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어물녀가 되어가고 있는가

2010.12.23 20:10

Paul. 조회 수:3366

연말이고 그러니까 이런저런 약속들도 생기고, 퇴근하면 일잔하자고 잡아채는 동료나 상사가 있으니 그리저리 저녁시간을 보내고,

애인이 있으니 가끔 만나기도 하고, 그러니 사실 온전히 혼자 있을 시간이 별로 없는데.

그렇지만 저는 점점 건어물녀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연애하면 건어물녀 아니라고 회사 동료가 딱 잘라서 얘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변에 심남이나 훈남이 좀 있으면 어때, 마음이 촉촉해지잖아? 싶고말이죠. 다른 누굴 만나서 조잘조잘 얘기하는 시간보다는

칼퇴하고 집에 와서 쟁여둔 팩청주에 남겨둔 튀김 데워서 어제 못본 황금어장 틀어놓고 제가 만든 루이죠지 술잔에 자작하며

진짜 루이죠지랑 조잘조잘 대화도 하고 그러는 게 제일 좋아요,

 

음, 지금 마시고 있는 건 월요일에 술마시다 남아서 챙겨온 '힘내요 아빠' 청주고, 먹고 있는 건 역시 그날 남아서 호일에 싸온 단호박,

새우, 꺳잎튀김이에요. 어젠 목란에서 분수넘치게 비싸고 기름진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 다음날 이렇게 먹고 있으니 왠지 이쪽이 훨씬

저답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군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어른들의 삶에 편입돼가고 있는 느낌이라서

안그래도 시니컬한 애가 삭다 못해 아저씨가 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화장을 하든 이쁜 옷을 입든 왠지 저 자신이 빛바란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스타일 좀 바꿔볼까, 하고 3년째 애용하던 쇼핑몰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다른 스타일로 쇼핑을 했더니, 제가 웬만한 남자만큼

어깨가 넓다는 걸 또 잊어버렸지 뭐예요. 나같은 애는 맨투맨 입으면 안된다고!!!!!!! 여자들의 로망이자 요즘 제일 핫한 룩이라는

보이프렌 룩이 나는 안된다고!!!!!!!!!!! 하면서 엄한 옷만 팽개치고.....청주를 땁니다(?). 900ml 짜린데 3분의 2쯤 남은 걸 김이 좀 빠진

듯하다고 마구마구 퍼마시고 있어요. 소주 먹던 애는 이래서 다른 술을 못 마십니다

 

미묘하게 김이 빠져서 첫맛과 다른 청주와, 데웠지만 눅눅하고 그마저도 곧 식어가는 기름진 튀김을 우물우물하자니, 지금의 저와 완전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네요. 조촐한 한상이고, 조촐한 겨울밤이고, 조촐한 스물다섯의 생이지만, 루이도 씐나하고 죠지도 씐나하니 저도

이만하면 됐단 생각이 들려고 해요. 내일은 남들이 그렇게 챙기지 못해 안달이라는 클스마스 이브라는데, 집에서 소고기라도 궈먹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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