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설의 요건

2011.01.28 22:30

이반 조회 수:2672

좋은 소설의 요건이라고 제목을 쓰긴 했지만,
사실 저는 좋은 소설의 요건이라는 걸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게 평가하는 소설이 정말 왜 좋은지 모를때도 많고,
거의 모두가 기피하는 그런 소설이 훌륭해 보일때도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의 요건이라기보다는

저에게 마음에 드는 소설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았는데
그 공통점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건 또 쉽지 않은 문제더군요.

그래서 이런저런 글을 찾아 읽다가 몇가지를 여기 게시판에 공유합니다.

일단, 도정일 선생님(?)이 김영하씨 첫 장편 소설에서 했던 심사평.


다른 이들도 비슷하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소설 심사에 적용하는 다섯 개의 주요 기준을 갖고 있다. 
언어의 문학예술적 사용력, 이야기 만들기의 공학적 기술 수준, 사건 구성(틀거리 짜기)의 능력, 인물 창조력, 사상과 주제의 심도가 그것들이다.
이것들을 한 단어로 적절히 표현하기에는 아직 우리에게 공인된 어휘가 없어 때때로 나는 서사이론 교육 시간에
(위의 나열 순서대로) 피규라, 테크네, 뮈토스, 에토스, 다이아노이아 같은 용어를 쓰기도 한다.
 물론 이것들 외에도 이런저런 고려사항들이 없지 않지만, 위의 다섯 가지 기준은 적어도 소설이 만족시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며
따라서 이 요구의 만족도를 판정하는 것이 소설 '심사' 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심사 과정에서 내가 제일 먼저 적용하는 것은 첫번째 기준인 언어 능력이다.
 이 부분에서 응모작이 최소한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지 않다고 판정되는 순간 나는 읽기를 포기한다.
두번째 기준인 소설 만들기의 공학적 기술도 내가 '기본'이라 여기는 부분이다. '공학적' 이란 말은 다소 거슬릴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모든 정교한 구조물의 경우처럼 소설이라는 구조물에도 '만드는 기술' 이 필요하고 이 기술은, 적어도 그게 기술인 한, 에누리 없이 '공학적'이다.
그것은 언어의 변용기술과 함께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소설의 '예술'을 결정한다.
이들 두 가지 기준이 소설쓰기의 장인적 기량을 측정하고 판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밖의 것들--사건 짜기, 인물 창조, 주제 등의 기준은 세부적이고 장인적인 기량 이상의 능력, 다시 말해 이야기를 '소설'로, 이야기꾼을 '작가'로 당당히 격상시키는 데 필요한 능력들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감히 저 긴 문장을 짧게 요약하자면
'그럴듯함'이 아닐까 싶어요.

소설은 논문이 아니니까 논리가 아닌, 문장을 읽는 동안 독자를 납득하고 설득시키는
'그럴듯함'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황당한 전개들(하늘을 날거나, 지구가 파괴되어 우주선을 타고 도망가거나, 물리법칙하곤 아무 관련없는 동력엔진을 가진 우주선이 나오거나)이 등장하지만, 문장과 문장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저자에게 설득당하고 맙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거나 전체적인 구성이 말도 안되고 억지스러워도
읽는 과정이 설득력이 있고 그럴듯하면, 그것이 좋은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어서씁니다.


아래 사유님이 임장감이라고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책에서
김훈이 관련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어의 음악성, 이것은 참 많은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칼의 노래>를 쓸 때, 국악의 박자로 친다면 휘몰이나 자진모리 문장으로 쓰려고 했어요. 이것은 매우 빠르게 급박하게 몰아가는 박자입니다. 우리 국악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박자죠. 그런데 휘몰이 문장이라는 것은 아주 거칠고 사나워요. 나는 이런 문장을 몇 개를 쓰면 기진맥진해버리죠. 그런데 <칼의 노래> 후반부를 보면 내 문장이 휘몰이도 안 되고 자진모리도 안 되고 중모리쯤으로 물러앉아 있어요. 나는 알았어요. 아, 내 문장이 중모리로 내려앉는구나. 그런데 도리가 없었어요. 기력이 이미 다했으니까. 그래서 중모리로 끝났죠.

