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 홀]

우리가 처음 그들을 접할 때 베카와 하위는 단지 평범한 일상을 이끌어가고 있는 부부로 보입니다. 하지만 점차 우린 그들은 한 비극으로 인한 여파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린 아들을 갑작스럽게 잃은 지 1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가운데 아내 베카는 그 비극을 잊으려고 하고 있고 반대로 남편 하위는 아들의 기억에 매달리려고 하지만, 둘 다 하나 같이 그 비극으로 여전히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전작들과 달리 감독 존 카메론 미첼은 얌전하게 절제된 접근 방식 속에서 이들의 상처가 서서히 아프게 치유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 배우들로부터 좋은 연기를 뽑아냅니다. 오스카 받은 후로 경력이 상대적으로 침체된 니콜 키드만이 오랜 만에 적역을 맡아 오스카 후보감 호연을 보여준 것도 좋지만 상대역인 아론 애크하트나 그들 곁에 있는 다이앤 위스트와 샌드라 오도 마찬가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요. (***)

 

 

[소울 키친]

제가 몇 년 전 무척 인상 깊게 봤던 [천국의 가장자리]의 감독 파티 아킨의 최근작인 [소울 키친]은 주인공 형제가 제대로 경영하려고 하는 식당을 무대로 한 코미디 영화입니다. 이야기가 느슨한 가운데 일이 어떻게 전개될 지 뻔하고 결말을 그리 잘 끝맺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캐릭터들은 재미있는 사람들이고 영화는 부담 없이 유쾌하게 볼 수 있습니다. (**1/2)

 

 

 

[겟 로우]

얼마 전 80세 생일을 맞으신 로버트 듀발께선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는 노장배우이시고, 아마도 본 영화로 오랜 만에 오스카 후보에 오를 것입니다. 듀발 옹이 연기하시는 노인 펠릭스는 자신의 동네에서 소문난 은둔자인데, 그는 자신이 옛날에 알던 사람이 늙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자각했는지 자신의 장례식을 죽기 전에 미리 열기로 계획합니다. 동네 장의사 프랭크(빌 머레이)의 도움 아래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펠릭스에게 숨긴 과거가 있다는 게 드러나고, 이는 당연히 이야기 마지막에 가서 그의 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말이 밝혀집니다. 줄거리야 뻔하지만 듀발의 연기는 그  진부함을 단번에 뛰어넘습니다. (***)

 

 

 

[섬웨어]

많은 분들께서 지적해 왔듯이, 소피아 코폴라의 능력 범위는 좁지만 방황과 공허이란 주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선 그녀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녀의 최신작 [섬웨어]는 보는 사람들에 따라 엄청 공허하게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마리 앙투와네트]를 좋아하신다면 주인공의 공허한 일상을 죽 지켜보시면서 몰입되는 동안 뭔가를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자신이 얼마나 얄팍한 인간인지에 대해 눈을 돌리려고 하지만 결국엔 그걸 부인하지 못하는 스타 배우를 맡은 스티븐 도프 곁에서 엘르 패닝은 주인공의 유일한 위안인 주인공의 딸을 맡았는데 자신도 언니 못지않게 좋은 배우로 성장 중임을 확연히 보여줍니다. (***1/2)

 

 

 

 

[A Town Called Panic]

이 조그만 벨기에 산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동안 전 어린 애들이 방에서 장난감들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정말 애들 장난감 상자에서 툭 튀어 나왔을 법한 조그만 인형들이 주인공들로 나오니 좀 어이가 없지만, 전 금세 주인공 말(정말 말입니다)과 주변 캐릭터들이 그의 한 집에 같이 사는 사고뭉치인 카우보이와 인디언 때문에 황당한 고생을 하는 모습에 낄낄거렸습니다. 생각보다 꽤 재기 넘치니 기회 있으면 한 번 꼭 보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전 결말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보지만 이건 실사영화가 아니잖습니까? (***)

