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에서 본 첫 테리 길리엄 영화였습니다. '브라질', '피셔킹' 등등이 모두 좋아하는 영화라서 기대가 컸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봤었죠. 아마 극장에서만 세 번은 봤다고 기억합니다. 사실 뭐 어딘가 대단한 구석(?)이 있는 영환 아닌데. '그래도 테리 길리엄 영화잖아'라는 당시의 기대치(?) 치곤 많이 헐리웃스런 구석이 있는 영화였지만 어쨌거나 그랬어요. 역시 비슷한 시기에 나와 '이 사람도 헐리웃 물 먹더니 변했어' 란 소릴 꽤 들었던 '퀵 앤 데드'도 재밌게 봤으니 애초에 제 취향이 그런 애매한 지점에 있는지도.


 - 참 저렴하게 찍었다는 티가 팍팍 납니다. 코멘터리를 봐도 제작비 때문에 고민 많이 하면서 찍었던 것 같고. (심지어 맨 마지막 주차장 씬에서 크레인 갖다 쓰느라 돈 많이 들었다고 한탄하기도;) 미래의 감옥 장면을 제외하면 정말 돈이 들었을만한 장면이 거의 없죠. 심지어 비싸 보이는 건물 근처에도 가질 않고 비싸 보이는 옷도 입지 않고 비싸 보이는 차도 몰지 않고 가장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액션은 권총 빵빵...; 그런데도 영화 자체는 저렴해 보이지 않으니 그만큼 신경써서 잘 찍은 영화란 얘기겠죠.

 사실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전개도 그리 빠르지 않고 그렇게 많은 일들이 막 정신 없이 벌어지지도 않고 참 영화가 여유롭고 한적하단(?)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그 안에 시간 여행에 지구 멸망에 정체성 혼란에 사랑 얘기에 운명/자유 의지 얘기에 참 이것저것 많이도 우겨 넣어서 심심하진 않구요. 종합적으로 모두 다 참 가볍게 건드리고 넘어가는 데도 딱히 얄팍해 보이진 않아요. 음. 적고 보니 바로 위 문단과 거의 비슷한 얘기네요; 원작도 보고 싶단 생각을 10수년째 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 날이 올런지;;


 - 이제 15년이나 된 영화다 보니 브루스 윌리스, 매들린 스토우, 브래드 피트까지 참 뽀송뽀송하데요. 특히 브래드 피트는 뭐 그냥 영계(...) 매들린 스토우는 참 90년대스럽게 아름답더군요. 트레이드 마크였던 갈색 머리일 때도 예쁘고 금발 했을 때도 예뻐요. 요즘 뭐 하나 궁금해서 이미지 검색 해 봤다가 내상을 입긴 했지만 (나이 든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것 말고도 뭔가 얼굴이 이상해졌어요! ;ㅁ;)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 보니반가워서  괜히 없던 정이 막 생기는 경험을. 전 원래 이 분에게 별 관심 없었거든요;


 -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는 참 연기를 잘 합니다. 사실 여기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참 갑작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 않습니까. 멀쩡하게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 & 베스트 셀러 작가가 뭐하러 주거도 불분명하고 맨날 누더기만 입고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정신병 환자와 사랑에 빠지겠어요. 근데 브루스 윌리스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뭔가 참 불안정하고 위험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순수하고 우직한 남자' 연기가 꽤 설득력이 있어서 그나마 좀 덜 깼던 것 같아요. 비극적인 마지막에도 감정 이입이 가능했구요. '블루문 특급'이나 '다이하드' 같은 작품들에서도 잘 하긴 했었지만 첨으로 이 분이 연기를 잘 한다 싶었던 건 이제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나는 '노스바스의 추억' 이었지요. 그 땐 정말 그냥 연기파(?)로 나가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결국 그냥 연기 잘 하는 흥행 배우 비슷한 이미지로 가고 있네요. 그나마 요즘엔 그 중 '흥행' 이란 부분도 약해졌고...;


 - 브래드 피트는 연기를 잘 했는지 못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영화에서 보여지는 내내 신이 나 보입니다. 뭐 가을의 전설에서의 그 캐릭터보다야 연기하는 게 재밌었을것 같긴 해요. 본인도 어디선가 대충 그런 내용의 인터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와서 다시 보니 '타일러 더든'의 병x미 넘치는 버전인 것 같아 비교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더군요. 


 - 그러고보니 극장에서 브래드 피트가 첫 등장하는 순간 객석을 가득 메웠던 여성 팬들의 탄식이 떠오르네요. 아마 그 순간에 이미 극장을 나가고 싶어진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겁니다. '우리 트리스탄 오빠가...!!!' 실제로 영화가 끝나고 나가는 와중에 그런 얘기 하는 게 많이 들리기도 했어요. 뭐 어쨌거나 배급사는 브래드 피트 덕에 꽤 짭짤했겠죠.


 - 마지막 기내 씬에 대한 코멘터리를 '읽어' 봤습니다.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듣지는 못 하고 자막에만 집중을... -_-;; 근데 이 사람들 말도 많고 빨라서 자막도 팍팍 넘어가더군요. 그래서 확신은 없지만 대충 "원래는 제임스가 총에 맞고 쓰러진 뒤 매들린 스토우와 어린 제임스 콜이 눈을 마주치는 씬에서 끝내려고 했다. 그 뒤의 장면들은 영화에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결정 안 하고 찍었다. 박사가 테러범에게 '보험일 한다' 라고 답하는 대사는 중의적으로 해석되도록 의도했다. 근데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세균 테러를 막게 된 걸로 해석하더라. 50억이 죽는다는 걸 받아들이기 싫은 모양이다. ㅋㅋㅋ" 라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뭐 본인들이 저렇게 말 하는 걸 보니 그냥 테러는 막게 된 거라고 믿어도 상관 없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그냥 그러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영환데 50억은 죽어도 상관 없지만 그래도 헛고생만 죽어라고 하다가 골로 갔다고 생각하기엔 주인공이 너무 불쌍해서;


 - 이 영화에서 진범으로 나온 데이빗 모스는 비슷한 시기의 다른 영화들(더 락, 컨택트 등)에서 너무나도 선량하고 우직하고 착한 이미지들로 나와서 그 영화들을 볼 때 좀 불편했습니다. 그나마 '어둠 속의 댄서'에선 좀 이 영화와 비슷한 이미지여서 나았네요. 


 - 근데 처음 볼 때부터 지금까지 쭉 궁금한 건데, 매들린 스토우가 한 번인가 제임스 콜 얘길 하면서 '전에 본 적 있는데...' 같은 대사를 합니다만. 이게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브루스 윌리스야 어렸을 때 실제로 한 번 본 후 꿈에서 수백 수천번을 봐 왔으니 그렇다 쳐도 매들린 스토우가 왜? 어떻게?


 - 문득 생각해 보니 '소스 코드' 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부도덕한 권력자/과학자들 때문에 시간 여행(?)을 하면서 죽어라 고생하며 미래를 바꾸려는 고독한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죠.


 - 이 영화의 오프닝 음악은 제가 좋아하는 OST 상위권에 항상 머물고 있습니다. 딱히 그럴만한 곡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냥 그래요. 이래저래 그냥 영화가 제게 맞는 듯; 

 http://youtu.be/FIYE31iP5SQ 


 - 그럼 이제 '브라질'을 구해서 다시 볼 차례입니다... 만. 당연히도 블루레이는 나와 있지도 않고 DVD는 이미 다 품절이라 중고로 구할 방법 밖엔 없네요.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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