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배드]와 [메가마인드]가 미니언이라는 단어를 고유명사화시켰다면, [이고르]는 이고르라는 이름을 일반명사화시켰습니다. 이제 이고르는 하나의 직업이고 계급입니다. 심지어 이고르를 양성하는 학교도 있지요. 그 학교에서는 미친 과학자의 조수 역할 뿐만 아니라 이상한 외국어 악센트로 우물거리는 것도 가르칩니다. 후자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죠. 


그래도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신경 쓰는 이고르는 한 명입니다. 이 이고르는 이고르로 교육받았지만 이고르의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반항아죠. 알고 보면 천재 과학자인 그는 고용주가 우연한 사고로 목숨을 잃자 그 기회를 이용해 이바라는 거대한 괴물을 만듭니다. 하지만 세뇌 장치가 고장나는 바람에 호러 영화 대신 제임스 립튼의 [인사이드 더 액터스 스튜디오]를 잔뜩 보게 된 이바는 호러 영화의 괴물 대신 할리우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야무진 희망을 품게 되지요.


제목과 주인공 이름만 봐도 짐작하시겠지만, 안소니 레오니디스의 이 CG 애니메이션 영화는 팀 버튼의 영향을 담뿍 받았습니다. 주인공은 귀여움과 섬뜩한 불쾌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호러 영화의 클리셰와 소모품 캐릭터들에 대한 삐딱한 애정이 가득하지요. 대중문화의 인용들 역시 종종 아주 괴상하게 결합됩니다. 특히 결정적인 장면에서 이바가 부르는 [애니]의 [투모로우]는요. 


단지 이 감수성은 보다 동화적이고 건전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레오니디스는 그냥 선과 악을 거꾸로 놓고 그 패러독스를 즐기기만 하지는 않아요. 선과 악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전히 인식하고 있고 영화가 흐르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지 명확하게 밝힙니다. 심심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이치에 맞죠. 온가족이 보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면서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선과 악을 바꾸어놓고 웃어대는 건 그리 책임감 있는 태도는 아니지요.


괴상한 설정에 비해, 영화의 스토리는 안전하고 평범한 편입니다. 결국 선량한 주인공이 세계를 구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이거든요. 이바를 둘러싼 이고르와 사악한 과학자들과의 다툼은 이야기의 발전없이 그냥 길기만 하며, 감상적인 호소와 연설은 갈등을 맺는 너무 쉬운 선택입니다. 조금 더 삐딱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부분들이 여기저기에 있죠. 


애니메이션은 무난합니다. 물론 이 작품을 픽사나 디즈니 영화들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척 봐도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만든 작품이라는 게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캐릭터 디자인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그건 결국 취향차이고, 이런 영화에서 그런 차이의 존재는 당연하니까요. (11/01/24)


★★☆


기타등등

베트남에 애니메이션 하청을 준 영화를 처음 본 것 같아요.


감독: Anthony Leondis, 출연: John Cusack, Molly Shannon, John Cleese, Steve Buscemi, Sean Hayes, Eddie Izzard, Jennifer Coolidge, Jay Leno, James Lipton, Christian Slater, Arsenio Hall


IMDb http://www.imdb.com/title/tt046550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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