으로 다가오더군요. 강백호 소년은 영화의 톤 때문에도 현실에서 만나면 눈도 안마주치고 피해 가게 될 것 같은 청소년이었어요. 송태섭 소년도, 정대만 소년도 농구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지만 아무튼 농구를 해서 천만 다행이에요. 이 문제아 트리오들은 자꾸 현실의 문제아들이랑 겹쳐서 머리가 좀 아프더라구요. 되게 있을 법한 애들이었어요. 그들이 겪는 사건과 그들의 감정, 그들이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전부 다요.


저는 더빙판을 봤는데요. 영화 초반 성우들 목소리 톤이 영상과 잘 안붙는 느낌이긴 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는 연기 자체는 좋았네요. 특히 강백호 연기가 좋았구요. 안감독님 목소리도 좋았어요. 성우들 목소리를 녹음하고 믹싱하는 데에도 꽤나 공을 들인 느낌이었구요. 감독의 의도는 일본 성우들 연기에 더 잘 반영되어 있을테니 자막판도 보고 싶네요.


만화책 안보고 그냥 보셔도 되지만 산왕전 정도는 다시 보고 봤으면 더 재밌게 봤을 것 같기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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