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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던 사촌동생과 롯데월드를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런 동생이 어느새 장성해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인서울을 한 게 나름 기특하기도 하고 또 이제 성인도 되었으니 술을 한 잔 사주고 싶더군요. "갓" 스무살 청년들이 다 그렇듯  이제 그도 막 주류에 대한 호기심에 눈을 떠가고 있었습니다. 사촌동생과 만나서 히히덕거리고 있었는데 당황스럽게도 과보호 고모부에게 전화가 와서 "술 먹이지 마소~"라고 언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쿨하게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사촌동생이 술을 먹으면 안되는 허약체질도 아니고 이미 자기가 알아서 홀짝거리고 있는데다가 저 자신도 술을 별로 즐기지 않아서 끽해야 하이볼이나 마실 건데! 사촌동생도 자기 아버지에게 알러지를 일으키더군요. 늦둥이에게 애착을 가지시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 방법론으로 교감이 썩 잘 이뤄지는지는.... 


툴툴대는 사촌동생을 데리고 레드스타란 곳을 갔습니다. 원래는 을지로의 다른 이자까야 비슷한 곳을 가려고 했는데 하필 임시휴업이라 그나마 더 늦게 열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려다보니 선택지가 좁아지더군요. 가격대가 퀄리티에 비해 저한테는 좀 불만족스럽긴 했는데 사촌동생이 신기해해서 또 금새 흐뭇해졌습니다. 원래 을지로 쪽 가게들이 좀 힙하게 생겼으니까요. 저는 이제 이런 분위기에 크게 휘둘리지도 않고 미뢰의 상한선도 얼추 이만원 안팍이라 흠... 저 사진 속 돼지고기도 뭔가 힙하게(?) 생기긴 했는데 좀 많이 짜서 그냥 그랬습니다. 하이볼도 한잔에 만원이면 좀 비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지만 달달해서 잘 넘어갔습니다. 


이 날 전체적으로 대화의 테마는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사촌동생이 오타쿠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는데요. 저는 그를 오타쿠라고 정의를 내렸는데 그는 자꾸 저항을 하는 상황입니다. 사촌동생은 [귀멸의 칼날]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저한테 영업도 하고 또 피규어도 몇개나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이번에 개봉한 [귀멸의 칼날]을 보러가자고 합니다. 제가 볼 때 이건 충분히 오타쿠 같거든요...? 그런데 자기말로는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귀멸의 칼날]은 자기 또래의 거의 대다수가 챙겨보거나 알고 있는 메이저한 작품이고, 자기는 그렇게까지 빠지진 않았답니다? 피규어를 살 정도면 충분히 빠진 거 아닌가 싶은데... 요즘 세대의 [귀멸의 칼날]이 저희 세대의 [원피스]같은 느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좀 아리까리합니다. 개강총회 때 "넌 좋아하는 지주가 누구야? 난 수주를 좋아해!" 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이랑 친해지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자긴 그 정도 "씹덕"은 아니랍니다. 흠....


또 하나의 주제는 저의 "라떼는 말이야~" 사발풀기였습니다 ㅋㅋ 사촌동생이 자꾸 자긴 뭘 하고 싶다, 뭘 어떻게 하면 되냐, 형은 이 때쯤에 뭐 어쨌냐 묻길래 저도 모르게 어깨에 벽돌을 얹고 두 손을 앞으로 한번 털고~! 왕년의 이야기를 해대고 말았습니다 크흐흐흑 내가 호주에 워홀을 갔을 때는 일을 혹독하게 해서 살이 쪽 빠지고 날씬했었는데 대만 친구들이 나를 어쩌구 저쩌구... 하 정말이지 멈출 수가 없더군요. 극혐인데 자꾸 사발을 풀게 됩니다 ㅠ 그래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계속 양해를 구했습니다. 지금... 라떼 타임? 라떼 타임입니까? 마셔도 됩니까? 사촌의 협의 하에 라떼 토크를 시전했고 이야기를 끝낼 때마다 살짝 쓴 맛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사촌동생이 너무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면서 감탄하니 라떼를 안 풀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술값 내니까 한 세 사발 정도는 풀어도 되는 게 강호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동생도 나름 재미있어 했을 거라 믿습니다.


나중에 계속 어디가보자 어디가 좋아 하면서 문화탐방 예약만 한 스무군데를 해놓았습니다 ㅋ이렇게 사촌동생이 아직 어리고 돈도 안벌 때 뭘 사주고 같이 노는 게 사촌으로서 친분도 쌓고 생색도 내는데 가성비가 좋은 것 같습니다ㅋ 사촌동생이 자긴 한명당 만원빵으로 쏘주만 먹고 오뎅탕 계속 물부어가면서 술먹었다고 해서 이런 게 신기하대요. 저희는 1차를 저기 레드스타에서 끝내고 2차로는 충무로에 있는 보금보라는 곳에 가서 하이볼 무한리필로 신나게 마시다가 들어갔습니다. 아직 어린 동생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지지 않길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달짝지근한 하이볼을 마시고서 소주와 맥주가 맛없다는 편견에 빠져 술을 멀리했으면 하는 큰 그림도 살짝 그려놓고 있습니다 후후... 하지만 세월은 빠르고 저는 이제 과거나 팔아대는 으으른이 되어버렸다는 자괴감도 살짝 들어서 좀 킹받는군요. 재미있는 경험을 계속 갱신하는 거 말고는 답이 없을 듯 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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