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이, 내 어머니가 내 배우자가 내 딸이 성매매를 한다면 받아들이겠는가? 라는 뭔가 대단히 강한 듯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부분(아마도 이 게시판에 오는 사람의 거의 전부)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그 중의 일부는 무의미하고 본질을 벗어난 질문이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접근이라서 불편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전세계 모든 사람이 그러할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추측입니다만) 소수이지만 받아들이겠다는 사람은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영화 "엄마는 창녀다"나 "나쁜 남자"에 나올 법한 인물들이 현실에서도 존재하기는 할 것이고,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딸이나 마누라를 유곽에 팔아넘겼다는 옛이야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물론 후레잡놈들이죠.

 

그렇다면 내 가족이 성매매하는 것을 찬성하지 못하는 것이 성매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 성매매의 박멸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당위로 연결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봅시다. 이 질문을 주창하신 메피스토님과 논쟁하신 몇몇 분들의 경우처럼, 여기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분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저는 어떠냐고요? 저역시 그렇지는 않다..라는 대답을 해야겠군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이라는 특수성, 인간의 원초적인 금기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여기 초등학교에 다니는 열 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 이름을 개똥이라고 하죠.

 

하루는 개똥이가 학교에 갔더니 괴롭히기 좋아하는 못된 친구들이 놀립니다. "개똥이 엄마 아빠는 밤마다 X를 한대요~. 앞으로도 하고, 뒤로도 하고... 밤에 하도 쿵쿵거려서 옆집에선 잠도 못잔대요~~" 하고 말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못된 소리를 하는 건 지난번 개똥이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왔을때 두분이 다정스레 손잡고 자연스런 스킨쉽을 했다는 이유 뿐입니다.

개똥이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나를 욕하는 건 참아도 부모님을 욕하는 건 못참아!" 하고 돌이라도 집어 들어서 못된 친구들에게 던지지만 분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이를 수도 없습니다.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개똥이의 친구들이 말한 것은 그들이 직접 보고 말한 것은 아닐 지라도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똥이도 늦은 밤 부모님이 안방에서 뭔가 은밀한 일을 하기도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수치와 분노가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

 

개똥이는 자라서 서른살이 되었습니다. 결혼도 했고 예쁜 딸도 얻었군요. 개똥이는 아내와 원만한 성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본인들의 아이가 태어난 것은 물론, 개똥이 본인도 부모님의 성생활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상상하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드신 부모님은 한때 부부생활의 위기를 겪으셨으며 양편 모두 한두번의 외도가 있었던 것도 개똥이는 눈치채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에 대해 자세히 묻는다면 아마 화를 낼 것입니다.

개똥이의 딸도 자라서 연애를 할 것이고 결혼도 할 것입니다. 개똥이는 딸에게도 훗날의 성생활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 언급하거나 상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좀 유치하지만 예화를 들어 보았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욕 중의 하나는 "니 에미 XX" 였습니다. 우리 어머니에게도 생식기는 존재하고 나의 탄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지만,  어머니의 생식기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이며 그 단어를 언급하는 것은 가장 모욕적인 말이 되는 것입니다.

 

성매매의 당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을 대입시키는 것이 적절치 않은 이유는 위에 이야기했다시피 '성'이 인간의 원초적인 금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매가 아니더라도 성은 은밀한 것이며 지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성행위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특히 가족의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입니다. 성매매는 노동의 한 종류이지만 '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은밀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과 관련된 이야기/고민은 친구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어도 부모나 자식같은 가족에게는 털어놓기 힘듭니다. 어머니가 본인의 불만족스런 성생활에 대해 대학생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고, 아버지가 딸에게, 딸이 아버지에게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   가족간에 있어서 성은 타인과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금기이기 때문입니다.

 

메피스토님의 그 질문은 그래서 공정하지 못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이 보다 질문다운 형태를 갖추기 위해 이렇게 바꿔봅시다.

"당신의 가족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성매매를 하는 것을 찬성하겠는가?"라고요.

 

여기에서 '아무'란 질문받은 당사자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모르는' 것을 가정하고 질문을 받았지만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질문에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그 질문은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당신은 스스로 성매매에 종사할 수 있는가?"   "당신은 스스로 성을 구매할 것인가?"

 

위 질문에 YES라고 대답할 사람의 수는 최소한 현재 성매매 종사자만큼, 또 현재 성 구매자의 수만큼 많을 것입니다.

양측이 합의하에 이뤄진 행위가 당사자 및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행위가 용인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의 허락을 얻지 않고 성매매를 한다면 그것은 배우자에 대한 배신행위이겠지만 성매매 찬성/반대의 논거와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성매매 여성의 대부분과 성매수 남성의 상당수는 배우자가 없는 상황일 것이기도 하고요.

 

마약이나 아동노동은 성매매와 흔히 비견되는데, 마약의 경우는 남용할 경우 중독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우며 심각한 신체적 훼손과 죽음을 야기하기 때문에 금지되지만 성매매는 중독이나 심각한 신체적 훼손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아동노동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미성년자에게 노동의 선택권을 부여하는데 유예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있지만, 성매매는 양측 모두 성인이라면 본인들의 선택을 강제로 막아야 할 논리를 찾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회전체적인 도덕 및 기타 가치의 훼손이라는 측면은 일리가 있고 저역시 그러한 측면에서 성매매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계측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개인의 선택의 자유라는 가치와 대립할 때 무엇이 더 옳은가는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은 문제입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습니다만, 제가 이야기한 부분이 이 강한 질문에 대한 100%의 답이 될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질문을 처음 하신 메피스토님은 더더욱 수긍하기 어려우실 거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볼 점이 있을 듯 하여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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