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잡설. 타자기와 다이어리

2011.01.05 12:54

fuverus 조회 수:1549

 

1.
수동타자기를 샀어요. 경방 크로바 톱스타 모델 - 아 이 향수향기나는 명칭이라니! -  중고를 옥션에서

7만원 정도에 구입했습니다. 장식용 아니고 작동 되는 겁니다.
어떤 경로로 중고 물량을 갖췄는지는 모르겠는데 - 사용하던 중소기업들을 순회하며 긁어 모은 것일지도요 - 꾸준하게

몇몇 판매자가 제품을 공급하는 것 같더라고요.
'글을 잘 쓰고 싶다'고 본격적으로 욕망하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타자기가 제 '로망'이기도 했고(원래 로망은 얼마간의 허영을 포함한다고 믿슴다...),
글을 대충 써놓고 인내심없이 수십번 고쳐대는 -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고친다고 딱히 좋아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 습관을 좀 고쳐보려고,

몇년 전에 무의식에 깔려 한동안 잠잠했던 충동을 지름신께서 끄집어내시어 구매토록 하셨죠
(저는 별로 개입한 바가 없습니다..먼산ㅡ.-;;)

 

어제 자정무렵 술을 한잔 걸치고 들어와 타닥, 타닥 타자기의 시동을 걸어보는데,

흡사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의 힘이 문자로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 무척 좋았습니다.
오타는 그대로 문서에 치명타가 되니, 좀 더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단어를 이어나가게 되겠죠. 애정도 담아서요.

 

사용하는데 조언해주실 만한 부분 있으면 적극 환영입니다.

 

2.
다이어리 하나를 사서 쓰고 있습니다. 토끼처럼 부지런하게 살아가려...는 것은 아니고,

워낙 일상을 개념없이 흘러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번 사봤어요.
원래 체계적으로 다이어리 쓰는걸 좋아하지 않고, 프랭 머시기 류는 더욱 마뜩찮아 하는데,

친구가 하나를 권해줘서 일반 다이어리 말고 이것저것 관리하는 시스템이 담긴 걸로 구입했습니다.
앞부분을 보니 인생을 돌아보고, 지난해를 돌아보고, 오는 해를 계획하는;;; 부분이 20여 페이지 넘게 있어서

처음에는 코웃음치다가 이달 초에 `이왕 산거' 하는 마음에 서너시간 들여 차분히 정리해봤는데.

두둥!
직장생활한지 이제 몇년 됐다고 너무 생각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이어리에 보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한번 정리해보는 항목이 있는데

문득 넌 '무엇을 위해서, 왜 사냐'라고 누가 물으면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은 거죠.(뭐 꼭 이런게 있어야 하는건 아니겠지만...)

뭐 대단한 포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요,

유토피아든 신춘문예든 혁명이든 노동자농민의 생활수준 향상이든 몸무게 10kg감량이든 원하는 사람과의 연애든(앗 적어놓고보니 대단한 것들이네...;;;),

무언가(막연하게나마) 몰두하게 하는, 내 삶을 채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뭔가를 항상 지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걸 몽땅 잊어버린채(어쩌면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아무튼 그런고로,

새해에는 좀 원기충전해서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최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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