하루키는 한 에세이에서 나온이야기인데,
미국의 어느작가와 만났을 때 그의 소설에서 음악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하자
그 미국작가는 실제로 음악을 작곡한다고 상상하면서(그러나 그 작가는 악기를 다를줄 모름) 쓴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하루키 자신도 소설을 쓸때 리듬감을 잃지않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그 일환으로 동일한 음악시디를 들으면서 작업을 한다고도 합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최근 소설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적어도 읽는 동안의 흡입력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작가가 내용을 통제한 소설과 그러는데 실패한 소설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소설이란 단연 폭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란 소설을 때려눕혀 멋대로 주무르든가 아니면 짓밟히는 것밖에 없다고. 거기엔 융화나 협조의 정신은 없다. 백이냐 흑이냐 지느냐 이기느냐 밖에 없다."
하루키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그는 소설을 쓸때 우연성에 몸을 내맡기는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보니까
일부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도 그게 대체 무슨 소설인지 모르고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그대로 하루키는 적어도 소설의 그럴듯함이나 리듬감에 대한 통제력은 잃지 않아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철학자 러셀은 

여러 에세이에서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중 하나 기억이 나는 건
논리를 전개하고, 비유로 설득력을 얻고, 전체적인 리듬감을 살리라는 내용이라고 기억합니다.

며칠전 부터 게시판에 등장하는 있는 

커트 보네거트도 글쓰기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을 했었습니다.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에세이에서는
손수 그린 그래프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소설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중 하나는 '구덩이에 빠진 남자'처럼 불행에 처한 남자가
온갖 역경을 딛고,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비유를 들면서
신데델라도 비슷한 카테고리에 넣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계속해서 쓰고싶지만, 취침시간이 다가와서 나중에 내키면 추가하겠습니다;
끝으로
커트보네거트-좋은 단편을 쓰기 위한 여덟가지 팁 .


1. 남이 내 글을 읽게 하는 것은 남의 시간을 가져다 쓰는 셈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야 한다.  Use the time of a total stranger in such a way that he or she will not feel the time was wasted.

    

2. 독자로 하여금 최소한 캐릭터들 중 한명은 나와 연관이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Give the reader at least one character he or she can root for. 



3. 모든 캐릭터는 무엇이든 욕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심지어 물 한잔이라도 말이다.

Every character should want something, even if it is only a glass of water. 


4. 모든 문장은 다음 두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한다. 캐릭터의 어떤 면을 드러내는 것이든, 사건의 진행을 발전시키는 것이든.    Every sentence must do one of two things -- reveal character or advance the action.* 


5. 시작부분은 당장이라도 끝날 것처럼 써라.

Start as close to the end as possible. 


6. 새디스트가 되어라. 당신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사랑스럽다 하더라도 온갖 가혹한 일들이 그들에게 벌어지게 해야 한다. 독자들이 대체 그 주인공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Be a sadist. No matter how sweet and innocent your leading characters, make awful things happen to them -- in order that the reader may see what they are made of. 



7.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쓰듯 써라. 만약 당신이 창을 열고 온 세상을 향해 사랑을 보내기 시작하면, 당신의 스토리는 폐렴에 걸려 버린다.   Write to please just one person. If you open a window and make love to the world, so to speak, your story will get pneumonia. 



8. 최대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줘라. 서스펜스 따위는 내다 버려도 좋다. 독자들은 혹시 만약 바퀴벌레들이 마지막 몇 페이지를 갉아먹어 버렸다고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 그 이야기의 결말을 맺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이해를 해야 한다. 

Give your readers as much information as possible as soon as possible. To heck with suspense. Readers should have such complete understanding of what is going on, where and why, that they could finish the story themselves, should cockroaches eat the last few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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