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미시스'

2024.04.05 20:08

돌도끼 조회 수:247

1992년 앨버트 피언 감독작품.

93년작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꽤 있는데, 이 영화가 92년 연말에 일본에서 먼저 공개되고 미국엔 93년에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80년대에 피언이 캐논 그룹 영화들을 만들던 때에 구상했던 거라고 합니다. 현대 배경으로 경찰이 마약범 쫒는 이야기였다나봐요. [사이보그]라든가 [캡틴 아메리카]라든가 하는 다른 영화들을 먼저 만들게 되면서 순위가 뒤로 밀려 한참 뒤에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가 계속 바뀌어서 미래 배경의 SF가 되고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되었지만 주인공 이름은 처음 그대로입니다. 알렉스 레인. 그리고... 소녀였답니다.

그렇게 몇년 지나서 캐논의 상태가 오늘내일 할때 쯤 되어서야 임페리얼 영화사를 통해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임페리얼 측이 자기들이 밀고있던 무술액션 스타 올리비에 그루너를 주인공으로 써야한다는 조건을 걸어서, 주인공은 30대 아재로 변경됩니다. 그래도 아쉬웠던지 피언은 레인에게 소녀 한명을 사이드킥으로 붙여줍니다.

오랫동안 품고있던 비장의 작품인 것 치고는 썩 오리지날리티가 있는 영화는 아닌데, 기본적으로는 [터미네이터] 립오프이고, 거기다 [블레이드 러너]도 섞어보고, 피언 본인의 영화인 [사이보그]의 요소들도 집어넣습니다.
다 죽게된 사람의 신체를 기계로 바꿔서 재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육백만불의 사나이'에서 가져왔고(감독 피셜)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어디서 본듯한 것들이 많아요. 아주 잡탕입니다. 거기다 영화의 액션은 홍콩 총싸움 영화 스타일을 빌려왔고 영화 초장에는 주인공이 아예 대놓고 주윤발 패션까지 따라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섞어놓고 보니 뭔가 색달라 보이게 되었다고 할까...

그러니까 대충 [매트릭스]의 작법을 대략 7년쯤 전에 먼저 시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도 좀 비슷하죠. 기계와 인간의 주도권 대결이고 배경에 나름의 철학적 사유가 깔려있다는...ㅎㅎ


물론 한참 후에 발전된 기술과 억만금을 때려부어 만든 메이저 블록버스터 [매트릭스]와 비교할 수는 없는 영화지만, 그래도 피언의 장점이 돈 안들이고 후딱후딱 찍으면서도 그런 것 치고는 나름 그럴싸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거라, [네미시스]는 그런 장점이 살아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초반에 벌이는 총격전은 꽤 근사하기까지 한테, 그냥 폐건물에서 찍었을 뿐이지만 뭔가 황폐한 미래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침 이 영화 찍을 무렵에 [터미네이터2]가 여기서 미래전쟁 장면을 찍었다네요. 그래서 그 잔해를 쓸 수 있어서 좀더 스케일 커보이는 그림을 넣을 수 있었다고...ㅎㅎ

작중의 메인 배경은 자바인데, 당연하게도 자바 근처에도 안가고 찍었습니다. 야외 배경 그림은 감독의 출신지인 하와이에서. 아무리 저예산 영화라도 하와이의 자연은 그런 것과 무관하니까요.

영화의 특수효과는 [에일리언2][터미네이터1,2]등의 효과를 제작했던 판타지II에서 맡았습니다. 아니 이런 영화에 그런 거물 업체가...라고 놀랄 수도 있지만, 이 회사는 카메론이 쌈마이판에서 일했던 때부터 안면 텄던 인연으로 카메론 영화에 계속 참여했고, 메이저와 쌈마이를 가리지 않고 일해왔던 회사예요. 효과의 질이 제작비 따라가는지 저예산 영화일 때와 메이저 영화일 때의 편차가 있는듯하고, 이 영화의 효과는 대략 [터미네이터] 1편 정도쯤의 퀄은 되지 않나 싶습니다. 92년에 나온 영화 치고는 좋은 편은 아니란 거죠. 그래도 베테랑 회사답게 저예산인 것 치고는 훌륭하다 싶은 그림을 보여줍니다.

