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파편 Fragment of Fear (1970)

2011.01.08 11:04

DJUNA 조회 수:10535


"Either I am mad and all this isn't happening to me, or else I'm sane and it is."


데이빗 헤밍스가 연기한 팀 브랫은 영국인 작가입니다. 몇 년 전에 마약에 빠졌다가 죽을 고생을 해서 빠져나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한 권 썼지요. 이제 그는 이탈리아에서 룰루랄라 휴식을 취하는 중인데, 그만 일이 터집니다. 그의 친척 아줌마가 폼페이의 폐허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죠. 


익숙해요, 익숙해. 데이빗 헤밍스가 이런 사건에 이런 식으로 말려든 건 처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관객들은 대부분 그의 75년 작 [딥 레드]를 먼저 보았을 테니, 혹시 이게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오래 끌지 않습니다. 컬러풀한 살인 장면도 없고 동시 녹음이며 이탈리아인들은 진짜 이탈리아어를 하거든요. 게다가 영화는 곧 무대를 영국으로 옮깁니다. 


당연히 브랫은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노력합니다. 그는 살인사건이 스테핑 스톤즈라는 수상쩍은 단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그 증거로 그가 진상에 접근할수록 불길한 일이 일어납니다. 수상쩍은 인물들이 주변을 맴돌며 수상쩍은 소리를 늘어놓고, 협박전화가 걸려오고, 결정적인 증인은 죽고... 그러나 더 나쁜 일은 아무도 이 사실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거죠. 모두들 이것이 마약중독자의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여러분은 브랫을 믿을 겁니다. 그는 주인공이고 살인사건은 풀려야 하니까요. 하지만 영화 중반, 특히 그가 받은 수상쩍은 협박편지가 바로 그 자신의 타이프라이터로 작성되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아가사 크리스티보다 [리펄션]에 훨씬 가깝습니다. 현실 세계는 무게를 잃고 편집증과 광기가 지배합니다. 


이후부터는 완전히 난장판입니다. [공포의 파편]은 이성적인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마약 경험에 가깝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실제 사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리 온전하다고 할 수 없는 브랫의 필터를 통해 보여지지요. 조니 해리스의 웽웽거리는 음악을 배경으로 오스왈드 모리스의 렌즈를 통해 보여지는 이 세계는 얼핏 보면 멀쩡해보이지만 지극히 영국식으로 미쳤습니다. 그 광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건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광기에 이유가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


존 빙엄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최근에 복간되었고, 소문을 들어보니 영화보다 낫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작을 무시하고 별다른 생각없이 본다면, 영상매체라는 도구에 특화된 각색물의 천박한 난장판도 즐길만 합니다. 여러분이 헤밍스의 팬이라면 특히. (11/01/08) 


★★★


기타등등

얼마 전에 소니의 “Screen Classics by Request” 시리즈 DVD로 나왔습니다. 


감독: Richard C. Sarafian, 출연: David Hemmings, Gayle Hunnicutt, Wilfrid Hyde-White, Flora Robson, Adolfo Celi, Roland Culver, Daniel Massey, Mona Washbourne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573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 안테벨룸 Antebellum (2020) DJUNA 2022.04.03 2313
48 도플갱어 Doppelganger (1993) [1] DJUNA 2022.04.15 1449
47 헬레이저 Hellraiser (1987) [1] DJUNA 2022.04.18 2249
46 더 하우스 (2019) [3] DJUNA 2022.04.23 2079
45 서울괴담 (2022) DJUNA 2022.04.28 2973
44 잘라바 Zalava (2021) [1] DJUNA 2022.07.25 1769
43 씨씨 Sissy (2022) DJUNA 2022.07.25 3581
42 스펠 Spell (2020) DJUNA 2022.09.05 1506
41 블랙폰 The Black Phone (2022) DJUNA 2022.09.07 1772
40 죽은 자들의 골짜기 Malnazidos (2020) DJUNA 2022.09.10 1157
39 오! 마이 고스트 (2022) DJUNA 2022.09.16 1287
38 뒤틀린 집 (2022) [1] DJUNA 2022.09.17 1671
37 미혹 (2022) DJUNA 2022.10.30 1725
36 귀못 (2022) DJUNA 2022.10.30 2065
35 옥수역 귀신 (2022) [1] DJUNA 2023.04.20 2411
34 렌필드 Renfield (2023) [3] DJUNA 2023.04.21 8418
33 스트리머 (2023) DJUNA 2023.05.18 194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