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다닥 역사야그] 임금님과 지진

2011.03.15 07:17

LH 조회 수:2922


우리나라는 웬지 지진에는 익숙하지 않은 동네이지요.
땅이 흔들린다, 라는 걸 그리 겪어볼 일 없는 오래된 지형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역사서를 잠깐만 뒤져보면 의외로 지진을 많이 겪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편년체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도 지진 기록은 허다하게 있습니다. 물론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도 어디어디에 지진이 났다, 라는 기록들이 있지요.
그런데 이런 기록들을 볼작시면 그 횟수도 많고 장소도 다양해서 지금 우리가 보기엔 "이렇게 지진이 흔했어?"라며 깜짝 놀랄 정도의 수준입니다.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평안도 경기도 돌아가면서 벌어지고, 광범위한 지역에서 한꺼번에 벌어지기도 하지요.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지진이란 '안 일어나는 해가 없는' 그러나 '집이 무너질 정도는 아닌' 천재지변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진이 났다, 라는 기록은 있되 피해 내용은 별로 기록에 없고, 어느 때인가 유별나게 심해서 집의 기와들이 떨어졌다더라, 하는 내용이 특별히 적혀있을 정도로요.

 보통 사람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지진이 대략 진도 3인걸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지진도 결코 작은 정도는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특유의 둔감함을 자랑하는 아래와 같은 분이 있기는 합니다.

"아, 지진 왔다며? 난 미처 몰랐다가 나중에 보고 들어와서 알았네."

왜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지진을 이 분이 몰랐느냐, 하면 마침 그 시간에 책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댑니다. 누구게요? 누구긴 누구여요 조선의 네 번째 임금님이지... 워낙 세종의 개인 특성(?)을 생각하면 그럴법한 일이다 싶습니다만, 그래도 조선의 지진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심한 지진으로 지붕이 떨어지고 병풍이 넘어간다면 그래도 알아차렸겠지요. 하다못해 신하들이 와서 책 읽는 임금님 들고 대피했을테니까요. 아니, 생각하면 지진이 이미 벌어진 시점에서 신하들이 임금님을 안 챙길 리 없는데... 결국 세종은 먼치킨이 틀림없군요. (응?)

그렇다 해도 땅이 흔들리는 일이 결코 사소하고 작은 일일 리 없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고 사람들은 두려워했고, 또 이것이 현실 정치가 잘못된 탓이 아닌가 하고 믿어지기도 했지요. 그래서 정부는 지진이 벌어지면 해괴제(解怪祭)를 치렀고, 신하들은 지진 핑계로 사직서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정치를 잘 못해서 지진이 벌어진 거니까 일 그만하겠소- 라는 건데, 정작 정말로 지진이 이 때문에 벌어진다고 믿은 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중종 때, 자꾸 지진이라던가 가뭄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중종은 자기가 뭘 잘못한 거냐,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고민하면서 승정원에 하소연했는데 이때 돌아온 대답이 대충 이런 뜻이었습니다.

"임금님, 자연재해가 꼭 뭐 잘못해서 벌어지는 건 아님. 'ㅅ' 그래도 평소에 조심조심 해두는 게 좋아요."


흔히들 옛사람들이 미신을 많이 믿었다고 비하하기 십상입니다만, 의외로 뒤져보면 다 알거 알면서 슬슬 넘어가곤 합니다. 결국 지진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거지만 그거 핑계 삼아 착하게 살아요, 라는 거였으니까. 이랬던 지진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영영 일어나지 않을 것 마냥 생소한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하는 광경이 연상됩니다.

요즘 사건사고 때문일까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에서도 쓰나미를 떠올리게 되네요.

이 자리를 빌어 일본의 재해가 더 이상 큰 피해가 없기를, 먼저 떠나가신 분들은 편히 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

일본 지인분의 어머니께서 센다이에 여행가셨었는데, 다행히 무사하시답니다. 직접 연락이 되진 않는다지만.

그리고 방금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지인이 도쿄만에서 지진이 또 벌어졌다고 적었네요. 더 큰 지진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그렇게 큰 도시인 도쿄에서 슬슬 생필품이 바닥이 날 지경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피해지인 센다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일본 지인분께서 메일 가장 마지막 줄에 "무서워요"라고 적었던 게 계속 떠오릅니다. 그 집에는 이제 겨우 돌 조금 넘은 아기가 있어 기저귀도 이유식도 준비하기 어려울텐데 말이지요.

마음이 허하지만 오늘 몸 상태도 그리 안 좋아서, 뭔가 근사한 글을 쓸 여유가 되질 않아 잠깐 사료 뒤져 휘리릭 골라내어 봤습니다.


아, 좀더 쓰고 싶은데 단어가 좋은 것으로 골라지질 않는 군요. 잠시 쉬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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