 

 

 

[우리집 강아지 튤립]

폴과 샌드라 피어링어의 애니메이션 [My Dog Tulip]은 J.R. 애커리의 책을 바탕으로써 한 독신남과 그의 애완견 간의 끈끈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연히 얻은 독일 셰퍼드 암캐 튤립은 처음에 애커리에게 있어서 낯선 피조물이었지만, 둘은 점차 가까워지고 그런 동안에 애커리는 자신과 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일들과 사람들을 재치 있게 관조합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중후한 내레이션과 수채화 스타일의 인상적인 애니메이션도 훌륭한 가운데, 애커리와 튤립의 에피소드들에 재미있어하다 보면 어느 덧 개만큼 우리에게 좋은 동물 친구는 없다는 사실이 영국 아저씨 이야기다운 방식으로 찡하게 다가옵니다. (***)

 

 

 

 

[Catfish]

뉴욕의 사진작가 야니브 슐만은 미시간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 애비로부터 자신의 사진들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을 이메일로 받고 야니브는 애비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 야니브는 직접 그들을 만나고 싶게 되고 본 다큐멘터리의 감독인 그의 형과 형의 친구는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갑니다. 한데, 일은 예상 외로 꽤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무슨 일이 생기는지 스포일러 상 얘기할 수 없지만, 인터넷 시대에서나 흔히 들어봤을 상황이 생기나는 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허구인지 사실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제가 보기엔 다큐멘터리 속의 사람들은 진짜 감정을 겪고 있어 보입니다. (***)

 

 

 

[파이터]

[파이터]는 복싱 영화로써는 균형이 좀 잘 안 잡혔습니다. 주인공이 권투선수이고 권투 경기 장면들이 여럿이 나오지만 정작 주인공은 이야기에서 가장 심심한 순둥이 주인공이고 경기 장면들은 우리가 대개 TV에서 보는 것 만큼이고, 캐릭터들 간 갈등 전개는 지루하지, 않았지만 너무 쉽게 풀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의 최대장점은 바로 이 순둥이 주인공을 경기장으로 한 조연 캐릭터들 간의 갈등인데, 제가 앞에서 언급한 그 단점을 그게 얼마나 보완하는지 보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의견이 다를 것입니다. 감독 데이빗 O. 러셀이 뻔한 멜로드라마를 우직한 방식으로 화면에 잘 녹여내는 가운데 세 조연 배우들인 멜리사 리오, 에이미 아담스, 그리고 크리스천 베일은 오스카 후보에 오를 기세로 대결하면서 이들에 비해 낮은 톤의 주연 연기를 하는 마크 월버그를 가려버립니다. 세 배우들 모두 모두 후보에 오를 자격이 있는데 특히 주인공의 마약 중독자 형을 연기한 크리스천 베일은 또 다시 한 번 극단적인 캐릭터에 자신을 아낌없이 확 던지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나올 때마다 매번 월버그를 압도할 정도이니 영화의 드라마가 차라리 그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했다면 훨씬 더 극적이고 재미있었을 거예요.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이 조연들에게만 몰려있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1/2)

 

 

 

[더 브레이브]

코엔 형제의 영화들은 해당 장르에 적합한 무대를 잘 조성한 다음 줄거리를 비비 꼬여대곤 했는데, 그들의 신작 [더 브레이브]은 비교적 얌전하게 원작 소설과 1969년 영화 [진정한 용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걱정 마시길 바랍니다. 코엔 형제는 징그러울 정도로 모범적이면서도 자신들의 개성을 잃지 않은 가운데 현대 서부극 스타일의 잘 만든 영화를 내놓았고, 영화는 1969년 영화와 비교되면서 동시에 독자적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1969년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존 웨인에 꿀리지 않으면서 자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오스카감 명연을 제공한 제프 브리지스나 아마 마침내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을 지도 모를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에 의해 보여 지는 황량하게 아름다운 배경도 인상적이지만, 브리지스나 맷 데이먼, 조쉬 브롤린, 베리 페퍼와 같은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 당당히 주연 자리를 차지하는 14살의 어린 배우 헤일리 스타인펠드(본 영화는 그녀의 첫 출연작입니다)는 본 영화를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입니다. 주연 배우로 밀면 오스카 레이스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겠지만, 승률이 더 큰 부문인 조연 배우로 밀기에 상당히 아까울 정도예요. (***1/2)

