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0 19:53
일단 여러 분이 지적하신 대로 자기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정체성을 깨닫는 부분은 운명적인 이끌림이라고 납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녀의 어딘가에는 갓난아기 때 기억이 존재하고
그것이 매개가 되어 무의식 중에 벽화로 나타났던 거지요.
따라서 자기의 생일날 불빛에 이끌려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호기심에 의한 사춘기적 가출이라기 보다는 역시 무의식적 잠재력에 기반한
불가해한 확신에 의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확신은, 이 시리즈물의 특성에 기반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 라푼젤은 디즈니의 공주예요. 착하고, 영리하고, 용감하고.
고델의 음험함 따위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반응이 정직하고, 모험심이 강한 공주죠.
무엇보다도 라푼젤은 아까도 말했지만 운명의 이끌림이 그녀를 이끌어 주기 때문에, 고델의 거짓말 따위가 계속 그녀를 속일 순 없어요.
그녀가 공주라는 사실은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불변의 진리니까요.
고델의 거짓말만 듣고 자란 라푼젤이 처음 건달 패거리를 만난 상황에서, 보통 여자애였다면 울거나 말을 잊어버리거나 했겠죠.
하지만 라푼젤처럼 곧 적응하고 되려 플린을 구해내는 모습은,
바깥 세상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찬 사춘기소녀라기 보다는 거의 여왕의 재목이 장성하여 자기 백성들을 구하는 것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다손 치더라도,
바로 고델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모습은 여전히 걸립니다.
이 모녀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텐데요? 라푼젤이 처음 가출했을 때 정서적으로 불안해 했던 것이 단순히 두려움에서였던가요?
관객들은 고델이 라푼젤로 하여금 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한 말이 (본래의 이유가 아닌)거짓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푼젤은 거기에 철저히 속죠. 그래서 플린과 만나 그토록 염원하던 등불을 찾아 가면서도 어머니를 속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다시 말하면 공주로서의 운명적인 이끌림과 고델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공주임을 자각한 이후 라푼젤은 고델을 지독한 악질처럼 대하는데,
지금까지의 라푼젤의 정직한 반응을 볼 때 이것은 평소부터 눈치채고 있던 건 아닙니다.
영유아기 이후 쭉 자기를 길러준 유일한 사람인 고델과 라푼젤이 대립관계였다는 건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죠.
대립관계라기 보단 종속관계에 가까운데, 가출을 분깃점으로 그 관계를 깨버리게 되고, 그 계기는 자신의 공주로서의 자각입니다.
따라서 총명한 공주는 자기의 정체성과 함께 고델이 자기를 유괴했다는 사실을 연역해낸 것입니다.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죠.
몇몇 분이 키워준 정을 언급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도 라푼젤의 고델과의 친밀감과 연역해낸 사실 사이의 내적 갈등이 시각화되지는 않았어요.
내적 갈등의 해소가 주는 쾌감을 단계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 시리즈물의 특성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죽도 밥도 안 되었을 겁니다.
대신, 플린이라는 변수를 이용해서, 라푼젤로 하여금 자신이 직접 선택한 사랑을 빼앗으려는 고델을 대적해
승리를 쟁취하는 구도를 만든 겁니다.
PS. 전 고델이 집착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정신병자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마법을 못 쓰니까 마녀는 아니겠죠.(칼질을 하긴 하지만_)
도입부에 플린 나레이션에서 마더 고델을 마녀 고델로 번역하는 바람에 헷갈렸어요.
물론 그녀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마녀 맞기는 합니다만.. 으쓱.
그래도 원래 나쁜 사람 같지는 않고 정신병자라면 웬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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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0 22:52
모자관계라니요... 라푼젤이 사내아이였던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