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심하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소모품인 나하나쯤 없어져도 또 다른 소모품으로 채울 수 있기에 퇴사 과정을 간단히 생각했었는데,

제 직군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소모품으로 채울 수 없는 규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좀 더 소모시킬 때까지 회사를 생각해서 남아야한다고 직속상관이 이야기합니다. 폐를 끼치면서까지 회사를 그만둬야겠냐고요. 그나마 다행인건 더 윗사람은 회사를 위해 개인이 희생할 수 없으니, 잘 생각해보라고는 말 정도고요.

 

거창하게 퇴사 이유를 보고했지만 사실 이유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 자잘한 많은 일들을 시행했으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중삼중 안전망 따위는 없는 거지만 시행되지 않았던 자잘한 일들을 하게 되면 풀칠 정도는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그만두려고 한건데요.

물론 좀 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늦은 나이에 신입으로 입사할 수 있을거라는 장담은 누구도 할 수 없지만, 업계에 있는 선배들조차 어렵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안되는 일이 아니기에 조금씩 노크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문이 열리겠지, 열리지 않는다고 해도 후회는 안되겠지, 하는 확신이 들어서요. 좀 더 수월하게 열리기 위해 이것저것 배우기도 할테고요.

 

그런데 이 퇴사과정에서 오가는 말이 참 괴롭습니다. 제 자신이 내세울 게 많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걸 나열하면서 아니 그걸 무기로 인신공격을 하며 퇴사처리가 아닌 협박을 들어야하는 게. 물론 강행하면 퇴사 처리는 될 것입니다. 다만 상처주고 입히는 과정이 포함되겠죠. 여러차례 대화를 통해 퇴사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지 말씀드렸는데도, 이런 대화를 몇 번 더 해야하다니. 이런 신경전이 생략할 수는 없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 기간동안 제 인생이 너무 벅차게 느껴서,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끊었습니다. 작게는 당선거기간이라 투표를 독려하는 문자나 전화에도 시큰둥했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지금 내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이유로 외면했고, 인간관계에서 해야할 배려도-사소하게 대화를 오고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무심했습니다. 고작 퇴사를 결정한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서, 나 자신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데, 세상의 이기심이나 무심함은 당연한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김진숙씨가 쓴 추도사에서 그런 부분이 나왔죠. 정규직이라고 해도 자기 먹고 살 일도 빠듯한데 비정규직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겠느냐, 그들의 비협조를 탓할 수 없다, 그런 내용이였습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정 안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렇게 저는 타인을 위해서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게 되었는데, 생활이 걸려있고 목숨이 걸려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겠죠. 당장 생활이 안정되어있어도 미래까지 보장되지 않으니 마찬가지일테구요. 

 

세상이 이렇게 강팍해져가는 게 세대공감, 계급공감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은 여유없음에 비롯되는 걸테구요. 불안한 세상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안아주는 게 참 어렵죠. 그걸 체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최소화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큰 용기가 필요한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 많이 부끄럽습니다. 열흘넘게 너무 징징된 것이요. 그리고 앞으로 더 얼마나 이기적으로 굴며 그걸 정당화 시킬까 두렵기도 합니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이,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인 기반을 닦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듀게에 글을 쓸 때는 불안노동에서 벗어난 직장을 잡고 좀 더 상냥한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올 한 해도 어김없이 꿈꿀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30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85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005
106720 프레지던트 시즌2가 나온다는데... [3] 달빛처럼 2011.02.17 2011
106719 피리부는 사나이 비버 [1] 가끔영화 2011.02.17 1779
106718 아이유 애니콜 광고(+신곡 뮤비) [9] 감동 2011.02.17 2197
106717 [잡설] 생각지도 못했던 전세대란 경험... [21] 엘케인 2011.02.17 3776
106716 만년필 질문 + 좋은 글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요. [11] 첼로소리 2011.02.17 3141
106715 사랑과 계급 [18] soboo 2011.02.17 3591
106714 딸기 타르트 추천 부탁드려요. [17] 서양배 2011.02.17 3408
106713 [라디오] 홍은희의 음악동네에 문근영 나올 예정입니다 [9] 반짝반짝 2011.02.17 1753
106712 신한은행 어플, 탈옥 아이패드는 냉정하네요. 순정이 아니고서는... ㅠㅜ [11] 무비스타 2011.02.17 4083
106711 싱숭생숭하고 어질어질한 나날, 공공장소 애정행각 타도!(로 제목수정.) [5] 러브귤 2011.02.17 2124
» 이런저런 사사로운 이야기. [3] 난데없이낙타를 2011.02.17 1358
106709 오늘 중국 구글 로고 참 이쁘네요!!! [5] soboo 2011.02.17 3212
106708 듀9)포장이사 해 보신 적 있나요? [17] V=B 2011.02.17 2267
106707 속- 괴이한 초콜렛: 망가진 (고치는) 초콜렛 [7] Q 2011.02.17 2778
106706 [듀나무숲] 상사의 기억력과 거짓말 [12] 가라 2011.02.17 2468
106705 소시 소말;LED TV버전 MV [5] 메피스토 2011.02.17 1650
106704 죽도록 피곤한데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 좋은 노하우가 있나요? [7] langray 2011.02.17 2224
106703 127시간 [1] 감자쥬스 2011.02.17 1564
106702 듀나님 <블랙스완> 트위터 리뷰 올라왔네요. [6] fan 2011.02.17 3387
106701 (바낭성 주절거림)과연..카라 3인은.. [5] 라인하르트백작 2011.02.17 190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