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오고 첫 글입니다, 불편하고, 익숙한 기분이 반반이네요, 변한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꼭 듀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변화'라는 것은 어떤 것의 성질이 상전벽해한다기 보다는 그런 다양성들이 위치를 조금만 바꾸면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엠페도클레스가 세상을 이루는 근본 원리를 4원소들의 결합과 분리로 봤던 것처럼요,

 

- '표현'의 문제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5.16을 앞두고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재밌습니다, 김종필의 여러 보수 매체에서의 인터뷰가 시선을 잡아 끌더군요, 요지는 '5.16은 구국의 혁명이야, 이 자식들아' ...뭐 이 노인네가 뭐라고 하건 이미 제 관심사 밖이지만, 5.16의 성격에 대한 도발적 주장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듯 싶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당연하게 가지고 있던 개념들이 뒤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을 보아온 우리는 이런 망언도 이제 웃고 넘어갈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죠, 슬픈 일이지만,

 

- 김종필 주장의 핵심이자 이겁니다,  "쿠데타는 같은 계층에 있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는거고 레볼루션(혁명)은 민심을 기초로 아래서 일어나 권력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레볼루션", ...아하, 그렇군! 4.19 직후의 민심은 군사독재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이 양반이 논하는 혁명과 쿠데타는 과연 그런 것인가요? 제 의문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 조금 오래된 사전을 꺼내들어 일단 개념상의 정의를 살펴봅시다, 일반적 정의로 혁명은 '비합법적 수단으로 정치 권력을 잡는 일, 또는 국가나 사회의 조직·형태 따위를 급격하게, 또는 폭력으로 바꾸는 일.', 쿠데타는 '[지배 계급 내의 비주류파 등이] 무력 등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빼앗으려 하는 기습적인 정치 행동.'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공통점은 양자 모두 '비합법적'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무력이든, 여론을 이용한 것이든, 기타 어떤 방법을 사용한 것이든 말이죠, 폭력이나 무력의 유무로서 '혁명'과 '쿠데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은 여기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1980년 터키의 데미렐 정의당 정부를 전복한 육군의 무혈쿠데타의 사례나, 온갖 폭력 사태와 내전을 가져왔던 역사의 수 많은 혁명을 보듯이 '수단'의 문제는 혁명과 쿠데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힘들어 보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김종필의 말처럼 행위 주체가 누구(혹은 무엇)냐의 문제로 넘어오겠지요, 그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면, 문제는 이것입니다, 같은 계층의 권력 투쟁이냐? 광범위한 세력(민심)의 사회 변혁 투쟁인가?

 

- 말 자체만으로 놓고 따지면 김종필의 말은 오히려 옳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사회 혁명의 성격은 혁명을 통해 해결되는 역사적 과제 및 혁명의 추진력, 특히 혁명을 담당하는 계급과 계층에 의해 규정된다.'(철학소사전, 396) ...이럴수가, 구동독에서 발간된 맑스주의 철학사전의 구절을 반복하고 있다니, 김종필은 빨갱이었단 말인가!(...라는 썰렁한 농담은 집어치웁시다;) 문제는 다음 대목입니다. '권력이 어느 한 계급으로부터 다른 계급으로 넘어가는 경우라 해서 모두 다 혁명인 것은 아니다. 이미 권력을 상실한 반동적 계급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되찾는 경우는 반(反)혁명이다. 혁명은 또한 무장 봉기나 내전과도 다르다. 혁명이 통상 무장 투쟁과 연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에는, 새로운 사회 경제 질서의 수립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의 성격을 띠지 않는 무장 봉기나 내전도 무수히 많았다. 반면에 혁명은 무장 봉기나 내전이 없이도 가능하다.'(바로 이 때문에 17세기의 '영국혁명'이 과연 역사-혁명 주체에 의한 혁명이었는가에 대한 맑스주의적 논쟁이 가능한 지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정리해보자면, '혁명'의 최종수혜자, 그 '혁명'의 결과로서 얻어진 사회 변동의 성격이 그것을 '혁명'으로 부를만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죠, 물론 학문적으로 '혁명'의 성격에 대한 논쟁은 이와 다르게 얼마든지 논해질 수 있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단순하게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정의에 대해 논쟁하는 글은 아니니까 말이죠,

