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내한공연을 볼 때 당일날 티켓전쟁을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앞자리에 대한 집착은 없으므로 한참 나중에 매진된 표의 취소표를 노리는 편인데 이번 마룬5는 워낙 인기가 높아서인지 취소표를 구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고 때문에 나중에 풀린 시야장애석을 구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탠딩 콘서트에서 스탠딩이 아닌 자리에서 보는 것은 간만이었는데 시야장애라길래 실루엣만 보일까 염려와는 달리 약간의 사이드로 경사진 느낌만 들 뿐 오히려 스탠딩에서 사람들에게 가려서 보는 것보다 더 가깝고 더 잘 보여서 의외의 행운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1. 슈퍼 콘서트라 명명했고 그에 걸맞게 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공연이지만 사실 공연 내용은 소품에 가깝습니다. 본 공연 셋리스트가 14곡에 불과하고 3곡을 앵콜로 들려주었을 망정 곡들간의 개성이 뚜렷했던 리스트는 아니었던 지라 기타체인지나 사운드 효과의 다양함은 일반적이 록공연에 비교했을 때 자제된 편이었습니다. 좌우측 스크린이 보통 공연때보다 크게 설치되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무대장치 또한 특별할 것 없이 단촐한 편이었는데 설치된 조명의 갯수에 비해서 너무 자주 사이키델릭의 효과나 화려함을 의도한 연출이 잦아서 오히려 이런 미니멀함이 아티스트의 의도가 아니라 단가절감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2. 적당한 그루브함에 몰랑몰랑한 멜로디가 장점인 그룹답게 특별히 자주 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귀에 걸리는 멜로디가 많았는데 팝과 록의 절충점에 있는 그들의 음악이 라이브로 재현되면서 그 둘의 장점이 동시에 발현되기 보다 다소 애매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가벼운 리듬감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점핑하며 놀기란 참 어려워서 관객들의 호응은 함성과 박수로 제약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반적인 공연의 느낌은 함께 달려간다라는 느낌보다 관람한다의 느낌이 강했었고 여느 공연보다 소프라노의 함성이 컸기에 마치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3, 아담은 아담이었습니다. 명불허전이라고 볼 수 있는 그의 흐느적거리는 몸동작은 절로 찰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몰랑몰랑한 멜로디로 인해 그의 악센트 있는 보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고 그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량이 가히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리듬감도 좋았고 음이탈도 없었는데 그의 몸동작 만큼이나 찰진 보컬을 선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친한 친구 중 한국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면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는데 관객들이 빵 터지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짧은 멘트시간 와중에 자주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를 다양한 느낌으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섹시해 보이기 보다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게 되더군요.

 

4. 셋리스트나 공연의 진행 또한 친절하였습니다. 미리 셋리스트를 배포하기도 했고 최근의 앨범에서 단 4곡을 연주한 데다 그 리스트가 초반 5 트랙안에 있던  것이었으니 히트곡 퍼레이드였던 본 공연에서 특별히 낯설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국내에서는 싱어롱을 의도로 연출된 곡의 구성도 많았지만 해외 공연임을 감안해서 그런 연출도 가능한 배제한 채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었고요. 짧은 멘트 시간에도 배경음을 깔아서 공연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구성해 놓았고 곡들간의 간극이 크지 않았기에 끊기는 느낌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난함에 치우친 나머지 공연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의외성이나 열정이 부족해 보인다는 아쉬움 또한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5. 사운드는 원래 간결함을 의도하였고 특별한 덧붙임이 없었지만 기타의 메인리프의 음역대에서 자주 공진음이 발생하였습니다. 워낙 공연장의 소리라는 게 자리에 따라서 틀려지기 마련이라 섣불리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어렵겠지만 이런 공진음은 전체 공연장에서 다 전달되는 편이므로 명료함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 스피커가 뒷벽의 공간에서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을 때 나오는 공진음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공연보다 뒤로 밀려나서 셋팅된 무대 때문인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진음에 대한 거슬림을 제외하고는 사운드에 있어서 상당히 약점이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악기간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는 괜찮은 균형감각을 보여 주었습니다.

 

6. 여느 록공연보다 여자분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고 때문에 공연장의 느낌은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아이돌 팬 콘서트에 온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야광봉은 참 생경한 것이기도 했고 중간 중간의 호응의 소리는 소프라노의 높은 음만이 엄청난 음량으로 쏟아져 나왔길래 공연장의 소리보다 함성소리에 귀가 멍멍해지기도 했습니다. She will be loved에서 여지없이 종이 비행기 날리기 이벤트가 연출되었는데 이게 일종의 유행인지 너무 자주 보게 되어서 좀 식상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런 종이비행기 날리기 이벤트는 내한공연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 것 같아요. 싱어롱은 공연장을 가득 메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체조라는 공연장의 특성과 라이트한 팬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작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멜론 악스에서 했더라면 꽃가루 이벤트 등 더 다양한 이벤트와 더불어 감동적인 싱어롱 또한 뮤지션에게 선물할 수 있었겠지요.

 

7. 매끈하고 성실한 공연이었고 마룬5의 팬이라면 기대한 만큼의 즐거움을 안겨준 공연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마룬5의 팬이 아닌 저로서는 그 기대가 그렇게 높지 않았고 받은 감흥 또한 높지 않은 기대치 딱 그만큼의 감흥만을 안겨주었을 따름이었습니다. 마룬5는 아레나형 밴드는 아니었고 때문에 좀 더 작고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면 훨씬 즐거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본 공연들이 그렇게 인상에 남는 공연이 많지 않아서 최고의 공연을 선보였지만 관객의 리액션이 매우 안타까웠던 아이언 메이든의 공연이나 정말로 좋아했던 음악이지만 공연장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했던 MGMT를 떠올린다면  라이브라는 개념에서 아쉬움을 제기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최고의 라이브의 경험을 선보인 것은 지난주 그린플러그드의 UV와 함께했던 이태원 프리덤이었고 좋은 음악만이 좋은 라이브의 전부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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