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혹성탈출] 영화가 나왔습니다. 언제까지 나올까요? 1편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엔 오리지널 [혹성탈출]을 암시하는 실종된 우주선 이야기가 잠시 나옵니다. 그 떡밥이 풀릴 때까지 계속 나올 예정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첫 삼부작의 주인공 시저의 장례식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미래로 훌쩍 건너 뛰는데, 300년 정도 뒤래요. 독수리를 키워 가축으로 삼는 독수리 부족이라는 침팬지 집단이 나오는데, 이들은 이미 과거를 다 잊었습니다. 인간이 유인원을 지배했던 과거도, 시저라는 위대한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도 몰라요. 그냥 이들은 현재에 만족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록시무스 시저라는 독재자 침팬지의 군대가 독수리 부족의 마을을 불사르고 침팬지들을 노예로 삼습니다. 간신히 탈출한 부족장의 아들 노아는 이웃들을 구하러 여행을 떠나는데 그러다 다른 인간들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인간 여자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잘 만들었지만 앞의 삼부작보다는 못하다는 평을 듣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전 3부작만큼 재미있게 봤습니다. 단지 좀 다른 영화일 뿐이죠. 영화가 조금 낮은 평을 받았다면 '카리스마 넘치고 엄청난 업적을 남긴 위대한 남성 영웅'인 시저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언젠까지 이런 사람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닐 필요는 없지요. 그리고 이번 주인공 노아가 덜 영웅적인 캐릭터인 것도 아니잖아요. 일단 이름부터가 영웅스럽죠. 단지 노아는 시저와는 달리 평범함 속에서 시작하는 주인공입니다. 이런 캐릭터의 장점도 있는 건데.

고풍스러운 영화입니다. 일단 1960년대에 많이 나왔던 테크닉컬러 와이드스크린 서부극스러워요. 광활한 미국 평야를 배경으로 말 타는 남성 영웅이 가족과 친구들을 구하고 악당과 맞서 싸웁니다. 단지 보통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는 백인 인간 남성이 존재하지 않죠. 그 떄문에 수정주의 서부극의 느낌 역시 들어요. 노아는 아무리 봐도 백인 남성 같지는 않습니다. 미국 선주민이나 흑인 쪽에 더 가깝죠. 인간을 대표하는 주인공이 백인 여성인 메이이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듭니다. 물론 정답은 노아가 그냥 침팬지라는 것이지만요.

영화는 로마사극스럽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건 대사 안에서도 언급되지요. 악당인 프록시무스 시저는 로마 역사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착이 행동과 사고에 반영되어 있지요. 후반 액션이 진행되는 공간은 여러 모로 로마 검투장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도 60년대에 꽤 많이 만들어졌죠.

결정적으로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전통에 아주 충실합니다. 이런 영화들은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 서브장르의 정수가 충실하게 유지되어 있는 작품은 의외로 많지 않고, [혹성탈출; 새로운 시작]은 그 드문 예에 속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망원경이나 책과 같은 문명의 이기가 주인공에게 낯선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안겨주는 장면들을 보세요. 근데 이것도 꽤 60년대스러운 감수성에 바탕을 둡니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60년대스러워요.

만족스럽게 결말을 마무리 지었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스탠드 얼론 영화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시리즈의 시작처럼 느껴집니다. 저번 시리즈의 1편은 실종된 우주인과 관련된 뉴스를 슬쩍 뿌리면서 오리지널 [혹성탈출] 영화의 스토리가 이번 시리즈와 겹쳐질 수도 있다는 암시를 흘렸죠. 과연 그 계획은 아직 가능성이 있을까요. (24/05/22)

★★★☆

기타등등
1. 여전히 유인원들의 몸은 암수 상관없이 조금씩 검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암컷 침팬지에겐 살짝 긴 머리칼을 주더군요.

2. 영화는 고릴라 실바를 연기한 배우 이카 다빌의 아들 마나에게 헌정되었습니다. 뇌종양으로 죽었대요.


감독: Wes Ball, 배우: Owen Teague, Freya Allan, Kevin Durand, Peter Macon, William H. Macy 다른 제목:

IMDbhttps://www.imdb.com/title/tt11389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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