근미래(지금 시점으로는 불과 몇년 후ㅎㅎ) 배경으로 인간과 기계가 박터지게 싸운다는 이야기인데 영화는 스토리를 차분히 풀어 나가기 보다는 액션 사이사이에 뭐가뭔지 바로 파악은 안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이야기 쪽으로는 비판을 받는데, 감독의 말로는 제작자와 싸웠다가 영화 다 찍은 다음에 바로 잘렸답니다. 그래서 본인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 채 스튜디오측에서 액션 위주로 편집을 해서 영화 내용이 난해하게 되었다고...
그치만 뭐... 애초에 피언인데... 본인이 직접 편집과 마무리를 했다고 해서 사람들한테 칭찬받을 이야기가 나오기는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ㅎㅎ

영화의 후반은 일남일녀가 지치지 않는 살인기계에게 쫓긴다는 [터미네이터]의 구성을 그대로 들고옵니다. 차이점은 여기서는 쫓기는 측의 일남도 사이보그라는 거죠. 그런데 신체 대부분이 기계인 사이보그 치고는 능력이 참 하찮습니다.
올리비에 그루너니까 당연히 싸움을 잘하기는 하는데 그 싸움 실력을 맛보기만 찔끔 보여주고 주로 총만 쏩니다. 그리고 싸우기 보다는 주로 도망만 다니고요. 쫓고있는 살인기계는 터미네이터급인데 주인공 알렉스 레인은 (모티브가 육백만불의 사나이라면서) 그냥 보통 사람처럼 허덕거리면서 도망가기만 해요. 그거 찍는 동안은 감독이 주인공이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왕에 올리비에 그루너가 주인공인데 그양반의 신체능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았지 싶은데말입니다.

영화의 액션 경향이 홍콩씩 총싸움을 추종하는 방향이다보니 로봇들이 서로 싸워대는 영화에 적용하기에는 좀 어긋나지 않았나 싶기도 한게... 사이보그/로봇이라면서 적아군 가리지 않고 모두가 탄막슈팅...사정없이 총알을 쏘아붓기만 하지 표적을 조준해서 맞출 생각은 안하는 것 같습니다. 로봇인데, 조준 센서는 전혀 발달하지 않았나봐요. 그래도 주인공이 총 한두발 맞아도 끄덕도 안하는 건 설명이 되네요ㅎㅎ

영화를 좀더 커 보이게 만들고 싶었는지 화면구성도 스코프로 했답니다. 그것도 돈아끼느라 아나모픽 안쓰고 걍 찍어서 위아래로 잘라낸 스코프라서요. 오랫동안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4:3 또는 16:9의 팬앤스캔/오픈매트 버전으로만 돌아다니다가 2010년대가 되어서야 2.35:1로 복원된(화면을 제대로 자른) 블루레이가 나온 모양이네요. 글구 그거 나오면서 감독판도 같이 냈답니다. 얼마나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요.

그니까 뭐... 큰돈 안들이고 찍은 사이버펑크 로봇 액션물 치고는 꽤 그럴싸하다...는 이유로 컬트팬층이 꽤 있습니다. 극장흥행은 소소했지만(회사에선 애초에 기대도 안하고 비됴 시장을 노렸던듯하고) 비디오로 속편이 줄줄이 나왔으니 아마도 앨버트 피언의 최고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술한 부분이 많은 영화라도 그걸 덮을만한 장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인기를 끌게되니까요.
그치만, 만인에게 어필할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극장 개봉명이 [네미시스]였네요. 여태껏 '네메시스'로 알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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