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4 04:07
잠도 안 오고 해서 책장에 꽂힌 옛날 노트들을 들추어 보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노트를 봤습니다.
당시 국어선생님은 젋으셨고, 갓 결혼한 새신랑이셨고, 열정이 넘치시는 선생님이었어요.
모두들 그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요즘 '반짝반짝 빛나는'이란 드라마에 김석훈씨가 출판사 편집장 역으로 나오는데
그 캐릭터랑 비슷해요. 그 선생님이.
원칙주의자에 가끔 차가워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쓰다 보니 차도남이네요 ㅋㅋ
아무튼 그 선생님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일기장 검사하면서 첨삭 및 감상을 쓰시듯
저희에게 재밌는 과제를 내 주시고 다음 시간에 노트를 걷으셔서 잘못 쓴 맞춤법을 고쳐주시거나
짤막하게 감상을 써 주시거나 하셔서 마치 대화하는 느낌이었어요.
그 때 저는 한창 중2병이었기에 처음 한 두 번의 선생님의 친절하고 재치있는
코멘트엔 더 이상 만족하지 못 하고 뭔가 다른 친구들관 다르게 제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비관적이거나 삐딱한 내용을 쓰기도 하고...뭐 그랬어요.
그 노트를 들춰보니 제가 봐도 참 낯이 화끈한 게...... 제 딴엔 관심받고 싶어서 머리 굴린 건데
어른인, 그것도 성숙한 어른이었던 선생님 눈에 제가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하면
다 지난 일인데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요ㅡㅜ 아,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여....
여기서 끝났으면 다행인 것을...
그 노트 옆에 꽂혀있던 대학 1학년 스무살 때 썼던 일기장은 더 가관이더군요.
내 참 부끄러워서.......
대학에 가서까지도 관심받고 싶은 제 본능은 오히려 선배님들한테 반항하고
싸가지없이 굴고 그러다가 선배들이 돌려돌려 한 소리 하면 그걸 또 섭섭하다고
배신감 든다느니 하며 몇 페이지를 투덜댔더군요.
그 때 제가 선배들께 한 행동과 말들을 생각해보니 입장 바꿔 제가 선배들이었다면
정말 뒷목 잡고 쓰러질 수준의... 정말 관심병자더군요.
너무너무 유치하고 속이 다 뻔히 보이고 애가 참 사랑을 못 받고 자랐나보다, 하며 넘긴 거겠죠. 선배들은.
그 땐 정말 선배들한테 사랑받던 제 친한 동기에 대한 질투도 엄청났더군요.
누가 볼까 무서워 일기장은 다시 책장 구석에 깊게 묻어 두었습니다.
그 때 짝사랑하던 선배가 생각나요.
첫눈에 반했고 많이 좋아했는데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라 오히려 틱틱거렸던
바보같은 내 모습, 이유도 모르고 어이없어 했을 그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잘 살고 있겠죠. 그 분은......
보고 싶네요. (결론이...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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