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강의 택시 기사

2010.06.22 11:49

걍태공 조회 수:3497

첫 인상부터 범상치는 않았어요.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타고 인사를 건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거든요. 택시 기사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공간에 머리를 들이밀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운전석을 발로 슬쩍 찼더니 화들짝 일어나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어디로 가느냐 묻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렸어야 해요. 하지만 낮잠을 좀 잤으니 정신을 차렸겠거니 하고 행선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여느때의 버릇처럼 아이팟 터치를 꺼내 RSS 리더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미를 느껴 앞을 쳐다 보았더니, 택시는 사거리에 평화롭게 정차해있었습니다. 파란 불이었는데도 말이죠. 기사는 핸들에 머리를 박고 다시 곤히 잠들어 있더군요. 이번엔 큰소리로 "기사아저씨!"하고 불러 깨웠습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잠들어있는 기사를 두고 그 때 내렸어야 했어요. 사실 약간 갈등하긴 했습니다.


택시는 어느덧 자동차 전용 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부부젤라도 아니고 묘한 배경음이 택시 안을 진동하고 있음을 확신한 것은 강을 건너는 다리 중간에서였습니다. 시속 60킬로미터 정도로 달리는 택시 속에서 기사는 가늘게 코를 골고 있었던 거에요. 등골이 서늘하더군요. 이제는 앞좌석을 인정사정 보지 않고 냅다 걷어찼습니다. "잠은 밤에 자란 말이야!"


이제 RSS 리더는 까맣게 잊고 택시 기사의 뒤통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가지 않아 기사는 헤드뱅잉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기사의 뒷통수를 냅다 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다시 앞좌석을 흔들어서 깨웠습니다. 다행히 목적지에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그 후에도 몇번에나 저 먼나라로 날아가는 기사의 정신을 붙들어주어야 했어요.


거기다 나름 제정신일땐 얼마나 난폭하게 차를 모는지...... 


비오는밤 반대편 차선을 질주하는 택시를 타고 혼비백산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이 그 때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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