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잡담

2023.09.09 18:20

thoma 조회 수:305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 '건널목의 유령'을 읽었어요. 

작가는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을 희망해서 영화 공부도 하고 현장 경험도 하다가 소설 '13계단'으로 주목을 끌며 소설가로 데뷔했....다고 저번에 '제노사이드' 읽고도 쓴 거 같네요. 유령 등장하는 소설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후딱 잘 읽혔어요. 스포일러 약간 있습니다.


'제노사이드'는 무대가 아프리카, 일본, 미국으로 나뉘어 있고 중요한 등장 인물과 사건이 이 공간들에서 동시에 활약, 진행되어 스케일이 아주 크면서 이야기도 복잡해서 영화로 만들기는 까다롭겠다고 생각 되었는데 이번 소설은 읽으면서 영화의 장면들로 떠올리기가 쉬웠어요. 내용도 복잡하지 않을 뿐더러 시각적으로도 볼거리와 긴장감을 살릴 부분이 많아서 소설보다 영화로 더 박력있게 잘 표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건널목에 출몰하는 유령을 취재하는 것이 전면의 내용인데, 파고 들어가면 폭력조직과 연결된 건설회사와 정치인 사이에 주고받은 뇌물이라는 사회문제가 깔려 있어요. 유령이 된 이의 처지가 사회의 가장 끝에 자리한 약자이고 가해 집단은 반대 방향 끝에 위치한 철면피한 강자입니다. 취재를 통해 사건을 다 알아내긴 하지만 징벌은 기자 몇몇의 힘으로는 불가합니다. 그것은 유령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유령이 나선다는 건 마치 죽어서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기를 기도할 뿐 현생에선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 같아서 씁쓸함을 주기도 해요. 소설 속에서 유령에 의해서나마 징계되니 다행이라 여긴다면 기도로 위로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싶네요. 

증거가 부족하여 기사로 진상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면 기자의 취재가 유령에게 필요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초장부터 유령 본인이 바로 복수하면 될 텐데? 음, 아마도 본인의 처지를 알아 줄 사람이 필요했나 봅니다. 


사건을 맡게 되는 주인공 기자가 부인과 사별한지 얼마 안 됩니다. 이 개인사가 사건에 몸을 던지다시피 몰두하게 하는 이유로 작용합니다. 이 점은 '제노사이드'의 용병리더에게 아픈 아들이 있다는 설정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시간 설정을 왜 1994년으로 했을지...이삼 십 년 전으로 시간적 거리를 두어서 구체적인 정치인을 떠올리는 부담을 덜려고? 현재 시점에서 보면 기자가 아내와 맺는 관계가 좀 구식이긴 합니다. 조금은 올드한 순정을 지닌 것 같고 수십 년 기자 생활을 한 사람치고 때가 묻지 않은 사람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살짝 시간대를 뒤로 가져갔을까요. 일본 소설 주인공 중엔 이런 착한 인물 흔한 듯도 한데. 하여간 주인공 기자는 쉰 중반이라는 나이나 직업에 비추어 볼 때 마음이 여리고 순수하더군요. 우리 나라 소설에서 사회부 기자가 직업인 중년 남성이 이런 성격 설정이면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네요. 

'제노사이드'에 비하면 소박한 소설인데 제 입장에선 '유령 본격 등장' 이라 과감한 소설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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