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의 후보작들은 크게 환경, 전쟁, 정치, 독특한 인물 주제에서 한 해씩 돌아가며 수상하는 것 같습니다. 04년 인도 매춘굴의 아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Born Into Brothels) 이후로 아카데미 수상작 중에서는 교육 부분의 활약이 좀 부진했는데 이번에 수퍼맨을 기다리며(Waiting for Superman)마저 후보 지명을 놓쳤죠.


그동안 환경과 전쟁이슈가 많이 주목을 받았고, 올해에도 그 쪽 소재에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시끌시끌한 미국의 사회상을 다룬 좋은 다큐들도 놓쳐선 안되겠습니다. 

08년 끝이 안보인다 (No End in Sight)나, 09년 모스트 댄저러스 맨 (The Most Dangerous Man in America) 같은 정치 관련 작품이 수상에서 미끄러진 바 있는데요. 이번에 사회정치 관련작이 상을 받을 때가 되긴 했죠. 게다가 이번에 주목받은 이 다큐작품은 근 몇년간의 미국 경제상황을 조리있게 분석해서 더욱 눈이 갔을테고요. 결국 올해 오스카는 인사이드 잡에 돌아갔습니다. 


인사이드 잡은 08년 경제불황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맷데이먼의 차분한 목소리를 통해 전개시키는 다큐멘터리로, 정부의 규제완화와 그로인한 파생상품과 부채의 증가등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교과서적으로 그동안의 경제분석자료와 주요매체들의 지적을 따라가고 있는데요.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장치는 거의 없습니다. 지난해 수상작인 코브(The Cove)가 보여줬던 드라마틱한 시도와 촬영기법도 없고, 그 이전해 수상작인 맨온와이어(Man on Wire)가 보여준 유려한 편집과 재연도 없죠. 그저 치밀한 자료분석과 영상기록, 인터뷰가 영화의 전부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대중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청각 자료라는 느낌도 갖게 되죠. 물론 00년대 미국 다큐멘터리의 특징인 비꼬기와 놀리기, 적절한 배경음악 리퍼런스는 있지요. 큰 줄기가 되는 경제문제에 위배되지 않는 괜찮은 작을 장치들을 중간중간 배치해 분위기를 살립니다.


작은 서민 가정의 아버지가 파산해 잃은 은퇴자금이 어떻게 거대 은행과 투자기업으로 몰리게 되는지가 각계 석학과 경제기구 임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납니다. 영화는 최대한 분노를 삭이면서 하나씩 문제를 제기하지요. 청문회에서 S&P, 모건스탠리 등의 임원들이 더듬더듬거리며 둘러대는 장면과 그들이 누렸던 호화스런 생활상에서 느끼도록 만드는 분노는 물론 관객의 것이고요.   


마지막에 가면서 다른 나라의 예와 글로벌화된 미래에서 나아가야할 지향점 비슷한 걸 제시하는데, 사실 진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건 당장 친기업적 미국 경제제도가 어떻게 제 앞가림을 해야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사기업화된 아이슬란드의 은행이 가져온 경제불황의 일화로 시작된 뒤, 타이틀과 함께 화면에서 등장하는 성조기와 뉴욕 조감은이 이야기가 미국국민들에게 얼마나 유익한 지침서인지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영화 제작을 맡은 찰스 퍼거슨은 정치학 박사학위까지 갖고 있는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이 사람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란 법은 없죠. 채무 불이행시 얻게되는 기업의 배당금과 낮아지는 금리, CDS로 인한 AIG의 붕괴 등등 엔딩 크레딧을 뒤로하고 지인들과 더 이야기할 거리는 넘쳐납니다.


영화가 마냥 착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 공세에 당황하다 불끈 화내는 부시행정부의 경제 자문위원의 모습만 봐도 이 영화가 꽤나 밀어붙였다는 티가 나니까요. 평론가들의 중론처럼 다시 돌려보며 즐길 영화는 절대 아니지만, 한번쯤 집고 넘어가야할 부분을 집고 넘어간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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