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긴 글이지만 1편이 있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2420300

 

 

 동물 농장 같은 프로에서 볼 수 있던 반려동물과 주인과의 애틋한 우애 같은 것은 시큰한 개들의 쉬야 냄새와 장애가 되는 응가를 싹싹 피해 골목길을 달음박질했던 저로서는 TV에서나 가능했었던 믿거나 말거나의 세계였습니다. 저의 어린 날의 현실에서는 오래된 재래시장에서는 돼지머리뿐만 아니라 혀를 쑥 내민 개머리가 이상한 수조같이 생긴 불투명 박스에 담겨져 팔리고 있었고 동네 어귀에서 항상 팔팔 끓이는 국물에서 베이 있는 찐뜩한 고기 냄새가 풍겨져 나오는 보신탕 집이 있었습니다. 88 올림픽 전후에 갑작스레 밀어닥쳤던 개고기 단속으로 인해 잠깐 시들했을 뿐 재개발이 자신의 부를 만들어 줄 거라고 믿던 사람들이 살고 있던 우리동네의 90년의 시작은 수많은 똥개가 활보했지만 그러기에 개들에게는 잔인했던 “시티 오브 도그”의 슬럼이었습니다. 마치 집배원처럼 몇 개월에 한 번씩 딩동! 벨소리를 눌렀던 개장수 아저씨의 소리에 저 혼자 만끽하던 낮잠의 즐거움을 방해 당한 화풀이로 “ 울집은 개 안키워요.” 날카롭게 한 마디 하는 것도 짜증났던 시절. 뽀미 아주머니는 다시 하얗고 여린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작은 생명체를 보여 주었습니다.

 

 앙증맞은 귀여움을 담뿍 담고 있었던 어린 존재였건만 이번에는 딱히 어머니께 이 새깡이를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습니다. 철이 들었던 것도 아니었고 캐리의 아픔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만화책과 전자오락기가 더 좋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을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외로 선선하게 2만원을 아주머니에게 건네 주었는데 곗돈이 밀려 있었던 아주머니는 짙은 화장은 여전했지만 헝클어진 머리결 때문에 더 남루해 보였던 모습으로 그 돈을 꾸깃꾸깃 주머니에 넣으셨습니다. 어떤 이유때문인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아주머니의 가세가 기울여진 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뽀송뽀송했던 뽀미가 제대로 빗질도 하지 못해 헝클어진 모습으로 슬럼 같은 동네 어귀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몇 번 목격했기 때문이지요. 늙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던 뽀미는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태어난 새끼들이 자신의 젖을 물려고 하면 물어죽일 기세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백식의 캐리로 부르던 마크 투라고 부르던 이 녀석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운명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비록 캐리 보다 더 보슬했던 하얀 털과 낭랑했던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장 아장 걷던 어린 시절에야 마크 투도 듬뿍 귀여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마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순백의 강아지인지 알았던 그 녀석의 털 사이사이로 색이 바랜듯한 누런 반점 같은 황색 털이 군데군데 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집안의 애물단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짖어대는 습성을 지녀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른 적이 다반사였고 이갈이를 너무 심하게 해서 내가 아끼던 운동화를 포함해서 발 냄새가 베어 있는 슬리퍼를 자신의 개집에 보물처럼 모아 두고 질겅질겅 씹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동물도감 아니면 TV에서 본 듯한 개를 굴복시키는 방법인 개를 눕힌 후에 설득하기를 시전해 봤지만 두 눈만 땡글땡글 해진 채  '어쩌라고~' 째려보던 그 녀석은 슬리퍼를 끌어당기는 도그니토의 능력이 있는지 어느새 숨겨 놓은 사람들의 슬리퍼를 한 짝씩 수집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밥은 어찌나 가리는지. 개에게는 남은 밥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밑바닥 동네 출신이건만 절대로 식구들이 먹다 남긴 것은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 물론 고기는 먹다 남은 것 상관없이 잘 먹었지만) 그래서 그 녀석의 식사시간은 가족의 식사가 끝날 때가 아니라 가족의 젓가락이 올라갔을 때 똑같이 시작되었습니다.

