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사람으로 있으면 편할 때도 많습니다. 책임있는 결정을 안하잖아요. 제 맘대로 하고 싶을 걸 못한다는 건 단점이지만, 반대로 추진된 사항이 잘못되면 "내가 결정한 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결정에는 권위적이면서 책임질 일 생기면 책임회피에 급급한 상사가 최악의 상사로 꼽히는가 봅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편하다'는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시키는 것'에 일관성이 없을 때 일어납니다.

 

"이번에 부서 체육대회 가야지? 어디 좋은데 추천해봐요."

 - 저 팀장님. 지금 신종플루가 장난이 아닌데 우르르 단체활동은 좀...

"신종플루? 아니  젊은 사람이 뭐 그런걸 겁내나? 괜찮아. 추진해."

 - 네.

 

이후 장소예약, 식당예약 등등 다 해놓고 보고합니다.

 

"아 근데.. 신종플루가 갈수록 심해지네? 그냥 취소하자."

 - (그럴거면 진작에...ㅠㅠ) 네. 알겠습니다.

 

예약했던 거 다 취소. 임박해서 취소한다고 욕억음.

 

"아 그런데 상무팀이... 신종플루 때문에라도 건강을 챙겨야하니 체육대회를 해야한다고 하시네? 어떡하지?"

 - (응?) 저.. 다 취소했는데...

"아 근데 상무님이 원하시는데 어떡해. 그냥 다시 잡아."

 - 네. ㅠㅠ

 

"야 난리났다. 사장님이 단체활동 금지래. 다 취소해."

 - (헉스) 아니 당장 내일인데 지금 취소하면 체육관, 식당 등에서 난리가..

"아 몰라. 어쩌라고. 빨리 취소해."

 

"아니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예약 했다 취소했다 했다 취소했다 장난쳐? 당장 내일 예약 못받은게 얼만데..." 라며 역정내는 체육관, 식당 담당자에게 "죄송합니다ㅠㅠ"를 연발해야 하는 건 사장도 팀장도 아닌 실무 직원. ㅠㅠ 그럴 땐 "이씨 이럴거면 이런 난감한 취소전화도 상사가 하던가" 싶기도 하지만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닌.. ㅠㅠ

 

장관이나 정부 고위인사 초청하는 행사 해보면 더 장난 아니더군요. 온다, 안온다가 몇 번이 바뀌는지.  나중에 부처 직원이 "방금 국장님이 확실하게 말씀하셨어요. 장관님 못가신데요." 라는 말 듣고 장관 안오는 걸로 조정했더니만(의전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장 집에 감) 행사 직전에 "장관님 가신답니다!!" 라는 전화(의전 약하다고 욕할지도 모르니 집에 간 사장 다시 불러야 ㅠㅠ). "야 안온다며!!!!" 라고 승질내봤자 저쪽은 "장관님이 가주시겠다는데 영광인줄 알아" 라는 거만함과 "아 장관이 말바꾸는데 난들 어쩌라고?" 라는 하소연을 섞어 대답하니 뭐 할 말도 없고.

 

뭐 때에 따라 욕하기도 하고.. 측은해하기도 합니다만.. 어쨌건 아침부터 윗선의 변심에 크게 한 방 맞고나니 기분이 좀.. ㅠㅠ 게다가 이번 건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건이었는데 "이정도는 괜찮아"라며 자신있게 밀어부치더니 이제와서 "심각한데?" 라며 취소, 변경하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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