 

- 자, 그럼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5.16의 행위 주체(계급/계층)는 누구였는가? 5.16의 최종 수혜자는 누구였는가? 5.16으로 인한 사회 변동은 과연 '혁명적'이었는가? ...이 문제들에 대해 길게 논하기 보다는, 여러분께 대신 묻겠습니다, 5.16은 어떤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들이 그것으로 인해 무엇을 얻었고, 또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향후 수십 년간 나아갔는지, 물론 어떤 분은 5.16의 행위 주체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구국의 청년 장교들이었으며, 그들의 뒤에는 무능한 정권을 타도하여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민중의 참뜻이 있었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유례 없는 발전과 영광의 길로 나아갔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만 가슴을 열고 생각해 본다면, 김종필의 말처럼 5.16은 권력을 쟁취하고 나서 '민심을 기초로 해' 정치를 했습니까? '그런 건 필요 없고 5.16이 역사상 우리 사회 변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건인 건 분명하니까 혁명 맞음'이라고 떼를 쓰는 분, '파시즘도 극단적 민족주의의 혁명 운동 맞음'이라는 로저 그리핀의 주장에 토 달지 마시길 바랍니다,

 

- 그렇다면 5.16은 쿠데타인가요? 안타깝게도 위키백과는 '한국의 주요 쿠데타'에서 당당히 '5.16'을 등록시켜놓고 있군요; 자, 넷우익들이여, 어서 위키를 공격하세요!(...) ...농담은 그만두고, 다시 한 번, 질문으로 돌아가서 시작한다면, 5.16이라는 권력 교체는 도대체 어떻게 명명해야 할까요? 대장도 아니고 중장도 아닌 일개 소장이 군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육사 8기생 10여명과 휘하 부대원들 3,600명을 동원해 총격전을 벌이며 서울로 돌입했습니다, 그들이 주요 관공서를 장악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김종필의 주장대로 '민심의 반영'이 아니고, '계엄 선포'입니다, 김종필의 주장대로라면 누구보다 먼저 '혁명'을 반겨야 할 지식인들이 제일 먼저 반발하고 나섭니다, "개혁과 숙정의 대상이어야 할 군대가 무엇을 바로잡겠다고 나서다니, 언어도단입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군대라는 집단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요. 쿠데타라니 도저히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서 군대의 정권 탈취에 반대해야 합니다."(리영희), 지식인 뿐입니까? 학생들도 황당합니다, "보성고 학생은 고등학생으로 첫 번째 쿠데타 피해자였다. 보성고 학생들은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반인처럼 머리를 길렀다. 그것이 보성고의 상징이었고, 자랑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는데, 군부의 명령에 따라, 전교생이 하루 아침에 군대식으로 머리를 빡빡 깎아야 했다. 그 거역할 수 없는 총구 앞의 일사분란함이라니. 저에게 군사독재는 그렇게 험악한 얼굴로 다가왔다."(조정래), 김종필의 주장대로라면 평범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지지행진을 벌여야 할텐데 5.16 후에 거리로 나와서 지지행진을 하는 것은 육사, 공사, 해사 생도들입니다(...어이쿠, 그 행진을 선동한 사람이 전모씨네요?...), 쓰다 보니까 제가 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쿠데타를 쿠데타라고 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이렇게 말만 많아지나 봅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김종필이 툭 하면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나세르의 이집트 '혁명'은 말이죠... 최소한 왕정을 끝내고, 외세를 몰아내기라도 했습니다; ...뭐, 그 외 등등 업적을 인정해준다 해도 결국 사다트와 무바라크를 낳게 한 원인이기도 하죠, ...아, 혹시 박정희가 전두환과 노태우를 낳은 것을 비꼬는 김종필의 고도의 수사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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