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담배 왕창 피운 이야기

2010.06.28 13:59

zivilrecht 조회 수:2577

어느 커뮤니티든 흡연 관련 글 올라와서 끝이 좋은 경우는 전무하더군요. 덧글로 한바탕 혈투가 벌어지고 몇명 에잇 더러워 하고 탈퇴하고... 이건 논쟁이랄 것도 없는 무의미한 이야깃거리인 것 같습니다. 암만 애연가라도 흡연이 건강에 해로운 것,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죠. 간접흡연 문제로 다투면 언제나 비흡연자들이 명분에서 압도적입니다. 다만 흡연자들은 비흡연자들의 맹렬한(?) 공격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구요. 이러면 뭐 그냥 싸우고 마는 거죠 뭐. 흡연자는 '길빵'을 하거나 공중이 모이는 장소에서 흡연을 하면 안되죠. 여기에 무슨 이의가 있으려나요. 그럼에도 왠지 나쁜놈으로 몰려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흡연자들은 이런 논쟁이 붙으면 꼭 등장하는 '흡연 자체가 악이다 모조리 금지하고 처벌해야 한다'라든지, '간접흡연 뿐만 아니라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들어오는 바람에 옷이나 몸에 밴 담배 냄새도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다소 극단적으로 나간 의견이 등장하면 못참고 으르렁해서 또 싸우고... 뭐 이런 식인것 같습니다. 그냥 이런 얘길 아예 안했으면 좋겠어요. 혹시 법률이나 조례로 소위 '길빵'같은 무지막지한 행위를 규제하는 규정이 없나요? 혹은 적극적인 단속지침이라든지요. 이런 부분에서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겠다, 뭐 이정도로 이야기하는 거라면 모를까, 어차피 매너를 집에 놓고 다니는 무개념 흡연자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나 덧글을 보고 자기 흡연습관을 고칠리도 만무하니까요.


..라는 게 제 생각이구요.


전 입대 전에 흡연자이긴 하되, 좀 애매한 흡연자였더랬죠. 하루에 서너개피 정도 피우는데, 일주일쯤 아예 피우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가끔 담배를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문득 담배 피우는 친구가 한대 권하니 '오랜만이네'하고 피우는 뭐 그런 정도였죠.


그런데 군대에서 정말 무지막지하게 피웠습니다. 2년동안 골초가 되어 돌아왔죠..-_-;; 심지어 부모님은 제가 입대 전에 흡연자라는 것을 모르고 계셨다가 군대에서 배워온 줄 알고 가슴을 치셨죠.


근데 그 계기가 참 어처구니없는 거였어요. 고참들 갈굼에 스트레스 받아서 피운 것도 아니고, 그냥 문득 그렇게 됐습니다.


밤낮으로 경계근무만 서는 부대라 훈련도 거의 없고, 경계근무가 없으면 끊임없이 작업만 하는 부대였습니다. 작업 거리야 만들면 그만이죠. 작업거리가 없어도 장교들은 병사들 마냥 놀리는 꼴은 죽어도 못봅디다. 하다못해 '철책점검하고 와라'라는 명이 떨어지면 거기에 부수적으로 합판을 자르고 페인트칠을 하고 구멍을 내서 고무줄을 엮어 순찰패를 한 자루 만들어야 하고, 날파리 날리는 분리수거장에서 오물 범벅이 된 깡통을 주워와서 그걸 씻고 페인트칠을 하고 조그만 돌맹이를 구해다 넣어서 발성장애물(말은 참 그럴듯 하네요 ㅋㅋ)도 한 자루 만들어야 하고... 시덥잖은 일이지만 생각보다 손이 가고 시간 때우기에 좋은 그런 작업들 많죠.


하여간 작업은 끊임없이 해야 하는데, 휴식시간이 되면 묘합니다. 소대장이나 고참병 인솔하에 작업할 때 휴식시간을 갖자는 신호는 '한대 빨자'였어요. 그럼 자연스레 연장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데... 자대배치 받은 신병의 단골 질문인 '너 담배 피우냐?'에 별 생각없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던 제게 고참이 해준 말이 사실이더군요. 담배 안피우는 놈들은 눈치보여 쉬지도 못한다고.


삼삼오오 흡연자들이 모여 정답게(?) 담배를 피우는데, 작대기 하나 달고 갓 배치된 쫄병인 저는 편히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멍 하니 서서 뭘 어찌할 줄 모르겠더라구요. 쫄병끼리 이야기라도 나눌라치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그놈의 이상한 내무반군기 때문에 진짜 가시방석이죠. 차라리 작업중이면 거기에 몰두할텐데, 담배를 피우는 동기들이 고참들한테 한대씩 얻어서 맛나게 피우며 은근히 이완된 분위기 속에 농담따먹기라도 하고 있는 동안 그걸 구경하는 기분은...


그러다가 그냥 피웠어요. 본격적인 흡연자의 길에 들어선 셈인데, 정말 무섭게 피우게 되더라구요. 아침에 일어나면 한대, 점호청소하고 한대, 식사후에 한대, 작업가기 전에 한대, 작업중에 틈틈이 한대, 작업 끝났으니까 한대, 씻었으니까 한대, 근무나가기 전에 한대, 근무 다녀와서 한대, 야식으로 컵라면 먹고 또 한대..-_-;;;;;;;;;


결국 전역 후에도 여전히 골초로 주변에 민폐끼치며 살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였습니다...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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