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속의 특징을 보면 한국, 특히 기성세대의 행태를 이해하기 쉽다고 합니다.

무속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에 따라 섬김과 축출의 대상이 나뉘어지지 않습니다. 강함과 약함에 따라 태도가 달라집니다.

호랑이나 역신과 같은 강한 신은 비록 악신이라도 달래고 한 상 차려주는 것이고, 불쌍한 원혼이라도 힘이 없으면 "여기가 어디라고!" 호통쳐서 쫓아내요.

이러한 태도는 한편으로는 윤리의식의 미숙함으로 볼 수 있지만, 달리 보면 원래 악하고 선한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가 그렇게 만든다..는 자세이기도 해요.

비교하건대, 서구의 마녀나 뱀파이어가 오로지 축출의 대상인 반면 우리의 구미호나 처녀귀신에게는 나름의 소망과 사연들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민중들은 악령에게서도 자기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타자'의 자리가 없습니다. 모두가 한 하늘 아래에 있는 나름 딱하고 가엾은 존재들. 

또한 제석을 중심으로 위계질서지어진 신들의 사회는 중세 계급사회를 닮은 것입니다. 강한 자는 모시고, 약한 자는 내 밑으로 챙기거나 아니면 내치는 힘의 논리. 힘에 종속된 윤리.

사람들이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도 귀신을 대하는 자세와 닮았습니다. 강한 독재자 밑으로 들어가려는 태도는 강한 악신을 섬겨 재앙을 멀리하고 복을 구하려는 태도와도 비슷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걸 깨주었다고 생각해요. 


2. 강한 신을 모심으로써 재앙을 멀리하고 복을 구하는 태도가 무속이라고 써 봅니다. 여기에는 울긋불긋 펄쩍펄쩍 뛰고 작두타는 무당춤에서부터 이른 새벽 촛불켜고 찬 물 한 그릇 떠놓고 손을 비비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객지 나간 우리 아들 횡액 없이 복 받도록 비나이다"하는 것까지 포함되겠지요.

한국에 들어온 어떤 외래 종교도 이 무속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성찰과 완성을 추구하는 불교의 경우 절 안에 산신각이 공존하기도 하고, 기와불사와 연등에 이름을 적어 복을 구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어왔습니다.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던 예수의 가르침도, 역시 믿으면 복을 받는다(=잘 된 사람은 좋은 신자)는 수준을 얼마나 넘어섰는지 모르겠어요. 성리학자들은 한 때 무속과 정면대결을 벌이고 승리하기도 하였지만, 조상의 묘를 잘 쓰고 제사를 잘 지내야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등, 민중의 삶에서 무속의 자리는 여전히 컸습니다. 섬김의 대상이 울긋불긋 그림과 찬 물그릇, 쌀그릇에서 불상, 조상묘, 십자가로 변하였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손을 비비며 강한 신에게 '비나이다 비나이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저런 모습과 직함의 무당들은 그들의 소망에 기대어 먹고 살겠지요. 제 생각은, 한국에 들어온 어떤 외래종교도 무속을 축출하지 못했으며, 현재까지도 무속은 한국사회의 종교적 내면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종교적 내면의 모습은 뿌리깊은 "강자에 빌붙기" "될 놈 찍어주기" 관행으로 선거시에 나타납니다. 여전히 힘의 논리 뿐, 윤리의 자리는 없습니다.


3. 어떤 학문의 가치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하고 물을 때 우리는 갓 졸업한 인턴을 보고 판단하지 않고, 어느 정도 그 분야의 성취를 이루고 경험과 명망을 쌓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판단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형교회 목사들과 신자들의 행태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겠지요.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들의 행태는 권력에 가까운 상류층의 행태인 것이지요. 과연 개신교는 운명적으로 권력지향적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는, 천주교는 재야 지식인들, 여성들을 포함하여 한국 민중들 틈에 들어온지 400년이 지났고 피의 순교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저런 세월들을 보내면서 적어도 세상을 존중할 줄 알게 된 반면, 개신교는 100년 전 선교사들에 의해 바로 병원, 대학을 지으면서 들어와 엘리트들과 어울리면서 지도자인양 해왔다는 것입니다. 교리보다도, 이런 역사적 과정들을 살펴보는 것이 지금의 개신교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싶어요. 가톨릭의 경우 중세 교부들의 철학, 영성주의, 남미 해방신학 등등 여러 모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천주교 역시 나름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은 그 종교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역사적 경험에 따라 형성되는 것입니다.


4. 종교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다소 실용주의적 입장을 흔히 취합니다. 신에 대해서도,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서 이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인간중심적 실용적 태도가 반영된 관점이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 면이 있겠지요., 테레사 수녀나 간디의 신은 이름은 다를 지언정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용의 대상 혹은 상징이 아니라 자기 완성의 과정에서 섬기고 추구하는 대상이었다는 거지요.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고 봅니다.

종교의 형식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 자체는 인간 의식의 진화 과정 중 출현한 하나의 사유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멀리 와 있나요. 위에 읊었듯, 아직 무속의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저 자신 역시, 그것이 꼭 신이나 상징은 아니라도, 세상을 선악보다 강약으로 구분하는 습성이 없지 않구요. 종교적인 사유라는 것은, 구도의 과정을 통해 진선미의 근원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적어 봅니다. 지금 이 합리적 이성의 시대에 그런 것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종교를 믿을거냐 믿지 않을거냐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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