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7 16:32
퇴사를 결심하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소모품인 나하나쯤 없어져도 또 다른 소모품으로 채울 수 있기에 퇴사 과정을 간단히 생각했었는데,
제 직군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소모품으로 채울 수 없는 규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좀 더 소모시킬 때까지 회사를 생각해서 남아야한다고 직속상관이 이야기합니다. 폐를 끼치면서까지 회사를 그만둬야겠냐고요. 그나마 다행인건 더 윗사람은 회사를 위해 개인이 희생할 수 없으니, 잘 생각해보라고는 말 정도고요.
거창하게 퇴사 이유를 보고했지만 사실 이유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 자잘한 많은 일들을 시행했으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중삼중 안전망 따위는 없는 거지만 시행되지 않았던 자잘한 일들을 하게 되면 풀칠 정도는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그만두려고 한건데요.
물론 좀 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늦은 나이에 신입으로 입사할 수 있을거라는 장담은 누구도 할 수 없지만, 업계에 있는 선배들조차 어렵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안되는 일이 아니기에 조금씩 노크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문이 열리겠지, 열리지 않는다고 해도 후회는 안되겠지, 하는 확신이 들어서요. 좀 더 수월하게 열리기 위해 이것저것 배우기도 할테고요.
그런데 이 퇴사과정에서 오가는 말이 참 괴롭습니다. 제 자신이 내세울 게 많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걸 나열하면서 아니 그걸 무기로 인신공격을 하며 퇴사처리가 아닌 협박을 들어야하는 게. 물론 강행하면 퇴사 처리는 될 것입니다. 다만 상처주고 입히는 과정이 포함되겠죠. 여러차례 대화를 통해 퇴사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지 말씀드렸는데도, 이런 대화를 몇 번 더 해야하다니. 이런 신경전이 생략할 수는 없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 기간동안 제 인생이 너무 벅차게 느껴서,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끊었습니다. 작게는 당선거기간이라 투표를 독려하는 문자나 전화에도 시큰둥했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지금 내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이유로 외면했고, 인간관계에서 해야할 배려도-사소하게 대화를 오고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무심했습니다. 고작 퇴사를 결정한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서, 나 자신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데, 세상의 이기심이나 무심함은 당연한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김진숙씨가 쓴 추도사에서 그런 부분이 나왔죠. 정규직이라고 해도 자기 먹고 살 일도 빠듯한데 비정규직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겠느냐, 그들의 비협조를 탓할 수 없다, 그런 내용이였습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정 안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렇게 저는 타인을 위해서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게 되었는데, 생활이 걸려있고 목숨이 걸려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겠죠. 당장 생활이 안정되어있어도 미래까지 보장되지 않으니 마찬가지일테구요.
세상이 이렇게 강팍해져가는 게 세대공감, 계급공감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은 여유없음에 비롯되는 걸테구요. 불안한 세상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안아주는 게 참 어렵죠. 그걸 체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최소화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큰 용기가 필요한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 많이 부끄럽습니다. 열흘넘게 너무 징징된 것이요. 그리고 앞으로 더 얼마나 이기적으로 굴며 그걸 정당화 시킬까 두렵기도 합니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이,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인 기반을 닦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듀게에 글을 쓸 때는 불안노동에서 벗어난 직장을 잡고 좀 더 상냥한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올 한 해도 어김없이 꿈꿀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그만큼 난데없이낙타를 님께서 그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였다는 이야기일꺼에요. 그래서 협박도 해보고 얼러도보고 하는거구요.
꿈을 찾아 떠나신다니 멋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