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홍익대 시설, 청소 노동자 분들이 농성하시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지역단체들이 돌아가며 저녁 시간 프로그램을 맡는데, 어제는 서울 서부비정규센터와 수유너머N에서 왔습니다. 바닥엔 얇은 스티로폼이 깔려 있어서 한기를 막지 못합니다. 침낭을 깔고 덮고 해야 그나마 앉아 있을 수 있어요. 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잠은 안쪽에서 잡니다. 역시 맨바닥에 이것저것 깔고요. 140명 노동자분들이 돌아가며 잡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다보니, '골병'이 들까 걱정입니다.

 

 

'우리도 살고 싶다'라는 현수막. 노동자분들이 직접 쓰신 겁니다. '살고 싶다'는 울림이 크게 느껴져 찍어봤습니다. 옆에는 트위터리안들이 보낸 글을 모아놓은 자보가 보이네요.

 

 

내부 세력들이 잘 하고 있으면 외부 세력들이 연대하러 올 일도 없겠지요.저도 홍대 앞에서 술이나 마셔봤지, 이 건물에는 처음 들어가 봤습니다. 농성장에는 날마다 밤새는 연대생, 멀리서 매일 오는 아주대생, 물품을 들고 방문한 가톨릭대 학생 등등 홍대 총학 같은 학생들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프로레슬링 해설자인 김남훈 씨가 보낸 파닭과 프라이드 치킨입니다. 밥을 먹고 간 저는 후회... 노동자분들과 연대하러 간 사람들 모두 잘 먹었습니다. 이밖에도 한켠에는 라면, 간식 등 각지의 개인과 단체가 보낸 물품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모자르대요. 한 끼니에 들어가는 쌀만 해도 40kg이 된다는 소리도 들었고요. 생수와 국거리가 부족한가 봅니다.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쓰던 전열기를 갖다 놓은 것 같더군요. 홍익대 노동조합 분회장님은 울보가 되셨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연대해 주는 것이 고마워서요. 일터 돌아가셔서도 이 마음 잊지 않고 당당하게 일하셨으면 좋겠어요.

 

추울 때 뭐 하자는 게 제일 싫은 저로서는 하루 빨리 이 농성이 끝났으면 합니다. 근데 칼자루를 쥐고 있는 홍익대 이사장이나 총장 측은 의지가 없어 보이네요. 홍익대 학생들은 외부 행사 있는 날만 현수막 좀 걷어 줄 수 없냐, 회사 취직할 때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이러고 있고요. 헛똑똑이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저를 포함한 이 사회겠지요.

 

학교 측을 옹호하는 측에서 객관이나 중립 이런 말이 유난히 많이 나오네요.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당하기 때문에 편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나는 다른 편을 들어야 중립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있는 것 같더군요. 온라인에서는 이런 식의 대량 해고는 학살이나 다름없다는 현수막 문구를 앞뒤 잘라먹고 '노조는 학생들에게 대량학살이라는 끔찍한 문구를 쓰고 있다'고 선동하며 돌아다니는 학생들도 눈에 띕니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이라면서요.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면 제 자리가 아니라 뒤로 밀려난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요. 중용을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중용의 덕인 '용기'는 '만용'과 '비겁' 정중앙에 있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요.

 

이른바 홍익대 루저녀 사건 때의 민첩성과 열의를 10분의 1만이라도 이 사태에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과 다름 없이 연로한 분들이 월급도 얼마 못 받고 고생한다는 시각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얼마나 더 비참해야 연대할 건데?'라고 하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고, 이왕이면 잘 살고 싶어합니다. 잘 산다는 건 돈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일 테고요.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으며 살아가야 하고, 일한 만큼 또는 필요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요...

 

청소노동자분들은 농성장을 청소하십니다. 계약해지 그날까지 다 채워서 일하셨고요. 나가라는 학교가 밉지도 않은지, 몸에 배인 습관이어서인지 저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착해서 이용당하는 사회가 아니라, 착해도 살 수 있는, 착하니까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은 답답한데, 어떻게 표현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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