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래미가 밖에서 뛰어 노는 것보단 방구석에서 책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책 좋아하는 놈 주제에 아직까지 (열살이 조금 넘었습니다) 만화책 아니면 그림이 참으로 많은 책들만 보는 게 좀 아니다... 싶어서 근래들어 가끔씩 책장에 있는 아주 오래된 책들을 하나씩 툭툭 던져주고 그랬죠. 


일단은 쉬운 것부터 보라고 '사랑하는 아빠가' 같은 수필 책을 줘봤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다음엔 '꼬마 니콜라'를 줘봤는데 또 금방 다 읽고. 그래서 이젠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이라도 던져 줘야 하나... 했는데 이 책들은 너무 낡아서 어쩌나. 하다가 문득 셜록 홈즈 시리즈 생각이 나더라구요. 아무래도 독서에 재미를 붙이려면 자극적이고 불건전한 걸 읽혀야!!! 라는 게 제 소신인지라. ㅋㅋㅋ 근데 검색을 해 보니 이제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그런가. 상상을 초월하게 싼 전집이 있길래 그냥 가격에 혹해서 그걸로 사줬습니다.


전집이라 책마다 번호가 붙어 있는데 1번이 당연히도 '주홍색 연구'구요. 좀 읽다가 "재미가 없진 않은데 좀 어려워요" 라길래 "응. 그래도 일단 1권은 참고 끝까지 읽어 봐. 한 권 다 읽고 나서도 어렵고 그만 읽고 싶으면 다른 책 사 줄게." 라고 했더니... 이틀만에 2권 '네 사람의 서명'까지 다 읽고 3권 '바스커빌가의 개'를 절반쯤 봤네요. 가끔 어렵고 자주 불건전하긴 한데 재밌답니다. ㅋㅋㅋ 미안하다 아들아. 이런 책 아님 추천할만한 게 생각나지 않는 불건전한 아빠라서...


근데 사실 전 지금 아들 나이 때 홈즈 시리즈는 이미 다 읽고 루팡도 읽고 다른 거 찾아다닐 때거든요. '환상의 여인'이니 엘러리 퀸 시리즈니 이런 것들 다 국민학생 때 읽었는데.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제 기준으로 책을 권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뭐 저도 범죄자 되지 않고 잘(?) 자랐으니 괜찮은 걸로(...)


다만 읽는 속도를 보니 길어야 일주일 안에 다 끝낼 것 같아서 다음 책은 뭘 권해야 하나가 문제입니다. 홈즈 다음이니 루팡? 아님 아예 아가사 크리스티로 점프? 아님 이제라도 좀 건전한 소설들을 찾아 볼까요. '네버 엔딩 스토리'나 '모모' 정도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구요. 역시나 다 제가 그때 읽었던 것들만 생각나는 게 문제네요. ㅋ


덧붙여서 2권을 마치고 난 아들의 소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빠, 홈즈는 좀 무식한 것 같아요."


"왜? 홈즈가 무식할 리가 없는데?"


"홈즈는 지동설도 모르거든요."


제가 사실 이 시리즈 열혈 팬도 아니고 해서 그런 내용이 있었나? 하고 검색해보니 정말이었네요. ㅋㅋㅋ

다만 당연히 거기에 대한 해석들이 붙어 있더군요. 왓슨을 놀리기 위해 장난 친 거라는 얘기도 있고. 직접 관찰하고 증명해낸 것만 믿는 홈즈 성격상 그렇게 말한 거지 홈즈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는 얘기도 있고. 대략 후자가 그럴싸해 보입니다.


암튼 '바스커빌가의 개'를 읽고 있다니 부럽네요. 개인적으로 홈즈 시리즈 중에 가장 흥미진진하게 봤던 책이라서요. 1, 2권도 재밌었다니 이건 얼마나 재밌을까!! ㅋㅋ


그래서 자기 전에 "홈즈 잘 읽고 자라서 꼭 모리어티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말해줬습니다.


다시 한 번, 이런 아빠라서 미안해 아들(...)



 + 근데 정말 진지하게 추천해줄만한 책들을 생각해봤는데 역시 제가 그 당시에 읽었던 불건전(?)한 것들 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지저 세계 펠루시다' 라든가 웰즈의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 같은 책들이나... 뭐 괜찮지 않을까요? 최소한 지금 책장에 꽂혀 있는 필립 K 딕 시리즈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ㅋㅋ 암튼 일단은 미카엘 엔데 책들이나 찾아봐야겠습니다. 아직 어린 자식을 무턱대로 다크 사이드로 끌고 가는 것도 좀 그러니까요.


 혹시 이런 올드한 레퍼토리 말고 요즘 트렌드에 맞는 훌륭한, 하지만 자극적이고(ㅋㅋ) 재밌으면서 초딩 남자애가 좋아할만한 책들 추천해주시면 감사히 살펴보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60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16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228
123966 모리무라 세이치 작가가 돌아가셨군요. [2] thoma 2023.08.10 314
123965 R.I.P Sixto Rodriguez(1942-2023)(생몰년도 수정) [3] 상수 2023.08.10 220
123964 [왓챠바낭] 72년 묵은 영화를 봅니다. '괴물 디 오리지널' 잡담 [9] 로이배티 2023.08.09 467
123963 프레임드 #516 [4] Lunagazer 2023.08.09 103
123962 오늘도 안 조용한 잼버리 왜냐하면 2023.08.09 590
123961 Beau Is Afraid 후기가 없네요 [6] Gervais 2023.08.09 469
123960 인디락이라고 불리는 무언가를 사랑한다. [7] 위노나 2023.08.09 396
123959 올 여름 한국영화 대작 중 마지막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나서(약 스포) [3] 상수 2023.08.09 772
123958 참 별일이야 [2] 가끔영화 2023.08.09 269
123957 [왓챠바낭] 괴작... 은 아니고 그냥 제가 스스로 낚인 영화. '블라인드 디텍티브'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3.08.09 396
123956 [넷플릭스] 어둠 속의 미사, 우어어.... [7] S.S.S. 2023.08.08 469
123955 노무현입니다 (2017) catgotmy 2023.08.08 240
123954 프레임드 #515 [6] Lunagazer 2023.08.08 97
123953 근황 겸 잡담 - 연남동, 편의점과 편의점앱, 화면 바깥의 일들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살던 [2] 상수 2023.08.08 268
123952 영화 퀴즈, 산 책, 읽을 책 짧은 잡담 [17] thoma 2023.08.08 380
123951 미션임파서블7 11회 차 [4] daviddain 2023.08.08 227
123950 William Friedkin 1935-2023 R.I.P. [5] 조성용 2023.08.08 270
123949 [넷플릭스바낭] 이게 다 라이언 존슨 때문입니다. '옥자' 재감상 잡담 [16] 로이배티 2023.08.07 694
123948 뭐야 중국 가던 태풍이 획 돌아서 한국으로 [2] 가끔영화 2023.08.07 358
123947 그대가 조국 (2022) [2] catgotmy 2023.08.07 41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