 

 

 

[얼간이들을 위한 만찬]

본 영화엔 그 끔찍하게 케케묵은 영구보다 더 나은 게 있는 데 그건 스티브 카렐의 얼간이 연기입니다. 스티브 카렐은 미드 [오피스]의 그 진저리나는(하지만 가끔은 사랑스러운) 마이클 스캇 지점장님에서 보다시피 자기가 얼마나 팔푼이인지에 대해 맹하기 그지없는 코미디 캐릭터로써 적역이고 그는 정말 그걸 잘합니다. 영화에서 그가 맡은 회계사 배리의 취미는 주위에서 보이는 죽은 쥐들을 갖고 박제에서 ‘마우스터피스’ 앨범을 비롯한 각종 디오라마들을 만드는 건데, 참고로 이 엽기 취미의 결과물들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래도 그는 그걸 정말 잘 합니다). 우연히 그와 마주치게 된 팀(폴 러드)는 회사 내 승진을 위해 자신의 상사가 여는 사적 만찬에 데려올 얼간이로 그가 적역이라고 보지만, 불행히도 배리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한 골칫덩이였습니다. 덕분에 온갖 난처한 소동들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 덧 문제의 만찬이 시작되고 우린 얼간이들을 대접받습니다. 그런데 누가 얼간이인지는 제가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1/2)

 

 

 

[하울]

[하비 밀크의 시대]로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상을 받기도 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인 롭 엡스타인과 제프리 프리드먼의 첫 극영화인 [하울]은 동명의 시를 통해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동시에 1950년대 미국 비트 제네레이션을 대표하는 문인들 중 한 명이 된 알렌 긴스버그의 전기 영화입니다. 영화는 여러 접근방식들로 대상 인물의 한 중요 순간들을 관조하면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임스 프랑코에 의해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긴스버그의 인터뷰가 재현되는 동안 긴스버그는 자신의 인생에 중요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기에다가 데이빗 스트래세언, 존 햄(예, 시대는 약간 좀 달라도 돈 드레이퍼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프 다니엘스, 메리 루이스 파커, 밥 발라반 등의 다른 배우들이 등장해서 꼼꼼히 재현된 긴스버그의 시의 외설성 여부를 따지는 재판 시퀀스 그리고 긴스버그의 작품들이 낭독되는 동안 곁들여지는 애니메이션 시퀀스가 끼어듭니다. 그 조합에서 의도한 만큼의 시너지가 나오지 않고 영화는 간간히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영화는 긴스버그와 그의 시를 둘러싼 사회 분위기를 잘 전달하는 편이고 프랑코의 꾸밈없는 긴스버그 연기도 볼만합니다. (***)

 

 

 

[Mugabe and the White African]

2008년 짐바브웨의 백인 농부 마이크 캠벨은 아프리카 국제재판소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그 나라를 20년 넘게 지배해 온 독재자 무가베 대통령이 토지 개혁을 빌미로 자신의 땅을 뺏으려고 하자 이를 지키기 위해 국제법원에 탄원을 한 거지요. 감독 루시 베일리와 앤드류 톰슨은 체포될 위협을 감수하면서 짐바브웨에서 찍은 영상 자료들과 국외에서 찍은 영상 자료들을 갖고 본 작품을 만들었는데 농장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캠벨과 그의 사위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짐바브웨 정부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국제 법원에서의 재판을 연기시키고 그런 동안 밤마다 캠벨과 그의 사위 그리고 농장 사람들은 맘을 졸이고 경계를 하는 데 나중에 이야기가 험하게 돌아가는 걸 보면 그들은 괜한 걱정을 한 게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백인으로써 마이크의 사회적 위치나 그와 원주민들 간의 관계를 그리 깊게 다루지 않은 게 중요 약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당한 사연을 아프게 고발하는 면에 있어서 본 다큐멘터리는 기억에 남습니다. (***)

