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하는 일 + 영시추천

2011.03.10 20:26

미루나무 조회 수:20458

잠들기 전에 보통 뭘 하시나요?


1. 전 어릴 때는 밤에 불 끄는 게 진짜 무서웠어요. 몬스터 주식회사에 나오는 것처럼 벽장문 열면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기분 있잖아요.


집에 벽장 따윈 없었지만 그걸 아주 강렬하게 느꼈어요. 지금은 대체 왜 그랬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아무튼 밤에 잠드는 게 무서웠죠.


뭘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강렬한 공포감 때문에 잠들기가 두려웠던 건 간혹 기억이 납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회고집인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에 보면 어린 시절, 아직 블라디미르로 불리던 어린 도르프만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부분을 읽고선


나만 그랬던 게 아니군 하고 은근히 안심했었어요.



2. 그런데 나이가 조금 더 드니까 잠들기 전에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좋아지더군요.


양이나 질면에서 모두 빨강머리 앤에 뒤지지 않을 엄청난 공상을 했죠. 빨강머리 앤 중에 다이애나네 할머니를 웃겼던 앤의 소설 있죠, 딱 그런 수준의 공상이었죠.


근데 그런 짓은 사실은 지금도 좀 합니다. 10년 넘게 머릿속에서 그런 로맨스나 환타지를 만들고 있으면 그게 자동이 되더라구요. 


어린 시절부터 워낙 공상쟁이여서 길을 걸으면서도 보도블록에서 같은 색부분만 밟아야지 다른 색을 밟으면 죽는 거야 하는 상상을 할 정도여서 로맨스 영화 한편이야 금새 뚝딱 나옵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 학교에 갇혀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공상을 하도 많이 했더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순간부터 제 머리속에는 다른 영화의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거죠- 습관이 들어서 아무것도 생각할 거리가 없는 상태를 못 견디게 되었어요.



3. 그런데 공상할 에너지가 넘치는 10대때는 이 상태로 사는 것도 나름 재밌었지만 습관적으로 공상을 하면 집중력엔 참 안 좋은 것 같아요.


라식수술할 때 의사가 딴생각하면 동공이 위로 올라가서 안 된다고 절대로 딴생각하지 말고 집중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 버릇을 못 고치고 나도 모르게 다른 데로 생각이 흘러가서 엄청 야단 맞은 이후로 이거 좀 어떻게 해야 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런 공상도 에너지원에 해당하는 공상거리가 꾸준하게 공급되어줘야 재밌는데 소설도 잘 안 읽고 영화도 안 읽고 하니 재밌는 생각도 안 나고 그렇다고 자기 전에 현실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가슴만 답답해지고 편하질 않아서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냈죠.



4.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성경책을 자기 전에 서너구절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지금까지 문체가 따분하고 안 읽힌다고 다 읽은 적이 한번도 없어서요.


자기 전 조금씩 읽어서 신약을 떼고 교양인이 되자!, 더불어 잠도 편하게!'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죠.


거기다 예전에 누가 성경공부 하자고 선물해준 성경책을 책만 받고 튄 전력이 있어서^^;;; 집에서 굴러다니는 국역본도 있고. 친절한 듀게분이 보내준 일본어 성경도 있고.


신약을 제대로 다 읽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밌더군요. 예수의 팬이 되었어요.


그런데 읽기를 관둔 건.









이런 이유는 아니지만...



신약의 슈퍼스타 예수가 죽고 나니 나머지는 별로 안 읽고 싶어져서. ㅠ_ㅠ


실은 밤에 죽는 장면 읽으면서 울었거든요. ㅠ   맘편하게 자려고 책 읽는데 눈물이 웬일이야......


주인공이 죽는 건 너무 치명적인 일이야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종교경전이니 마음이 편해지겠지 했는데 -성경전에는 에크낫 이스워런의 '죽음이 삶에게 보내는 편지'를 잠깐 읽었는데


이 책은 별로 어렵지도 않건만 너무 맘편하게 만드는지 늘 한바닥도 못 읽고 잠들어버려서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 그만뒀어요-


성경의 선정성을 너무 얕보았던 듯.ㅠ


그래서 신약은 버리기로 했는데 구약은 그냥 비호감이라 뭔가 다른 걸 해야 겠다 싶었어요.