 

 마크 투를 가장 애틋하게 보살펴 주었던 식구는 형이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형은 마크 투에게만은 태풍속의 고요함이었는지 그 녀석에게는 고스트 버스터즈 계획을 체계적으로 실현하기는커녕,  어쩌다 일찍 집에 귀가해서 어머니가 안 계실 때면 계란 하나를 톡 깨서 하이얀 쌀밥에 볶은 다음에 우유에 말아서 마크 투에게 주곤 했습니다. 마크 투는 개 줄에 매이는 것을 상당히 성가셔 했으므로 종종 개 줄을 풀어주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형이 차의 급정차하는 소리와 함께 마크 투의 소리도 들렸다면서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그러는 형이 참 쓰잘데 없는 걱정도 한다 라고 비웃고 말았지만 얼마 후에 형이 마크 투를 품안에 안고 돌아왔습니다. 끙끙거렸던 마크 투를 마당에 풀어 놓는 순간 절뚝 절뚝 거리며 자기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저 또한 안쓰러움에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며칠을 그러기에 병자에 약했던 저희 식구들은 마크 투를 극진히 보살펴 줄 수 밖에 없었는데 정성이 갸륵하였는지 2주 정도 지난 후 다행스럽게도 마크 투는 완치가 되었습니다. 아니 완치가 된 것이 아니라 변했습니다. 변했다는 말로도 부족해요. 그것은 업그레이드!라고 불리워야 하는 각성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마크 투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로 집안에 있기 보다 오히려 더 밖에 나가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버지가 출근하시던 새벽 6시에 같이 집을 나서더니 저녁 7시 식사시간이 되면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잦아 졌습니다. 마크 투는 식구들의 출근길이나 등교길을 배웅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가만히 내비 두면 버스에 타는 저까지 몰래 따라오기 일쑤라서 종종 버스운전사 아저씨가 “이게 너희 집 개냐?”라고 물으면 “이거 제 개가 아니라 옆집 개에요.” 라고 서둘러 부정한 뒤 발길질 시늉으로 마크 투를 멀리 한 뒤에 “아저씨 빨리 문 닫고 출발해요.” 부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믿기지 않게도 제가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 보다 마크 투가 학교에 뛰어오는 시간이 더욱 빠를 때가 있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크 투는 황당해 하는 내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크하게 학교에 들어가는 저를 흘깃 쳐다 보더니 달마가 동쪽으로 가듯 제 갈 길을 가곤 했었지요.

 

 마크 투의 생활 반경은 넓어지고 신출귀몰함은 더욱 놀라워졌습니다. 때론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고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러 오락실로 내달리는 저를 기와지붕 위에 앉아서 컹컹 하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녀석이 개인가 고양이인가 혼란스러워 하는 저에게 “중딩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 워류겐 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녀석이.” 라며 무심한 표정으로 꾸짖고는 다시 또아리를 틀며 빨간 기와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곤 했습니다. 때로는 영화를 보러 간 신촌의 번화가에서 횡단 보도를 기다리는 마크 투를 발견할 때도 있었는데 친구가 “이거 너희 집 개 아니야?” 라고 물으면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라고 부정하며 그 녀석의 눈에 띄지 않게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귀찮을 정도로 식구들을 따라다니던 녀석이지만 이내 자신의 흥미거리를 발견하게 되면 주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워프하듯 주변에서 사라지곤 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집안에 붙어 있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던 셈이지요.

