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1 09:55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도입된 지는 한 10년 된 것 같네요. 처음 도입될 때는 실질적으로 별 거 아니라는 비판도 많았는데, 막상 없애려고 하니 큰 반발을 부를 정도로 이젠 익숙한 제도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자영업자들이 카드 결제를 많이 받아주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예전엔 소비자가 굳이 카드를 쓰겠다고 할 이유가 별로 없었는데, 이젠 세금 공제 혜택이라는 당근이 있으니 자영업자 입장에서도 카드 안받겠다고 할 근거가 미약해진거죠. 뭐 물론 '현금으로 하시면 깎아드릴게요' 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긴 합니다만.
하여간,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올해로 일몰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난리가 났네요. 기사 헤드라인에는 "직장인 40% 세금 더 낸다"고 떴는데, 이걸 보고 일부에서는 세액이 40% 증가한다는 말인줄 알고 대흥분해서 난리난리를 쳤습니다. 그럴리가 있나요.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사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렇게 강력한 절세 수단이 아닙니다(근데 기사를 읽진 않았는데, 저 말은 직장인들 중에 카드소득공제를 1원이라도 적용받는 사람이 40%밖에 안된다는 뜻이겠지요?). 정말 돈을 절약하고 싶다면 카드 열심히 긁어서 세금 아낄 생각 말고 그냥 카드 자르고 돈 안쓰는 게 맞지요. 마침 비슷한 시기에 무상급식 논란이 이어지고 있어서 한 신문에서는 "이건희 손자에게도 무상급식 해줘야 하는 이유" 라는 기사를 냈는데, 이걸 보고서 "공짜 좋아하지 마라. 이거 다 10배로 돌아오는 세금폭탄이다. 이건희 손자에게 무상급식이 왜 필요한데? 기자가 생각이 없구만" 이라고 씹는 글도 봤습니다. 보면서 "이건희 집에 불 나도 소방서에서 불 꺼줘야 하는 이유" 라는 기사였어도 같은 반응이었을지 궁금하더군요.
하여간에, 마침 연말정산 시즌이라 정산을 마치고 제가 최종적으로 내게 된 세금을 산출해 보았습니다. 좀 놀랐어요. 세전 소득 대비 세금 비율이 예상보다 아주 적었습니다. 보통 직장인들이 10% 대의 한계세율 구간에서 세금을 내는데, 최종적인 세율은 그것보다도 낮더군요. 각종 공제가 들어갔으니까요. 각종 복지 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온 입장인지라, 이 결과를 보고나니 증세 논의를 피하는 건 정말 비겁하다 싶더군요. 복지에 대한 눈높이를 높이려면, 적어도 저도 지금보다는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저에게서 세금을 더 받아가는 세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전 좀 열받을 겁니다. 절대적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되어서가 아니라, 상대적인 조세 부담율이 높아지는 게 열받을 것 같아요. 저에게서 1% 세율을 더 받아가려면, 재산이 많거나 사치품을 소비하는 계층에게서는 훨씬 많은 세금을 뜯어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해당 세법 개정안에는 자영업자들, 소득은 별로 없지만 재산은 겁내 많은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왕창 뜯는 내용은 분명 없을겁니다. 한 때 농담삼아 "서울역에 있는 수많은 노숙자들에게 일당 주고, 병의원, 변호사 등 전문직종 사무소 경리 부서에 근무시키면서 매출 떼먹지 않는지 감시하게 하면 일당 지출보다 훨씬 많은 징세효과가 있을 것" 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런 과격한 수단은 아니더라도 수십년간 "봉" "유리지갑" 이라고 불리워온 월급쟁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조치를 깔아준다는 전제로, 증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지금처럼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적이 없는데, 정치권이 다른 이슈에 집중하느라 이걸 놔버리기 전에 힘들게 찾아온 기회를 잡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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