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문에서 명절을 맞아 기사를 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친인척간에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특히 막 결혼한 경우 시집(처가)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점에 착안한 기사 같았어요. 복잡한 경우는 생략하고 대체로 뻔한 경우만 알려주긴 했습니다만, 의미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잘 모르니까요. 요즘같이 친인척간에 왕래가 잘 없을 때는 심지어 어릴 때부터 자주 봐왔던 친척임에도 "친척"이라고만 생각하지 정확히 무슨 관계이고 몇 촌간인지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잘 보면 여자가 시집 식구를 부를 때 명칭들은 아주버님, 도련님, 서방님, 형님 등등으로 나이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대체로 '님'이 붙습니다. 근데 남자가 처가 식구를 부를 때는 처제, 처형, 처남 등으로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르는 명칭에도 '님'이 안붙어있지요. 뭐 어원상 존칭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언뜻 보기에 많이 기울어져 있는 건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런 불만도 여기 저기서 많이 보이고요. 결혼한 후 시댁과의 불화를 상담하는 인터넷 글에는 "남자들은 우리 집 '처가'라고 하지 않냐. 우리부터 '시댁'이라고 높여 부르면 안된다. '시집' 이라고 맞춰 부르자."는 댓글이 달리기도 합니다.


 

우리 헌법은 남녀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명시하면서도,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역시 중요한 국가의 역할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동성동본 금혼제, 호주제 등에 대해 위헌 시비가 붙었을 때 늘 시끄러웠지요. 남녀평등이라는 가치로만 보면 살아남을 가치가 전혀 없는 제도들입니다. 하지만 전통문화라는 이유로 살아남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늘 있었고요. 문제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라는 것들이 대게 심각한 남녀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남녀평등이라는 가치를 냉정하게 들이대면 살아남을 수 있는 게 단 하나라도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니까요. 예전에 듀나님은 한 칼럼에서 동성동본 금혼을 두고 지렁이 수준의 아이큐와 인권개념만 있어도 5분이면 해결할 문제라고 했는데,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문을 보면 당시 합헌을 주장한 재판관들도 지렁이보다 인권개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는 논리로만 잴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고민했음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 재판관들은 해당 결정이 전통문화를 논리를 무기로 깨는 것이 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더 고민했을 것 같네요.

 

뭐 세월이 흐르고, 현재 대세는 남녀평등이라는 가치가 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저항이 있었지만, 심각한 남녀 불평등을 야기했던 사회적 제도, 관습 등이 하나 하나 깨져나가고 있습니다. 문득 제 다음 세대의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게 된 명절이었습니다.

 

네. 사실 긴 연휴를 보내고 출근 하려고 하니 우울해서 잠이 안온 관계로 뒤척거리며 해 본 생각이었습니다. ㅠㅠ 연휴 후유증 잘 극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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