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셨죠. 99세요.

 

생전에 누구든 앞에 있는 사람은 무릎 꿇고 덜덜 떨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자신 보다 나은 꼴을 못보셔서 손자 놈들한테도 '니가 대학 나왔다고 나보다 잘난 것 없다'고 기를 팍팍 꺾는 대~~단한 양반이셨네요.

금전적으로 인색하시기도 이를데 없어서, 장손인 제 동생이 '집이 너무 어려우니 등록금 한 번만 도와 달라'고 해도 주머니를 열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아들이 블라블라~~하여 엄마와 제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결국 등록금은 제가;;; 흠흠)

돌아가시기 두어달 전 까지는 재산의 규모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본인이 우위에 서야하니, 항상 호통을 치셨어요. 조용히 하시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을 정도입니다.

명절 지내러 가면 5만원 주시고는 엄마가 음식하고 제수 거리 장만하면 당신이 돈 다 내신거라고 번번이 생색을 내며 호통을 치셨죠.

사과가 작다, 고기가 질기다 등등; (물가를 모르시는 게 아닌데, 가장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호통 치는 방법을 하셨달까요;;)

 

소도시에 오래 사신데다 워낙 장수하셨고, 성품 때문에 지인들 조차 거의 없는지라... 가족들만 모인 장례식장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정말 덕 없이 살면 남는거 없어요.

 

할머니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물 샐틈 없는 할아버지의 관리 때문에, 돌아가시는 날 까지 빨래비누 한 장, 드시고 픈 것 하나 맘대로 사질 못하셨죠.

말년에는 관절 때문에 고생하신지라 수년을 집 안에서만 지내셨어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이 갇혀있다시피 한 시간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엄마께 그러셨데요. 내가 니 나이면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하나 사서 정처 없이 맘대로 차를 몰고 돌아다니고 싶다고.

(술자리에서 접신-?!-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옆에서 할머니가 저한테 그러신다데요. 내가 진짜 갖고 싶은 걸 너는 갖고 있다고. 부럽다고. 그게 운전면허와 차 였던가... 믿거나 말거나;;)

참 미인이셨는데... 그 시절 할머님들은 대부분 그러시긴 했지만, 여자로서의 삶을 생각하면 참 안쓰럽죠.

 

어제 뉴스를 보고 폭소할 뻔한 게...

 

할머니가 돌아가시 던 날 911테러 사건이 있었어요. 병원 기둥에 기대어 뉴스를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빈라덴이 사살됐군요.

 

할아버지 Win. 짜응!

끝까지 참 대단하신 양반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6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2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523
101321 말씀하신 한달이 지났는데... 아직 안오시는 그 분을 기다리는 건 저뿐인가요? [5] at the most 2011.05.03 3086
101320 (어린시절)윤소정씨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던 한국영화 [7] 黑男 2011.05.03 1884
101319 밤이라서 하는 남자의 바람 얘기 [41] 푸른새벽 2011.05.03 9531
101318 후원할 만한 동물 보호 단체 고양이 꼬리 2011.05.03 1041
101317 회사 화단에 떨어진 새끼고양이. [2] Paul. 2011.05.03 2189
101316 쿡TV vs Btv의 속도, 아이패드2 vs 스쿠터, 스트레스성 과식. 가라 2011.05.03 1838
101315 아 찝찝해요.. [5] 라스티냐크 2011.05.03 1649
» 할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6] sweet-amnesia 2011.05.03 1925
101313 실론티 광고 [5] 메피스토 2011.05.03 1816
101312 AA모임 같은, 익명의 우울중독자들의 모임. [1] 고양이 꼬리 2011.05.03 2370
101311 소니 PSN 해킹건도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 [6] chobo 2011.05.03 1501
101310 컴터문제가 생겨서요...질문좀 언두 2011.05.03 830
101309 [펌] 사무실 신입 그 후일담 [7] 01410 2011.05.03 3469
101308 원작 여러가지... 택시드라이버, 모리스 [4] 무비스타 2011.05.03 1667
101307 sk 야구를 어떻게 보세요 [17] 감동 2011.05.03 2217
101306 누구 같아 보이나요(혐짤 포함) [6] 가끔영화 2011.05.03 3030
101305 농협에 관한 어떤 글 [6] 싱클레어. 2011.05.03 2164
101304 80년대 임재범 [1] 저숲 2011.05.03 2306
101303 주한 미 대사관의 역대 대통령 평가 [5] 꼼데가르송 2011.05.03 2459
101302 [듀나인] 휴양지에서 읽을만한 책 추천 부탁드려요 [4] 뱅뱅사거리 2011.05.03 164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