 

 

 

[트웰브]

조엘 슈마처의 최근 작품인 [트웰브]는 재작년에 본 영화 [인포머스]를 연상케 합니다. 후자는 LA 부자 동네를 무대로 한 껍데기 인간들의 공허한 방황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전자도 그들 못지않게 번지르르한 껍데기 군상들의 방종과 방황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번엔 봄방학을 맞아서 흥청망청 놀 준비가 되어 있는 뉴욕 부촌 십대들 이야기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마약을 팔고 다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여러 캐릭터들이 맴돌아 다니는 가운데 이야기도 같이 맴돌다가 예정된 극적인 순간에 다다릅니다(참고로 영화 제목은 너무 강해서 그가 팔길 거부하는 최신 마약 이름입니다). 슈마처는 거장은 아닐지언정 실력 있는 상업 감독이니 영화는 매끈하게 잘 만들었고, 대부분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습니다. 하지만 소재의 식상함을 넘어서지 못했고 특히 키퍼 서덜랜드의 내레이션은 너무 자주 끼어들어서 간간히 거슬립니다. (**1/2)

 

 

 

 

[스톤]

많은 영화들이 은퇴 직전인 주인공들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곤 하는데, 교도소에서 죄수 석방 심사를 하는 주인공 잭(로버트 드니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퇴가 얼마 안 남은 그는 형기를 거의 다 채워가고 있는 스톤이란 한 죄수의 석방 여부를 결정을 위해 그와 면담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가면 갈수록 스톤과 그의 아내 루세타가 뭔가를 계획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잭과 우리에게 들기 시작합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 지에 얘기하지 않겠지만 영화는 이런 소재에서 예상할 법한 두뇌싸움 스릴러보다 한 인간의 불안한 내면이 흔들려가는 캐릭터 드라마로 간다는 점은 미리 지적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진중하게 쌓은 긴장감에 비해 결말이 불만족스럽긴 해도, 요즘 들어 경력이 하향세를 긋고 있는 드니로 옹이 자신의 연기 실력이 전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는 점, 상대역인 에드워드 노튼이 그와 호흡을 잘 맞추면서 이야기 속 긴장을 팽팽하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노튼의 아내를 맡은 밀라 요보비치가 생각보다 좋은 배우임을 보여준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1/2)

 

 

 

 

[카지노 잭]

감독 조지 히켄루퍼의 유작인(그는 개봉 직전에 사망했습니다) 코미디 영화 [카지노 잭]은 몇 년 전 워싱턴 정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캔들의 중심인물 잭 에이브러모프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에이브러모프는 공화당의 핵심인물이었던 톰 딜레이를 비롯한 온갖 연줄들과 돈줄들을 가진 막강한 로비스트였지만 오만방자하게 자신의 일들을 밀어붙였다가 그렇게 쌓아 온 사상누각들이 대개 그러듯이 그의 권력은 한 사건으로 인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결국에 가서 그는 말만 안 하지 워싱턴에서는 모두가 다 하고 있는 일 탓으로 감옥에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그는 최근에 출소했습니다). 영화에서 에이브러모프는 자신의 말대로 뭔가를 이룩하려고 하는 일중독자이고 가족을 아끼는 인간이지만 동시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교활한 위선자인 흥미로운 주인공이고 오랜 만에 적역을 만난 케빈 스페이시는 이 기회를 전혀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의 몰락에 일조한 한심한 동료들을 맡은 베리 페퍼나 존 로비츠도 좋은 조연이지요. (***)

