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WER, 오타쿠, 분노인정

2024.05.08 17:59

Sonny 조회 수: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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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라인업에 QWER이 포함되어있는 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습니다. 밴드라고는 하는데 기타와 베이스를 핸즈싱크=치는 척만 하는 밴드가 어떻게 펜타포트에 올 수 있냐고요. 저 역시도 별 이견이 없는 항의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커뮤니티에서 이걸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더군요.


이 논쟁 자체보다도, 논쟁이 이어지는 구도가 의미심장합니다. 먼저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포지션이 그렇습니다. 락페에 관심이 많고 예전부터 즐겨오던 사람들이 QWER의 참여를 반대한다면 락페에 별 관심이 없거나 문외한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QWER의 참여를 찬성합니다. 모든 논쟁에 소비자의 당사자성이 우선하는 것은 아니고 내부의 집단 논리에 매몰되지 않은 외부인의 시선이 때론 더 정확한 답을 내놓을 때가 있습니다만 (EX> 아이돌의 연애) 이 사안에 있어서는 논쟁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쟁점이 제대로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번 사안에서 제일 핵심적인 쟁점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같은 라이브 공연에, 자신이 직접 연주를 하지 못하는 밴드가 출연해도 되는가?'입니다. 자신의 음원을 연주못하는 밴드는 출연불가하다 VS 음원을 직접 연주못하고 핸즈싱크만 해도 상관없다 의 두 의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출연을 찬성하는 쪽에서 나름의 근거를 제시해야 의견교환이라도 이뤄지는데, 출연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매도하는 방향으로 논지가 흘러갑니다. "락부심" 같은 단어가 그럴텐데 이건 장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입니다. 이미 펜타포트에는 힙합이나 알앤비를 하는 가수들도 출연하고 있었고 어떤 논란도 없었거든요. '락부심 부린다', '저러니까 락씬이 망한다', '지들끼리 쓸데없는 정통성을 따진다' 같은 주장들은 전혀 다른 쟁점이고 이번 사안과는 별 상관도 없습니다. 보컬을 포함해 밴드의 사운드는 라이브로 나와야한다는 이 기본적인 전제를 두고 정확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만을 최우선으로 해서 출연반대 측을 매도합니다. 찬성 측은 '이러니 락씬이 망한다' 부터 해서, '별 것도 없는 인디밴드들 페스티벌에 저런 미소녀 밴드(?)라도 출연해야 더 많이 보러올 것 아니냐?' 라는 식의 의견들을 내놓습니다만 이는 그 자체로 부정확한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표가 매우 잘 팔리고 있고 국내 최대의 락 페스티벌로 아직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펜타포트는 굳이 핸즈싱크를 하는 밴드를 불러올 정도로 절박하거나 폐쇄적인 행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락페의 규모나 역사성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일단 마이너한 음악을 소비하는 쪽을 자신있게 깔봅니다. 이런 의견들은 자본주의의 시혜를 받는 입장에서 괜한 군소리 하지 말라는, 돈으로 상대를 묵살시키려는 논리이기 때문에 의견으로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논리로 주장을 합니다.


대다수의 (남초) 커뮤니티는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것에 그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만화, 게임, 드라마, 영화 등의 취미생활을 우리 함께 즐기자! 라는 목적 아래 온라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그렇게 서브컬처를 즐기면서 "취향존중"이라는 21세기의 새로운 덕목을 구체화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문화적 마이너리티가 메이저리티로 사회에 편입하는데 성공한 세대들이 주를 이루고 있죠. 그런데 QWER의 락페 참여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취향존중"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락페 덕후, 혹은 락덕후, 음악덕후들의 정통성에 대한 고집을 같은 덕후로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적 성공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인터넷 문화 자체가 자본주의 계급투쟁의 장으로 변질된 것처럼 보입니다. 취향에 대한 애정이나 고집은 이제 큰 요소가 아니고 문외한이더라도 그 문화의 바깥에서 특정 문화의 향유를 자본주의적으로 깔아뭉개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자본주의적 세계관, 돈 더 벌고 싶으면 어떤 원칙도 내세우지 말라는 부분에서 "꼰대"라는 단어가 남용됩니다. 락 페스티벌에는 최소한 자기 악기를 라이브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이야기하면 그건 바로 "꼰대"가 됩니다. 무엇은 무엇이어야한다는 원칙 자체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어떤 영역에서 기본적인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인터넷이 토론의 장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주 간단한 프레임을 들고 와서 상대를 끼워맞추고 일단 그 의견을 박살내려는 구도 자체가 이미 권력적입니다. 공론장에서 최소한의 원칙도 거부하면서 자본주의의 계급으로 상대를 깔아뭉개는 권력만이 유일한 질서가 됩니다. 윤석X이 대통령이 됐던 것은 민주당이나 이재명 탓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시대의 결과처럼도 보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터넷은 모든 법칙이나 원칙이 사라지고 자본에 이입해 누군가를 깔아뭉개는 권력만을 누리는 공간처럼 보인달까요. 


한때 어리고 젊었던 "오타쿠"들, 나이 먹어서도 만화와 애니를 즐기는 것을 인정받고자 했던 세대들이 이제 3040이 되고 그보다 더 나이많은 세대가 되면서 오로지 자본주의만을 외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흐름에 저항하고 보다 순수한 의도를 강조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계급적 권력이 모든 논리를 압도하게끔 규칙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돈 없고 가난하면 함부로 화내지 말라는, 분노인정, 혹은 분노묵살만이 커뮤니티의 근본적 유희처럼 보입니다. 이 불온한 징조 속에서도 온전한 오타쿠로서 무언가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펜타포트 측의 저 무리수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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