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4 19:56
저는 조금은 쌈닭 체질이었습니다.
누군가 헛소리한다 싶으면 꼭 비꼬아주거나 면박을 주곤 했고
비합리적인 상황에 대해 꼭 대거리를 해야 속이 시원한 성격이었어요.
또 제 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욕심도 많고, 자기를 드러내길 좋아하는 뭐 그런 성격이었어요.
편이 많은만큼 적도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어요. 저를 "적"으로 둔 사람들에게 전 관심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피곤해지는 일이 싫어져요.
적이 생기는 일도 피곤하고 더러는 무서워요.
사회에 나오니 편보다 적이 많은 것 같고, 적이 아니라고 해도 마음 편히 의지할 타인들은 아니니까.
겉으론 잘 지낸다고 해도 늘 겉도는 것 같아요. 둥둥 떠다니는 섬이 된 기분, 외롭고 팍팍해요.
생존을 위해 쓰는 에너지조차 힘에 부치니까 내 일 아닌 일엔 상관하고 싶지도 않고
더러는 내 일이기도 하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참고 넘어가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원래는 자기주장만큼은 확고하고, 제 색깔을 알리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는데.
이젠 점점 제 존재라는 게 흐릿해지고 때로는 아예 세상에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싸우기 싫으니까 한숨만 쉬게되고, 제 멋대로 타인들을 포기하고 방관하고 미워할 힘도 없으니 무시하기도 하면서요.
어느정도냐면 누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거나,
지금 사람들이 뭘하고 있는지 저한테 무슨 소릴 했는지 관심이 생기질 않아요.
그냥 조금 편해지고 싶다고, 계속 그런 생각들만 해요.
조바심이 나요.
이렇게 계속 흐릿져갈까봐. 빨리 도망치고만 싶어요. 오늘로부터.
내일은 새롭고 건강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 수 없을까? 이런 잡히지 않는 생각들에 몇시간씩 빠져들어요.
편하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건강하게, 세상을 위해 전투적으로 살고 싶었는데.
그냥 지금은 좀 쉬고 싶어요.
지금보다 조금은 유연하고, 조금만 더 탄력적인 곳으로 이직을 할까봐요.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제게 원하는 에너지의 방향이 저의 비전이나 생각과 너무 다르고,
더러는 제 피를 빨린다는 느낌만 들어서 괴로워요.
이 글을 쓰면서도 내일까지 마쳐야 하는 제안서때문에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주말이 벌써 거의 갔네요.
겁에 질려서 옴짝달싹도 못하겠어요.
하소연이 되어버렸네요.
남은 선택지로 갈 수 밖에 없어졌을때입니다. 지금 힘든 상황이 선택의 기로라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오기전에
벗어날 용기를 내던가, 아니면 견뎌내기로 굳게 다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쪽으로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떠나서....힘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