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돌아오지 않는 해병] 잡담

2011.01.08 02:07

룽게 조회 수:2484

1.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본 것은 아마도 국민학교 떄였을것 입니다.

당시 나바론 요새나 장렬 633폭격대 같은 '미국'전쟁영화만 보고 자랐던 저에게 이영화를 처음봤을때의 감흥은 이루 말 할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제목과 몇몇장면만 기억하며 지내던 와중에 이 영화를 작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었죠)에 방송한 전우의 1,2화를 보고 난다음 놓쳐버린 정신줄을 

다잡느라 애쓰던중에 EBS를 통해 후반부 몇장면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나오던 장면은 중공군이 산등성이에서 밀려내려오던 장면이었죠.

그장면을 보면서 아무리 텔레비전 드라마라지만 40여년전 영화가 갖고 있던 스케일과 엄청난 연출의 발끝도 못따라가는 영상언어의 후퇴를 한탄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최악의 드라마를 꼽자면 그 왕좌는 전우가 차지해야 할 것입니다.


2. 익히 알다시피 이 영화는 63년 당시 해병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만든 일종의 반공 전쟁영화의 교범과 같은 걸작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면 이 영화는 반전영화라고 부를수는 있어도 반공영화라고 부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들이 있죠.

일례로 영화속 주인공들이 북한 인민군과 치르는 전투는 초반에만 등장합니다. 클라이막스의 전투조차도 적은 중공군으로 대치됩니다. 

뿐만아니라 미군에 대한 은근히 불편한 시각도 노출하고 있죠. 당시의 검열기준으로 본다면 뭉터기로 잘려나갔을 부분이 많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재미나 몰입감이

좋아서였는지 (마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심의하던 위원들이 만화의 재미에 빠져 엄지와 까치가 사실상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심의 위반 요소를

까맣게 잊고 통과시켰다던가 하는;;)무사히 살아남아 60년대 전쟁 영화의 전형을 만들어 내면서도 현재까지도 살아 숨쉬는 이야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3. 당시 열악한 한국영화 제작 여건상 프롭건이나 영화용 폭발물 도입이 힘들어서 실제폭탄과 실탄사격을 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고 있는데요, 주성철

기자와 최동훈 감독의 코멘터리에 의하면 현역시절 특등사수였던 이만희 감독이 직접 배우에게 총을 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만 이게 정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는 탄착효과를 위해서 해병대 특등사수들이 직접 실탄을 쏘았다는 이야기 정도였지 이만희 감독이 직접 총을 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요. 이쯤되면 실제 화살을 날렸다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집에 산탄총을 들고 문안인사 하러간 미후네 도시로의 에피소드 정도는 그냥 애들 우스개가 되겠지요.

실제로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상륙작전중 폭발로 인해 배우들 위로 흙더미가 덮치는 장면은 너무나 실감나서 나중에 '저건 진짜 TNT를 배우 옆에서 터뜨린겁니다./심지어 그 양도 보통의 두배를 썼다죠.'같은 대화를 들어도 '그랬구나...'하면서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듭니다.

.구봉서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이만희 감독은 배우들에게도 폭발물이 매립된 위치를 안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거기만 피해서 다닐까봐 그랬다고요...


(이거 모형아니고 진짜인겅미?)


인상적인 것은 상륙장면 이후 벌어지는 공장지대에서의 총격전 장면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를 언급할 정도로 이 시퀀스는 마치 서부영화처럼 연출되어 있습니다. 집단으로서의 '해병대'를 보여주는 상륙 시퀀스에 이어서 이제 영화를 끌고 나갈 분대원들을 보여주는 도입부로서 공장지대에서의 총격전이 연출됩니다.

서스펜스와 비극적 분위기가 잘 조화된 이 시퀀스는 대부분 이만희 감독이 현장에서 휘갈기듯이 콘티를 짰다고 합니다. 사실상 즉흥연출이었다는 셈인데 솔직히 놀랍더군요.


4. 그렇게 공장지대의 시퀀스가 끝나면 이영화는 두가지 갈등을 얻게 됩니다. 하나는 고아가 된 소녀 영희죠. 분대원은 고아가 된 영희를 북진하는 내내 분대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생활합니다. 또한 새로운 보충병이 들어오고 (구봉서, 최무룡) 인민군에게 가족을 잃은 분대원과 공산당원을 형으로 둔 분대원의 갈등이 생겨납니다. 

해병대원들과 함께 생활하는 고아소녀 이야기는 얼핏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수 있겠지만 그런일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것만은 아닐겁니다. 비슷한 예로 터키군에 의해

구해진 한국인 소녀가 터키군과 함께 전선을 이동하며 함께 생활하다가 수십년이 흘러 자신을 구한 터키인 참전용사와 다시 만나는 실화도 있었죠.

이 영화에서 영희를 연기한 전영선씨는 한국영화의 전설적인 소녀 캐릭터 옥희(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연기한 그 분입니다.


(아저씨...옥희는...아니 영희는 삶은 달걀이 먹고 싶다우/ 영희야 오늘은 군대리아)


5. 이 영화를 다시보며 새삼놀라웠던 것은 구봉서의 미친 존재감이었습니다. 원로 코메디언으로 기억되지만 많은 한국 영화에서 선량하고 재치 넘치는 청년역을 맡아왔던 

이 배우는 이 영화속에서도 자칫 고루하고 신파조로 흐를수 있는 이야기 속에 쾌활한 웃음을 선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구봉서 선생이 죽는 장면을 좋아 합니다. 신파조의 대사였지만 묘한 아이러니가 있고 캐릭터와 너무 잘어울려서 참 절절했어요.


(나는 사격솜씨가 나빠서 적군한명도 못죽인거 같은데 저놈들은 날 맞추다니...)


6. 아울러 아직도 자주 회자 될법한 '럭키클럽'에서의 난동장면은 다시봐도 여전히 유쾌합니다. 미군만 받는다는 마담의 말에 일일이 변상액을 현금으로 내놓으며 클럽안의 집기를 하나하나 부수는 해병들의 난동장면은 당시 육군측이 군인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삭제될 뻔 했지만 해병대측의 '이거야 말로 해병다운 모습이다!'라며 해병대 곤조에 대한 자긍심때문에 삭제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이 장면에서는 배우들도 즐기면서 촬영했다는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7.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시대적 분위기와 정부, 군의 전폭적 지원이 아니었다면 보기 힘든 스케일과 함께 신인이나 다름없었던 이만희 감독이 본격적으로 맞이 한  재능의 개화기와 맞물려 태어난 작품입니다. 국책선전영화나 다름없을법한 재료를 갖고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상처와 전쟁에 대한 회의, 아울러 장르영화적 재미까지도 소홀함 없이 모두 잘 다루고 있는 이런 걸작이 현재의 작가들 손에서도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가 누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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