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트레이 귀공자' 잡담

2023.07.03 16:56

thoma 조회 수:185

k622830369_1.jpg

얼마 전에 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밸런트레이 귀공자'(1889)를 읽었어요. 

기질이 매우 달라 애초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형제가 원수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1745년 스코틀랜드에서 자코바이트 봉기가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듀리 집안은 형제 중 한 명은 봉기에 가담하여 싸우고 한 명은 집안에 남아 영국 편을 드는 중도 노선으로 가문을 유지하려는 술수를 씁니다. 이것이 중도 노선일까요. 양다리 걸치기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암튼 책에는 그렇게 표현되어 있고요, 앞일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당시 많은 스코틀랜드 가문들이 그렇게 했다고 하네요. 이후로 형제는 처지가 갈리며 봉기에 참가한 형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해적선에 나포되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 해적질도 하고 신대륙까지 가게 되어 머리가죽을 벗기는 인디언들을 피해가며 황무지를 통과하는 등 외지를 다니며 온갖 험한 모험을 하고 죽을 고생을 합니다. 그러면서 동생에 대한 증오를 쌓아가요. 본인 말에 의하면 원래 양배추만큼도 -_- 생각하지 않던 동생인데, 이 모든 곤경에 대한 책임이 그 동생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형제가 서로 출정하려 해서 동전 던지기로 정했음에도 고생이 극에 달하자 자신이 죽었으리라 여겨 그의 것이 되어야 할 칭호와 정혼녀까지 차지하고 있을 동생,(맞습니다만, 아버지의 압력으로 그렇게 됩니다) 자신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놈이면서 그런 것을 차지한 동생을 이 모든 고생의 원인제공자로 생각하고, 탓할 대상으로 삼아 악의를 키우는 것입니다. 

자신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동생이라지만 동생 헨리는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니 평범보다 높은 수준의 인내심과 도덕적인 균형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형은 인내심과 도덕적 균형감 같은 것은 가치로 치지 않는 것같습니다. 형의 행동 양식을 보면 인내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갖출 수 있는 기본이고, 도덕 같은 건 상황에 따른 것이지 매사 우선하는 것은 지루하며, 우월한 자의 인생에 방해라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는 동생을 평범하게 취급하면서 그 평범함과 지루함을 못 견디게 혐오하며 자기 대신 가문과 지위를 잇게 된 것에 미움을 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과, 죽은 줄 알았던 그 형과 동생이 대면하여 서로를 파괴하려 애쓰게 되는데....

모든 악한 것과의 대결은 악한 것들의 대결이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도 그렇게 흘러갑니다. 결국 악한 것들의 대결이 됩니다.   


스티븐슨은 이 작품보다 몇 년 앞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86)를 냈었지요. 이 작가는 선악이 그렇게 확고하게 분리되지 않음, 선한 것의 허약함과 악한 것의 강력한 힘과 전염성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선악을 떠나서 형이 카드놀이하다가 느리게 진행하는 동생을 비아냥거리는 대목을 보면 동생과에 가까운 저는 마음에 뭔가 빡치는 게(빡치다, 말고 다르게 적절한 표현이 뭐 있을까요) 있었습니다. '카드 들고 자느냐. 따분하고 평범하고 둔하고 째째하다.... 우아함, 민첩함, 영리함도 없고 남을 즐겁게 해주는 재능이나 재치가 전혀 없는 작자를 보고 싶으면 거울을 봐라' ......

이 소설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작은 이야기가 또 안겨 있는 식입니다. 두 형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집사가 남긴 기록으로 후대에 전해집니다. 그 집사는 자신이 못 본 장소는 다른 전달자의 기록을 활용해 끼워넣고요. 다만 좀 이상했던 점은 이야기 시작 부분에 집사의 기록을 발견하고 읽는 두 등장 인물이 이야기 끝에 마무리로 등장하지 않는 점이었어요. 그 인물들 어디갔나, 라는 생각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73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24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827
123729 미션 임파서블 7 데드 레커닝 파트 1 (약스포) [5] 가라 2023.07.13 474
123728 프레임드 #489 [2] Lunagazer 2023.07.13 81
123727 [왓챠&티빙바낭] 다시 B급 호러 둘 묶음 잡담, '포드'와 '극한 캠프' [5] 로이배티 2023.07.12 277
123726 프레임드 #488 [4] Lunagazer 2023.07.12 94
123725 R.I.P Milan Kundera(밀란 쿤데라, 1929-2023) [6] 상수 2023.07.12 449
123724 하루 일과 [4] catgotmy 2023.07.12 269
123723 아이 키우기 - 한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 상수 2023.07.12 240
123722 [넷플릭스] 히어로물의 옷을 입은 가족드라마 ‘dc 타이탄’ [4] 쏘맥 2023.07.12 422
123721 이런저런 잡담...(피프티피프티) 여은성 2023.07.12 337
123720 갑툭튀 의미불명 도서 소개 [1] DAIN 2023.07.12 294
123719 평범하신 여성분들 [17] 하소연 2023.07.12 878
123718 <페라리>/<아미타빌 호러 2> [5] daviddain 2023.07.12 191
123717 티모시 샬라메 웡카 1차 예고편 [1] 상수 2023.07.12 296
123716 톰 크루즈 기획전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고(레인맨, 매그놀리아:유혹과 파멸) 상수 2023.07.12 202
123715 뺨때리기 대회가 있군요 한국 대회도 있어요 [2] 가끔영화 2023.07.12 224
123714 [애플티비+] 엘리자베스 모스의 다크 환타지 스릴러 '샤이닝 걸스'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3.07.11 416
123713 영화 속에서 기성곡을 반주 없이 두 소절 정도 부르면 저작권상으로 괜찮을까요? [7] 하마사탕 2023.07.11 323
123712 싸움 (2007) [4] catgotmy 2023.07.11 176
123711 프레임드 #487 [4] Lunagazer 2023.07.11 87
123710 '암컷들' 읽고. [8] thoma 2023.07.11 52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