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리뷰랄라랄라] 나잇 & 데이

2010.06.16 20:17

DJUNA 조회 수:4327

몇 개월 전부터 전 거의 매주마다 시사회장에서 [나잇 & 데이]의 장황한 예고편을 봐야 했습니다. 볼 때마다 '도대체 20세기 폭스사의 의도가 뭔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 전 정말 이 예고편을 싫어했습니다. 전 예고편이 정직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거짓말을 조금 섞는다고 해도 홍보하는 영화를 기대할만한 뭔가처럼 포장해주길 바라죠. 하지만 [나잇 & 데이]의 예고편은 정반대로 갔습니다. 카메론 디아스가 미치광이 살인자일 수도 있고, 정의의 액션 영웅일 수도 있는 톰 크루즈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만 봐도 제 머릿 속에서는 할리우드 중역들의 대화가 자동재생됩니다. "톰 크루즈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퍼 에이전트로 나오는데, 거기 카메론 디아즈가 말려들거든? 그리고 둘이 전세계를 무대로 액션을 하는 거야. 죽이겠지?" 


그래도 전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예고편이 너무 싫었으니 오히려 본편은 예고편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낙천적인 희망 때문이었죠. 아뇨. 그건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그냥 공짜이고 리뷰를 써야 하니까 간 거죠. 그리고 [나잇 & 데이]는 딱 예고편 같은 영화였습니다. 자신이 돈을 잔뜩 들인 할리우드 기성품임을 뻔뻔스럽게 자랑하는 영화요.


기성품이라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와 어느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성품일까요? 이 영화는 일종의 할리퀸 로맨스 액션물입니다. 액션물이니 남자들도 보러 오겠지만 기본적으로 여성 관객들을 대상으로 잡은 것처럼 보여요. 단 한 번도 자기 나라를 떠나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여자주인공이 톰 크루즈를 닮은 수수께끼의 매력남을 만나서 세계 곳곳을 날아다니며 모험을 한다는 거죠. 톰 크루즈는 미치광이 살인마일 수도 있고(하지만 정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인류를 에너지 위기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는 '재퍼'라는 발명품을 둘러싼 국제적인 음모가 진행되고 있으며,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중요한 건 카메론 디아스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이 겪는 대리만족이죠. 지루한 삶에 로맨스 액션의 자극 한 방울. 


기성품인 건 잘못이 아닙니다. 대부분 장르물들은 기성품으로 만들어졌고 다들 그걸 알죠. 하지만 [나잇 & 데이]에서는 그 사실을 감추려는 노력이 전혀 없습니다. 이게 문제예요.  이 영화에 나오는 액션이나 드라마들 중 뼈대가 되는 이야기에 진지한 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조금 높은 곳에 서서 구닥다리 장르물의 공식을 놀려대는 것도 아니에요. 영화는 자기 나름대로 이 이야기가 의미 있는 척하고 있지만 그냥 실패하고 있는 거죠. 


이러다 보니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노렸던 말초적인 눈요기의 재미도 떨어져 갑니다. 아무리 장르팬들이 관습적인 쾌락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다고 해도, 그들은 극장 안에서 그 이야기에 진지하게 몰입하길 바라거든요. 하지만 척 봐도 눈요기 기계인게 분명한 이런 장면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대단한 자극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요?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진짜 캐릭터보다 유원지 놀이기구에 있는 기계 인형들처럼 보입니다. 이들에겐 자신의 감정이나 동기가 없어요. 모두 말초적인 기능을 위해 사전에 준비된 거죠.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스의 캐스팅도 여기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 다 너무나도 정통적인 할리우드 배우이다 보니 사전준비 되었다는 느낌이 오히려 더 강해져요. 


한 마디로, 이 모든 건 성의의 문제입니다. [나잇 & 데이]의 이야기로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 않아요. 우연히 수퍼 스파이와 만나 모험의 세계에 빠지는 여자 이야기가 그렇게 나쁜 재료인가요? 이 정도면 좋은 히치콕 영화를 하나 뽑을 수도 있지요. [나잇 & 데이]가 장르 조각들을 덕지덕지 이어붙인 프랑켄슈타인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건 그냥 만든 사람들이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뻔한 재료를 넘어서려는 의욕이 없었던 거죠.


기타등등

폴 다노와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잠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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