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코엑스 메가박스 돌비관에서 [블레이드러너 2049]를 보러 갔습니다.
집에서 너무 멀다, 9호선 급행은 너무 사람이 빽빽하다 투덜대면서 갔죠. 다시는 돌비관에 영화를 보러 오지 않으리... 다짐하면서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저의 모든 불만이 사라졌습니다.
그 전설의 작품을 오마쥬한 장면들로 시작해서, 재해석으로 완성된 황폐하고 축축한 LA의 도시풍경, 생명의 흔적이 거의 없는 헐벗은 벌판과 바다, 잘 어울리는 라이언 고슬링의 음울한 얼굴...
그리고 시종일관 돌비 스피커로 고막을 채우는 한스 짐마의 사운드 트랙...
후반부에 살짝 길어진다는 생각은 했지만, 제 올해 영화 감상 중 "관람"이라는 경험면에서는 제일 압도적이고 황홀했던 순간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설령 [듄 2]를 봐도 이렇게 황홀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요.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커다란 모니터를 꽉 채우는 이질적 이미지와 압도적인 소리로 꽉 메워진 이미지의 총체적 세계에 짓눌리려고 극장에 가는것이 아닐까 하고요.
잘 만들어진 스펙타클은 그 자체로 현실감각을 흐트러트립니다.
이 장엄하고도 거대한 무엇에 우리의 현실감각이 완전히 짓눌려야 그 때 비로서 존재를 망각하고 이 허구의 세계에서 방황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달았네요.
이런 규모의 경이는 아직까지 헐리우드에서만 가능하고, 또 그걸 제대로 구현하는 감독은 정말 다섯손가락 안에 뽑을 것 같습니다.
어제 얼마나 감동했는지 제 마음 속에서 헐리웃 일짱 감독은 드니 빌뇌브로 낙점되버렸네요...
어제 집에 와서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다시 보려다가 3분도 안되서 꺼버렸습니다.
조그만 화면과 작은 사운드로는 이 영화를 안보는 것만 못하더군요. 무슨 맹물 먹는 줄 알았어요.
어떤 아름다움은 크기 자체에서 발현됩니다. 그걸 축소된 판으로 즐기는 건 소량의 감동만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맛보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그냥 전혀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계기로 저는 더욱 더 컴퓨터로나 IPTV로는 영화를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 어제가 마지막날인줄 알았다면 그 전날에 어떻게든 보고 또 한번 봤을텐데요...
아마 20세기에 [블레이드 러너]를 봤던 관객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Cinema는 영원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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