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에 대한 잡담

2011.01.08 14:34

메피스토 조회 수:2362

* 수구가 일방적으로 권력을 쥐고 있을때, 모든 사안을 고려하여 타인의 의견과 정치적 성향을 존중해준다면, 사회는 점차적으로 수구화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게시판 트롤의 법칙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트롤이 나타납니다. 행패를 부립니다. 기존 게시판 유저가 뜬금없이 폭탄을 터트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일은? 신고를 통해 트롤을 쫓아내거나 그가 그런 얘길 쉽게 하지 못하도록 비판하는 것이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견해를 들어주며, 그가 개심해서 게시판의 소중한 자산으로 변하기를 기대해야할까요. 이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자산이 더 많을겁니다. 가장 위험한건 게시판이 트롤천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상은 좋지만, 이상에 무임승차하는 자들이 많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강의실에서 토론을 하거나 토론이 목적인 오프라인 모임의 토론에서 제가 싫어하는 부류는 기계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부류입니다. 물론 세상일은 한쪽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나의 견해와 상반되더라도 들어볼 가치가 있고, 그 견해를 나의 가치관에 반영하여  쌍방이 좀 더 발전할 수 있죠.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있습니다. 양쪽 사안 모두를 두루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이는 좋은 수업을 해주시는 교수님들 중 일부에게서 발견되는 성향이기도 합니다. 균형잡힌 시선으로 양쪽의 가치관이 가지는 장단점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잃어버리는 것과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죠. 하지만 현명함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현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토론에서 싫어하는 부류는 설득력은 커녕 통찰력도 가지지 못한채 기계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부류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두종류로 나뉩니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며 좀 튀어보고 싶어서 억지를 쓰는 부류와, 그냥 준비를 해오지 않아서 뭘해야할지 모르는 부류입니다. 전자든 후자든 이들은 본인들이 원하건 원치않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주류적*다수적 입장으로 주제가 흐르도록 만들더군요. 사실 그게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주류가 주류인건 그들이 술잔을 잘 기울여서 주류가 아니라(쿨럭..) 그들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거나 그런 사고방식이 바닥에 깔린 룰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주류라고 불리우는 것일겁니다.  중립적인 태도는 자칫 모든 논쟁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너도 맞고 나도 맞아. 그러니 너도 니 주장을 자제하렴. 나도 내 주장을 자제할테니. 

 

어쨌든, 결과적으로 주류적 입장을 거드는 자칭 중립주의자들은 그럼에도 자신들은 중립적이고 열린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본다, 혹은 바라봐야 한다 라고 주장합니다. 전 이런 얘길 하는 사람을 볼때마다 황당함을 느낍니다. 딱 매칭되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A가 B를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있다가 B가 가까스로 아주 소극적인 정당방위를 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C가 쌍방과실, 폭행으로 결론을 지어버린 뒤 자긴 제3자의 관점을 취한다는 얘길 당당히 하는것을 볼 때 느끼는 황당함과 비슷하죠. 우리사회에서 무엇이 주류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굳이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주류가 아닌 것이 무엇이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지금 이 사회에서 주류, 혹은 주류적 가치관이 무엇이냐에는 답이 있습니다. 그게 올바른 것이냐? 글쎄요.

 

주류가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고, 존재하는 가치관이라해서 모두 존중할 가치가 있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집에서 애낳고 빨래하고 밥하는게 하늘이 정해준 일이다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해있던 사회도 있었고, 유태인들은 모두 가스실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실행에 옮긴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못생긴 여자가 서비스가 더 좋다고 얘기하는 정치인도 있고, 누가 피를 흘리건 당장 북진해서 무력통일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사회발전을 가로막거나 타인을 무자비하게 짓밟거나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채 그냥 되는데로 내뱉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가치관들은 그냥 예외로 삼아야 할까요?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지나간 현재입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오늘 일어날 수도, 미래에 일어날수도 있죠. 오늘날에도 먼훗날 저런 것들과 동등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사방에 지뢰처럼 깔려져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모든 가치관을 하나하나 존중해주고,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받아들이거나 바라본다면 대한민국은 둘째치고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고 덜떨어진 세계에서 살고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의견이 반드시 기계적 중립성vs통찰력을 갖춘 중립, 이렇게 둘로 나뉘는건 아니죠. 하지만 온오프를 막론하고 제가 보고 겪은 토론에서, 중립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결국 둘 중 하나로 수렴하더군요. 전 통찰력을 갖춘 현명함과는 거리가 먼인간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건 당분간이건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건 포기했습니다. 먼미래에는 어찌될지 모릅니다만, 기계적인 중립을 지양한다는 것에선 별차이가 없겠죠.

 

늘그렇듯 잡소리가 길었군요. 

 

결론은, 전 이명박과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이 나라의 수구적 포지션을 존중하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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