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브라더스는 대략 80년대 중반쯤에 잠정 폐업을 하고 그때까지 만들었던 모든 영화자산을 동결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세기(...)가 지난 2000년대가 되어서야 닫아걸었던 창고문을 열고는 갇혀있던 자산들을 세상에 다시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보자면 VHS 전성기를 건너뛰고는 DVD 시대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홈비디오 시장에 진출한 거였죠. 그동안 영상매체의 세대가 변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높이도 높아졌습니다. 적어도 10여년 이상, 길면 반백년 까지도 창고에 묵혀두고 있던 필름을 디지탈 시대의 눈높이에 맞춰서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리마스터가 필수였고, 쇼브라더스와 DVD 매체 출시를 담당한 천영오락(셀레스철)은 영상복원과 리마스터에만 거금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도저히 수십년된 영화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모습이었거든요.

시간이 좀 지나면서 (양)덕후들은 이 겉보기에는 삐까번쩍한 쇼브라더스 리마스터판 DVD들이 속으로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안고있었다는 걸 간파하게 됩니다. 리마스터하는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니까, 되도록이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꼼수를 쓴거였습니다. 뭐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건 프레임 삭제 문제입니다.

정식 리마스터판이 나오기 전에도 유명한 소수의 작품들은 해외에 수출된 판본을 가지고 만든 (화질등이 무척 좋지 않은) 비디오물들이 나와있었는데 이런 해외판과 비교해서 천영에서 내놓은 리마스터판의 상영시간이 짧은 것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에 어디 뚜렷하게 삭제된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버전인데도 상영시간에 차이가 났다는 겁니다.

여기 의문을 품은 한 양덕이 가지고 있던 기존 비디오와 리마스터판을 1:1로 대조해서 비교해보고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영화의 수많은 프레임들이 삭제되어있었던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영화란게 여러번에 걸쳐서 나눠서 찍은 필름들을 이어붙여서 하나로 만드는 거잖아요. 이렇게 필름을 편집해 붙이는 과정에서 필름 A와 필름 B를 붙였다면 리마스터할 때 A의 마지막 부분에 몇 프레임을 생략하고, B의 앞부분 몇프레임을 생략해버린 거였습니다. 이런식으로 영화 내내 계속 야금야금 프레임을 삭제해서 많으면 수천 프레임이 날아갔더라는 겁니다. 그 결과 영화가 짧으면 십여초에서 길면 몇분씩 단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장면을 통째로 들어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삭제되었다는 걸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뭐 어찌보면 영화를 보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삭제된 DVD를 사람들은 재미나게 잘만 봤으니까요.

영화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영화는 편집으로 완성되는 거고 이런식으로 프레임을 삭제해버리면 영화를 다시 편집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죠. 새로운 영화를 하나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DVD로 출시된 쇼브라더스 영화들을 보면 편집이 어색하게 좀 튄다싶은 부분들이 꽤 있었는데 이게 프레임 삭제의 여파가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게됩니다. 프레임을 들어내도 정지되어있거나 정적인 화면 같은데서라면 거의 표가 안나겠지만, 프레임 삭제가 있다는 게 확인된 영화들 중에는 무협영화에서 한창 싸우고 있는 장면의 무술 동작들을 잘라내 버린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철학이나 기준같은걸 두고 한 게 아니라 무작위로 하지 않았나 싶어요.

글구...  이런 프레임 삭제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최초로 출시된 홍콩버전에 비해 나중에 유럽이나 미주쪽에 출시된 DVD들은 화질등이 더 개선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때 몇몇 작품들은 프레임삭제까지 동반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미 첫번째 출시판부터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거기서 또 잘라낸 거죠.
블루레이로 나오는 것들 중에도 일부는 DVD 보다 십여초 내지는 몇분 더 짧아진 것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리마스터를 새로 할 때마다 조금씩 더 잘라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마도 UHD 버전이 나오면 또 더 짧아지고 8K로 나오면 그때 또 더 짧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건... 요즘들어 유럽이나 미국에서 나오고 있는 쇼브라더스 영화 블루레이들 중에는 천영오락 버전에 비해 상영시간이 더 늘어난(=프레임 수가 더 많은) 것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별도의 소스이거나 별도의 리마스터를 하고있는 것 같아요.



몇년전 극장에서 서스페리아 재개봉판을 봤을때... 영화 시작하기전 리마스터와 관련된 문구가 나오던데... 영화의 전체 프레임수를 맞추기 위해서 손실된 프레임은 컴퓨터로 복구했다고 나오는 걸 보고 속으로 좀 복잡한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어디서는 돈 아끼겠다고 멀쩡히 있는 프레임을 들어내고 있는데... 영화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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