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를 확인하려는 본능

2010.12.30 22:29

양자고양이 조회 수:2244

저는 한국식 나이 (예를 들면 섣달 그믐에 태어난 아이는 하루가 지나면 무려 두 살이 됩니다) 가 이런 위계 질서와 아주 관련이 깊다고 봅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왜 꼭 나이를 까고 서열을 확인해서 정리를 해야 하는가입니다.

저는 그게 몹시 불편합니다. 그래서 사회인이 된 이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나이를 묻지 않고 좀 친해져서 나이를 안다고 해도 언니/동생, 오빠/누나 하질 않습니다.

(서열을 정리하지 않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은 이러한 태도를 "당신과 친해지고 싶지 않다."로 받아들이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도 한국인과 만나게 되면 이 문제를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생짜 초면에 저는 이름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는 자기 이름도 소개하기 전에

"몇 살이세요?", "몇 년생이세요?" 가 먼저 튀어나옵니다.


또 다른 것은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겁니다.

제가 좀 마른 편입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10년 넘게 앓았고 약을 10년동안 먹다보니 위장도 나쁘고 한 마디로 연료효율이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은 날씬하니까 이런 질문쯤은 막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듯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몇 킬로 나가세요?"라고 너무 당연하게 묻습니다.


약간 살집이 있어 보이는 분들에게 "몇 킬로 나가세요?" 라고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것쯤은 당연히 인식되고 있는데

마른 사람에게는 함부로 물어봐도 된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들 부러워하니까요. 그런데 그건 물어보는 사람의 생각이지요.

마른 사람이 (그것도 정상보다 많이 말라보이는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어떻게 알고 그것도 초면에 그렇게 질문을 하는 걸까요?


물론 이 곳 현지 문화는 나이를 묻지 않고 신상정보도 잘 묻지 않죠.

저의 가장 친한 친구도 제가 많이 말랐다고 말을 하긴 해도 몇 킬로나 나가냐고 직접적으로 묻지 않아요.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유독 한국인들은 거리낌이 없어요.

처음 한두 번은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라는 생각을 했는데 숫자가 점점 많아지니까,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을 때마다 되풀이되니까 좀 진저리가 납니다.

제 기억엔 요즘 한국에서도 초면에 이런 식의 질문을 함부로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오히려 외국이라서 한국인의 끈끈함을 더욱 과시하려고 그러는건지 분간이 안 돼요. 

마치 "우린 한국인이니까 이런 질문쯤은 당연히 물어봐도 되는 거야. 게다가 당신은 말랐으니까 난 당연히 당신 체중을 물어볼 권리가 있어."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걸 불쾌하게 여기는 티를 내면 외국에서 한국인이 아닌척 하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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