 

 그렇게 많은 곳을 활보했던 마크 투는 자연스럽게 동개클(동네 개들의 클럽)의 보스가 되어 두 세마리의 개들과 함께 개들의 슬럼지구를 지배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연지사로 동네주민의 성토의 대상이 되었는데 가장 큰 불만은 동네 암컷들을 다 후리고 다닌다는 제보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 녀석의 암컷 취향조차 대중 없어서 자기 보다 족히 2배는 더 큰 암컷 조차 점프해서 등 뒤로 올라 탄 후 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XX짓을 한다는 목격담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중성화수술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조차 몰랐던 시절이었던지라 그 녀석을 개줄로 묶어두고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마크 투는 개목걸이를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몇 날 며칠을 낑낑거리곤 했습니다. 갑갑해 할까봐 개줄로 묶어서 외출하자 할 때면 네 발을 땅에 딱 붙이고 가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목걸이를 풀게 되면 언제 그랬는지 마침 스톰처럼 제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산책을 즐기곤 했지요. 물론 한 눈 파는 사이에 갑작스레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신출귀몰함은 여전했지만 말입니다.

 

 마크 투의 히피스러운 자유생활이 더욱 강해지는 만큼 마크 투의 자존심은 날이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식사시간에 맞추어서 집안에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식구들이 주는 밥은 정말 고기가 1그램이라도 섞여있지 않으면 입에 대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속상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제가 해준 계란 후라이를 킁킁 냄새만 맡고 마다 하더니 그 옆자리에서 끙끙거리며 마른 똥을 싼 후 그것을 꿀꺽 삼키는 것을 목격했던 장면이었습니다. 토하라고 등을 턱턱 내려쳤지만 그 녀석은 낑낑대기만 했을 뿐 먹을 것을 토하지는 않았지요. 아마 그때에는 길을 가던 개장수가 있다고 한다면 “울집에 개가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던 심정이었습니다. 어느새 캐리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아픔 따위는 오락실의 동전 투입기로 딸깍하고 사라지는 동전처럼 탈탈 털어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학 여행을 다녀오던 날. 마크 투는 여느 때 처럼 저를 배웅해 주기 위해 길을 나섰고 저는 마크 투를 피할 궁리를 굴려가며 이래 저래 골목길로 돌아나와 그 녀석의 눈길이 보이지 않는 타이밍을 포착하여 무사히 몰래 버스에 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던 날. 평소에도 조용했던 마크 투의 집이 더욱 휑한 느낌으로 방치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께 마크 투가 어디갔는지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머니께서 먼저 이야기하시길 마크 투가 집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간략한 걱정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났건만 집안 식구 그 누구도 마크 투를 찾지도 울지 않았습니다. 직장과 대학생활에 바빴던 누나들과 언제나 6시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아버지. 입시공부에 시달려야 했던 형. 그리고 모두를 뒷바라지 해야 했던 어머니까지. 동네의 재개발은 요원한 채 동네는 낡아져 갔지만 식구의 하루는 주위를 돌아 볼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갔으니까요.  아마 가장 많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저였지만 어느새 동네를 더 이상 뛰어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개똥은 많았고 동네를 쏘다니는 개들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다른 개들을 보면서 마크 투가 떠올릴 때면 전 나지막히 스스로에게 내뱉곤 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이것은 앞으로도 제 자신의 미욱함 때문에 몇 번이고 놓칠 수 밖에 없었던 인연에 대한 저의 레퍼토리가 되었던 첫 번째 비겁한 변명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전 동물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냥이도 개들도 길 위에서 발견하든 친구의 자취방에서 우연치 않게 마주하게 되든 가능한 저의 애정을 담뿍 표현해 주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혜화동을 보는 순간 어려움을 보지 않은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부박하고 얄팍한 것인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추억은 즐거움을 상기하지만 현실의 책임을 망각합니다. 탈장이 되어 버린 채 주인공 앞에 나타난 유기견은 제가 키웠던 어떤 개와도 닮지 않았지만 아픈 것을 모른 채 일상을 영유하는 모습에서 탈장이 되어 버렸던 부끄러움의 제 자신의 기억과 닮아있음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반려동물은 애정을 받고 표현하기를 원하지만 사랑을 책임지지는 못합니다. 저 또한 애정을 말하고 표현하기를 원했지만 사랑에 책임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개 앞에서 전 또다른 개자식이 된 것이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앞에서도 눈물과 체념만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무책임한 관계에 대한 변명을, 핑계로나 하는 자신은 이제 없는 것이었을까요?

 

물론 혜화동에서는 남자가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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