 

 

 

[네버 렛 미 고]

작년에 이시구로 가쯔오의 동명 소설을 읽으면서 전 어떻게 이걸 영화화할까 궁금해 했습니다. 각색이야 가능하지만 회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 만큼 전개 구조가 복잡하니 그걸 영화 각본으로 옮기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이야기 속에서 서서히 쌓여가는 감정들을 둘러싼 어렴풋한 분위기는 자칫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지요.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 고]는 각색 과정에서의 소설의 전반부 압축으로 이야기나 캐릭터 묘사에서 힘을 잃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화는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분위기와 그 속에 들어 있는 감정들에 충실한 침착한 각색물이고 키라 나이틀리,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캐리 멀리건은 그 분위기에 알맞게 절제된 연기를 합니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속한 사회의 잔인한 면과 그에 따른 슬픔 속에서 주인공들이 시작부터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조용히 마음을 건들입니다. (***)

 

 

[메가마인드]

전에는 생각 하지도 못한 역할을 어쩌다가 맡게 된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본 작품은 [슈퍼배드]와 비교해 볼 만 한데 웃음과 재미 강도는 [메가마인드]가 살짝 더 높습니다. 시작부터 금세 연상되는 [슈퍼맨]의 여러 설정들을 갖고 재치 있게 코미디를 하니 속으로 실실 쪼갤 수밖에 없는 가운데 [슈퍼 배드]처럼 이야기를 맺으려고 하는 동안 김이 빠지지만 그래도 그 영화보다 덜 일찍 빠집니다. 더빙이 어떤지 모르지만, 윌 페럴, 티나 페이, 데이빗 크로스, 조나 힐, 그리고 조지 클루니 성대 모사하는 것 같은 브래드 피트를 대체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3D는 듣던 대로 그리 불편하지 않지만 대부분 경우들이 그랬듯이 자막 2D 보실 수 있으면 그걸 대신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

 

 

 

[환상의 그대]

우디 앨런의 신작 [환상의 그대]는 그보다 더 즐길 만한 우디 앨런 코미디들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 줄 정도로 2% 부족합니다. 배우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좋고(안소니 홉킨스 옹을 우디 앨런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이야....) 영화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지만, 그리 정이 많이 가지 않은 네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 원래 의도와 달리 서로 겉돈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1/2)

 

 

 

[127시간]

지난번 보쿠리코님이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실 때 어떤 분이 [베리드]도 못 보는 데 어떻게 이 영화를 볼 수 있냐고 말씀하셨는데, 걱정 마시길 바랍니다. 왜냐면 [베리드]가 주인공과 그를 보는 우릴 짓누르는 공포로 가득 찬 어두컴컴한 잘 만든 영화라면, [127시간]은 꼼짝 못한 상태에서도 계속 요동치는 활력으로 가득 찬 밝은 잘 만든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실화에 바탕을 두었고 그 실화의 주인공인 아론 랄스턴이 쓴 책이 원작이니 결말은 이미 정해졌지만, 감독 대니 보일이 약 90분 동안 보여 주는 여정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이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자리는 예약되어 있는 제임스 프랑코의 훌륭한 연기는 영화 전반을 탄탄히 지탱하는 동안 좌절 속에서도 낙천성과 유머를 잃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전달합니다(참고로 랄스턴은 지금도 산악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당연히 전보다 더 조심스럽지요). 아, 그리고 이미 많이 얘기되어지다시피, 랄스턴이 결국에 가서 상당히 오금저리는 일을 할 때 영화는 촬영, 편집, 음향, 그리고 음악을 통해 그 치 떨리는 순간을 대부분 우리 상상에게 맡깁니다. 이는 웬만한 호러 영화 신체훼손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지만 그런 무시무시함 속에서도 영화는 전혀 기죽지 않습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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