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2011.06.06 16:27

눈씨 조회 수:3443

엑스맨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소수자가 어떠한 양태를 보이는가를 조명한 히어로물이었습니다. 히어로물답게 인물들끼리 연애를 하거나 각자의 초능력을 가지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주된 내러티브이긴 합니다만, 미국의 사적 맥락 안에서 차별받던 동성연애자들이나 흑인들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퍼스트클래스 또한 이러한 엑스맨 시리즈의 전통 안에 있는 작품입니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돌연변이들의 돌연변이성이 얼마나 정상적(normal)인가에 따라서 돌연변이들의 입장이 달라진다는 점이지요. 전작인 엑스맨 시리즈를 살펴봐도 평화주의자인 프로페서X 를 따르는 돌연변이들은 대체로 겉모습이 정상적(normal)인 인간과 닮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반면에 테러리스트인 매그니토를 따르는 돌연변이들은 괴물같은 형상을 가진 돌연변이들이 주를 이뤘지요. 그러나 당시에는 이들의 형상이 그들이 해왔던, 그리고 앞으로 할 행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인간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면, 인간들이 보기에 두렵고 무서운 형상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퍼스트클래스의 경우 돌연변이들이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미움이 구체화되기에는 정체성 정립이 덜 되었던 시기에 외관상 인간과 거의 차이 없는 돌연변이들과 큰 차이를 가진 돌연변이들을 대비하면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논의의 외연을 확장시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잣집 아들이었던 찰스 사비에와 먹을 것을 찾아 여러 집을 전전했던 부랑자 레이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에릭 렌셔를 대비시키면서, 돌연변이들 내에서도 돌연변이성에 대한 조건과 성장 환경에 따라 차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각하지요. 찰스와 레이븐의 대비가 돌연변이의 외형적 조건에 대한 것이라면, 찰스와 에릭 렌셔의 대비는 성장 환경에 대한 것입니다.

찰스의 성장 과정이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으나 그의 커다란 집이나 지하 벙커 등을 통해서 유달리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표정이나 말투, 몸짓, 사고방식 등은 굉장히 여유롭고 그늘이 없지요. 이에 비하여 에릭 렌셔는 어린 시절 나치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분노에 휩싸여 있으며 복수를 위해 몸과 마음을 철저히 단련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성장 환경에 대한 묘사는 찰스와 에릭의 인간에 대한 태도에서 기묘한 감상을 가지게 만듭니다. 찰스의 인간에 대한 관용은 마치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사람이 저 높은 곳에서 선심을 쓰는 것처럼 느껴지고,(찰스의 능력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에릭 렌셔의 인간에 대한 분노 표출과 말살 의도는 정당한 것(세바스찬 쇼우에 대한 복수는 그렇다 치더라도)처럼 여겨지는 것이지요.

다른 분들의 작품 감상을 보더라도 이러한 경향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에릭 렌셔를 분한 마이클 파스밴더가 섹시하긴 합니다만, 외모적 섹시함과는 별개로 그의 정치적 입장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조금 더 확대 해석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엑스맨에서 드러나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사회 구성원 다수가 정당한 이유 없이 누군가의 악의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고, 이로부터 생성된 인간 일반에 대한 관념이 에릭 렌셔와 같은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찰스는 그 능력과 지성을 고려하면 굉장히 성숙한 인물인데도(세계 정복도 가능할텐데!), 그의 발언과 정치적 입장이 가질 거 다 가진 사람의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먹고사니즘의 비중이 높은 사람들에게 해외의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돕자는 것이나, 518피해자에게 전두환을 용서하자고 말하는 것처럼요.

매우 거칠게 도식화하자면, 찰스와 에릭의 대립은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그것과 같습니다. 미군과 소련의 함포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눈앞에 둔 돌연변이들에게, 어느 쪽 입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자명하겠지요. 영화는 현실주의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상을 토대로 오늘날 한국을 돌아보면, 역시 현실주의자가 득세하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상주의자는 좌절하거나 처절하게 몰락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집단 따돌림과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리며 세상을 배우지요. 10년 전의 엑스맨에서도 사비에 교수는 관용을 말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도 이쪽 논의의 진전이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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