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따뜻한 사랑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정말 절대적 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인간사 문제의 근원은 '애정 결핍' 이라고 하잖아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줄 알고, 받아 들일 줄 아는 따뜻한 한 사람의 사랑은 주위를 그만의 색으로 따뜻하게 물들여요.
마음속 깊히 박힌 얼음을 따사로운 햇볓이 녹여주는 그런 느낌.

 

9년전에 사귀었었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성인(聖人)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렇다고 성직자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거나ㅎ 그런 사람은 아니고요. 제가 성자라고 하는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성적 이면서도 차분하고 인내심이 많아서 제가 붙여준거예요.

저는 그 사람한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나를 이미 훤하게 꿰뚫고 있고, 내가 어떤 말을 하기 전에도

내가 뭘 말하려는지 알고 있고 내가 말도 안되는 떼를 써도 허허 웃으며 나를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느낌.

제가 한 살 많은데도 불구하고 참.. 그랬어요. 그 때의 저를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어이가 없는 사람이었네요.
변덕도 그런 변덕이 없었고 기분 나쁘면 틱틱대고, 나 기분 나쁜거 안알아주면 또 그거 가지고 화를 내고

좋으면 좋다고 끙끙 대다가도 갑자기 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불안한 마음이 들면 트집을 잡아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집착하고 숨막히게 하고,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 남자친구 마음을 내가 좌지우지 하고 싶은 못된 이기심도 있었고요.
한마디로 누구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구제불능 이었어요. 저는요.
어떤 사람을 받아 들이기는 커녕 '너는 당연히 나한테 이렇게 해줘야해' 라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며

내가 바라는 것을 관철시키기 바쁜 어린아이 였지요.
간혹 제가 너무하다 싶을 때는 남자친구도 화를 내곤 했지만 거의 대부분 조근조근 이야기하거나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곤 했어요. 그러면 저도 마음이 가라앉고 괜찮아 지곤 했고요.
그러고 나서 따뜻하게 바라봐 주거나 따뜻한 스킨십을 해줬어요.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에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져 본 적이 없어요.

그냥 너의 모습으로도 괜찮아, 예뻐, 너가 어떻든 난 너가 좋아. 너가 그런식으로 지독하게 굴어도 너가 사랑스러워. 이렇게요.

부모님이 표현하시는 분들이 아니어서 따뜻한 말을 듣는다거나 스킨십 같은 것은 상상도 해본적 없고요,

두 분다 안정된 분들이기 보단 불안해 하시고 걱정 많으시고 전전긍긍 하시는 분들이라, 

일관적으로 내가 사랑받는 다는 느낌을 잘 못 받으면서 자랐어요.
마음을 나눌만한 지인들도 있죠. 그렇지만 성격이 다른 감정 교류지요. 사랑하는 이성이기 때문에 더 따뜻하게 느꼈을 수도 있고요.
남자친구는 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 때는 제가 잘못한지 몰랐어요. 그 사람이 저한테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도 알고는 있었는데

남자친구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 했었죠.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두는 그 사람이 저는 무심하다고 생각했었고

언제나 처럼 '너가 날 사랑한다면 나에게 그런식으로 대해서는 안돼' 라고 생각하며

혼자 세뇌시키다가 결국 그걸 혼자 믿어 버리고 권태기 비슷한 시기에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버렸어요.

저 혼자 생각하고 저 혼자 결론 내리고 그렇게 해버린거죠.

그 때 제가 신의 말씀처럼 믿던 말은 '여자는 표현받고 사랑 받아야 한다'는 말과

 '내가 편한 사람과 만나야 한다. 사귀는게 지옥같으면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 였어요.

제가 주관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저만의 기준으로 제 상황을 판단 했을텐데 저는 그럴 능력도 없었고

주위의 그런 말들을 제 마음속에 내면화 하면서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살았죠.

 

역시나 그 사람은 잘 잊혀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랑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그런성격도 아니었고요.

누군가가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데 다른사람을 만날 마음도 생기지가 않더라고요.

그렇게 몇년 동안 계속 고민했어요. 왜 그런식으로 나는 관계를 끝내버렸을까, 그런 선택을 한 나는 누구일까,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결국 주는 저에 대해 고민하는 거였죠.

저는 그 때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순간순간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조차 모르고 그냥 사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결국 저는 알게 되었어요. 우리 관계에서 모든 문제는 저한테 있었다는 사실을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내 인격의 모자람을 그 사람이 많은 부분 감싸주고 있었지만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인연을 끊음으로써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요.

내가 힘들고 불편하다고 그만 둬버린 그 관계가 결국 내가 자초한 거였다는 사실을요.
그런 방식으로 그 외 내 소중한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줘오고 있었다는 사실도요.
한 순간에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추악한 인간이었는지 느껴졌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어요.
제가 조금 객관적으로 보이더라고요. 매 순간 저를 다잡으려고 노력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니 제 자신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때쯤 부터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가 나에게 따뜻한 사랑을 줬던것 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란 생각을요.

물론 제가 그 사람처럼 그런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는 길은 참 길고 험난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닮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1년 전부터 그 사람과 다시 만나 잘 지내고 있어요.
그 사람은 그렇게 끝내버린 저를 다시 따뜻하게 받아주더라고요.
예전과 변함없이 그 사람은 저를 대하지만 저는 예전과는 전혀 다르죠.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불안해 하지 않고, 변덕을 부리면서 화를 내지도 않고요.
물론 가끔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이제는 제 마음을 수월하게 가라앉힐 수 있죠.

소용돌이 치는 내 감정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평온함도 중요하니까. 그정도는 이제 배려할 수 있으니까.
나도 그 사람만큼 평온함을 즐길 수 있으니까. 아니 내가 원래 그런걸 즐기는 사람이라는걸 알았으니까.
내가 조금이나마 그 사람을 그 사람일 수 있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서 행복하고요,

과거에 내가 그 사람에게 받았던 그 따뜻함을 열배로 돌려주고 싶네요.

 

사실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것 만큼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나는 분명 어떤 방식이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요,

그렇게 내가 전한 진심은 또 나에게 되돌아 오고요. 순환인거 같아요.
행복은 나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정말 맞는말 인거 같고요.
이렇게 추운날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앉아 있다보니.. 따뜻하고 행복한 생각들만 마구마구 떠올라서 글써봤어요. 

본의 아니게 염장질렀다면 죄송해요ㅎㅎ

제 글의 요지는 내 자신을 돌아보는게 중요하다~ 였어요.
어느순간 나를 얽매고 있던 모든 문제들이 스르륵 풀리는 느낌을 받으실 꺼예요.
다른 분들도 저처럼 행복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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