5.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듀게에서 loving_rabbit님이 올리신 영시를 보면 이거다! 했습니다.


전 원래 외우기를 좋아해서 -초등학교에 시조암송대회라는 희한한 대회에 출전하려고 시조 100편을 외운 적도 있어요, 대회에선 80개밖에 못 써서 떨어졌어요.


1등은 100개 썼다던가-  영시를 외우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자기 전에 계속 외운 시를 머리속으로 중얼거리면 잡생각도 안 나고 좋겠다 싶기도 하고.


한국어시를 외워도 되겠지만 한국어시를 외우면 내용 생각을 너무 열심히 하고 정서가 직접적으로 와 닿아서 시내용에 너무 감동하면 큰일이다 싶어서요.


영어로 말하는 건 안 되도 외우는 거야 쉽겠다 했죠.


그래서 loving_rabbit님이 올려주신 앤 섹스턴의 시도 외우고 이 기회에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도 외우고 롱펠로우의 loss & gain도 외우고


윌리엄 스태포드의 the way it is도 외우고 사라 티즈데일의 let it be forgetten도 외우고....


그리고 이제 생각나는 영시가 없어요. ㅠ_ㅠ


애너벨 리는 너무 길고 내용이 슬퍼서 외우고 싶지 않아요. ㅠ_ㅠ 


loving_rabbit님의 영시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노래가사를 올리주시고. 배신이십니다. ㅠ_ㅠ


아무튼 그래서 너무 길지 않고 잔잔한 내용의 영시 추천 좀 부탁드려요.


네이버에서 검색했더니 이것저것 나오긴 하는데 가끔 오타가 있던데 알기가 어려워서요. 이왕이면 시선집 같은 걸로 추천 좀 해주세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7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2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541
52 인생은 박지원처럼 [1] 타락씨 2020.07.04 776
51 여름 노래 calmaria 2012.07.08 940
50 140자 소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재밌네요ㅎ 국사무쌍13면팅 2013.05.23 1043
49 독도 가치 74억, 4대강 52조? ExtremE 2012.08.29 1112
48 요즘 롯데 타선(롯데팬의 찬양글) [5] chobo 2011.08.26 1330
47 [아이돌바낭] 스피카 - 이 분들 왠지 관심이 가네요 [3] 로이배티 2012.02.13 1340
46 (듀숲) 고객을 위한 데이터 오류 정정따윈 절대로 안한다는 농협 [1] 엘시아 2013.06.05 1573
45 평범한 남성향 90년대 애니 팬이 피해가기 힘든 성우 - 하야시바라 메구미 [5] catgotmy 2011.08.16 1633
44 새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듣습니다. 지칠까봐? 아니 잊을까봐서요. [3] 지붕위의별 2013.01.01 1712
43 잊혀지지 않는 문장들. 아비게일 2011.03.07 1714
42 문대성 사례 보다가 걱정되는 것 - 제발 국익 운운까지는 진도 나가지 말길 [6] DH 2012.03.29 1840
41 TV 감상문 [2] 아.도.나이 2010.09.06 1920
40 홍수 난 나라 [3] 가끔영화 2011.11.07 1980
39 (바이트낭비)여름이 한 두달 더 있으면 좋겠군요 [8] 가끔영화 2010.08.26 2016
38 저... 어떻게 하죠? [3] 클로버 2010.12.11 2058
37 제가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오늘 같은 날씨. [2] chobo 2013.05.28 2154
36 혹시 눈이 상습적으로 충혈되시는 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7] 모노 2010.12.06 2201
35 노키즈 존과 사회 결벽증에 대한 개인적 생각 [6] 쥬디 2014.07.30 2210
34 고구마 안 찌고 물에 끓여도 돼요? [9] Paul. 2011.11.28 2443
33 김신명숙 그래서요 깔깔깔 티비토론 [5] catgotmy 2012.06.04 254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